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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
불교 용어의 하나 / From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탐(貪, 산스크리트어: rāga, 팔리어: rāga, 영어: lust, attachment) 또는 집착(執著) 즉 무언가에 들러붙어서 떠나지 못함은 다음의 분류, 그룹 또는 체계의 한 요소이다.
- 여러 악욕(惡欲)들 가운데 하나이다.[1] 탐(貪: 들러붙어서 떠나지 못함)과 욕(欲: 욕구, 희망, 원함)은 서로 관련은 있지만 불교 교학에서 기본적으로 서로 별개의 법이다. 즉 이 두 법은 그 본질적 성질에서 차이가 뚜렷하다. 예를 들어, 부파불교와 대승불교 모두의 교학에서, 욕은 선 · 악 · 무기의 3성에 통하는 반면 탐은 악과 '무기의 일부인 유부무기'에만 통한다.[2] 따라서, 욕에는 선욕(善欲: 선한 욕구)도 있고, 악욕(惡欲: 악한 욕구)도 있고, 무기욕(無記欲: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은 욕구)도 있다. 이에 비해, 탐의 경우 선한 탐욕 또는 선한 집착 즉 선탐(善貪)은 존재하지 않는다.
- 고타마 붓다가 설한 3독(三毒) 즉 불선근(不善根) 가운데 하나이다.[3][4][5][6][7]
- 고타마 붓다가 설한 5개(五蓋) 가운데 탐욕개(貪欲蓋)에 해당한다.[8][9][10][11][12][13]
- 부파불교의 설일체유부의 교학에서 6가지 근본번뇌(根本煩惱) 즉 6수면(六隨眠) 가운데 탐수면(貪隨眠)에 해당한다.[14] 또한, 7수면(七隨眠) · 10수면(十隨眠) · 98수면(九十八隨眠)에 속한다.
- 대승불교의 유식유가행파와 법상종의 교학에서 6가지 근본번뇌(根本煩惱) 가운데 하나이다.[14]
- 초기불교 · 부파불교 · 대승불교의 9결(九結) 가운데 애결(愛結)에 해당한다.[15]
- 부파불교와 대승불교의 10악(十惡) 가운데 탐욕(貪欲)에 해당한다.[10][16][17]
- 고타마 붓다가 설한 4성제(四聖諦)의 교의에서 집제(集諦)에 속한다.
- 고타마 붓다가 설한 12연기(十二緣起)의 교의에서 제8지분인 애(愛)에 해당하고, 제2지분인 행(行), 제4지분인 명색(名色), 제9지분인 취(取)에 속한다.[18]
- 고타마 붓다가 설한 5온(五蘊)의 법체계에서 행온(行蘊)에 속한다.
- 고타마 붓다가 설한 12처(十二處)의 법체계에서 법처(法處)에 속한다.
- 고타마 붓다가 설한 18계(十八界)의 법체계에서 법계(法界)에 속한다.
- 부파불교의 설일체유부의 5위 75법의 법체계에서 심소법(心所法: 46가지) 중 부정지법(不定地法: 8가지) 가운데 하나이다.[19][20][21]
- 대승불교의 유식유가행파와 법상종의 5위 100법의 법체계에서 심소법(心所法: 51가지) 중 번뇌심소(煩惱心所: 6가지) 가운데 하나이다.[22][23][24][25]
- 욕계의 탐인 욕탐(欲貪) 또는 욕탐수면(欲貪隨眠)과 색계와 무색계의 탐인 유탐(有貪) 또는 유탐수면(有貪隨眠)으로 나뉜다.[2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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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āga의 번역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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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 | 탐, 탐욕, 갈애, 망집, 미착, 염착, 집착 (로마자: tam) |
영어 | lust, attachment, desire, longing desire, passion |
산스크리트어 | rāga, raga, lobha, abhidhyā |
팔리어 | rāga, lobha, abhijjhā |
중국어 | 貪 (T) / 贪 (S) |
티베트어 | འདོད་ཆགས་ (Wylie: ‘dod chags; THL: döchak) |
불교 용어 목록 |
탐(貪)은 갈애(渴愛, 산스크리트어: trsnā: 무명을 바탕하여 구하고 원하는 것)[28][29][30][31] · 망집(妄執: 무명을 바탕으로 하는 집착)[32][33] · 미착(味著: 맛들여 집착함) · 욕(欲: 탐욕의 줄임말로서의 욕) · 애(愛: 갈애 또는 애착의 줄임말로서의 애) · 애욕(愛欲) · 애착(愛著, 愛着) · 애탐(愛貪) · 염애(染愛: 오염된 좋아함) · 염착(染著) · 집착(執著, 執着) · 탐독(貪毒: 독으로서의 탐) · 탐애(貪愛) · 탐욕(貪欲) · 탐욕개(貪欲蓋) · 탐착(貪著, 貪着) · 탐착(耽著: 그릇된 몰입과 들러붙음; 耽은 깊이 빠져서 열중하여 즐기는 것, 著은 들러붙어서 떠나지 못하는 것)이라고도 한다.[34][35][36][37][38][39][40] 말하자면, 탐(貪)은 대상에 들러붙어서[著, 着, attachment, 들러붙음] 떠나지 못하는 상태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불교에서는 욕계를 비롯한 3계의 온갖 법(法)에 들러붙어 있어서 그것을 멀리 떠나[遠離] 열반의 세계로 들어가지 못하는 상태를 말한다.
《잡아함경》 제2권 제58경 〈음근경(陰根經)〉에서 고타마 붓다는 수염(修厭: 싫어하는 마음을 닦는 것)을 닦으면 탐욕[欲]을 떠날 수 있고, 탐욕[欲]을 떠날 수 있으면 해탈하게 된다고 말하고 있다.
多聞聖弟子如是觀者便修厭。厭已離欲。離欲已解脫。解脫知見。我生已盡。梵行已立。所作已作。自知不受後有。
"이렇게 보는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들[多聞聖弟子]은 곧 그것[5취온, 일체의 유루 유위법]을 싫어하는 마음을 닦고[修厭], 싫어하는 마음[厭]을 닦은 뒤에는 탐욕[欲]을 떠나며, 탐욕[欲]을 떠난 뒤에는 해탈(解脫)하고, 해탈한 뒤에는 해탈지견(解脫知見)이 생겨 '나의 [윤회의] 생은 이미 다하였고[我生已盡], 범행(梵行: 청정과 적정[41])은 이미 섰으며[梵行已立], 해야할 일은 이미 [모두] 마쳤으므로[所作已作, 즉 배워야 할 것을 다 배웠으므로, 즉 무학위(無學位)에 도달하였으므로], 다음의 유(有: 윤회, 윤회의 삶[42][43])를 받지 않는다[不受後有, 즉 나에게는 윤회가 더 이상 필요치 않다]'라고 스스로 안다[自知]."
《대승오온론》과 《성유식론》 등에 따르면, 마음(6식 또는 8식, 즉 심왕, 즉 심법)은 무탐(無貪)의 마음작용과 상응함으로써 탐(貪)의 마음작용을 대치(對治)할 수 있는데,[42][43][44][45] 염(厭: 싫어함)의 마음작용은 무탐(無貪)을 본질로 한 상태에서 혜(慧: 지혜)를 가졌을 때 생겨나는 선한 마음작용으로 무탐(無貪)의 특수한 경우이며 특히 대상에 대한 염착(染著)을 제거하는 작용을 하는 선한 마음작용이다.[46][47] 수염(修厭)의 '염(厭)'은 이러한 선한 마음작용으로서의 '싫어함'으로, 치(癡, 무지, 무명)와 상응하여 생겨나는 불선의 마음작용인, 염세(厭世: 세상이 귀찮음, 인생이 싫어짐[48])의 '염(厭: 싫증)'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불교에서 염세로 인한 자살 등의 근본에 치(癡, 무지, 무명)가 있다고 하는 이유는 마음(6식 또는 8식, 즉 심왕, 즉 심법)이 사물에 대해 고요해질 수 있음으로써만 해결이 날 수 있는 것을 물리적 행동에 의해 해결이 날 수 있을 것이라고 잘못 생각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수염(修厭)의 실천 또는 탐(貪)의 대치와 관련된 내용으로, 《성유식론》에서는, 탐(貪) 등의 불선근(不善根)을 끊기 위해서는 공통 대치법(對治法)과 개별 대치법을 둘 다 사용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공통 대치법이란 오직 선혜(善慧), 즉 선(善)의 상태의 혜(慧, 지혜)로써 탐(貪) · 진(瞋) · 치(癡) 모두를 대치(對治)하는 것이며, 개별 대치법이란 탐(貪)에 대해서는 무탐(無貪)으로써, 진(瞋)에 대해서는 무진(無瞋)으로써, 치(癡)에 대해서는 무치(無癡)로써 대치(對治)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즉, 탐(貪)을 끊기 위해서는 선혜(善慧)와 무탐(無貪)의 2가지 마음작용으로 대치(對治)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49][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