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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원로원 의원,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조부 위키백과, 무료 백과사전
마르쿠스 안니우스 베루스 (Marcus Annius Verus, 50년경 – 서기 138년)는 로마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조부이자 양부이며, 안토니누스 피우스의 장인이다.
마르쿠스 안니우스 베루스 Marcus Annius Verus | |
---|---|
출생 | 50년경 |
사망 | 138년 |
성별 | 남성 |
배우자 | 루필리아 파우스티나 |
자녀 |
|
베루스는 원로원 의원 및 법무관 지위를 얻은, 대 마르쿠스 안니우스 베루스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가문은 히스파니아 바이티카 속주의 코르두바 (오늘날 코르도바) 인근 우키비 (오늘날 에스페호)에서 기원을 했다. 그의 가문은 위세가 커졌고 스페인 내 올리브유 생산으로 부유해졌다.[1] 그는 하드리아누스 황제와 아주 절친한 관계였다.
그는 로마의 프라이펙투스 우르비이었고 베스파시아누스와 티투스가 감찰관으로 있던 시절에 파트리키 계층이 되었다. 베루스는 세 차례 집정관을 역임했는데, 처음은 97년에 보좌 집정관으로,[2] 그 뒤에는 121년과 126년에 직권 집정관직을 수행했다. 이는 '16세기 로마의 성 베드로 성당에서 발굴된, 커다란 대리석 판에서 발견된 매우 이상한 문구'의 원인일 것인데, 이 문구는 그의 세 번의 집정관직이라는 업적을 언급하는 동시에 '유리공을 다루는 그의 실력'에 대해서 찬사를 보내고 있다. 에드워드 챔플린은 이를 베루스 이후로 세 번의 집정관직을 역임했던 루키우스 율리우스 우르수스 세르비아누스라는, 베루스의 우호적인 경쟁자가 만든 것일 거라 언급한다.[3]
이에 대한 한 가지 설명은 베루스의 공을 갖고 노는 것에 대한 열정과 공 놀이가 정치적 곡예라는 개념이라는 연관성을 배경으로 한, 문구 내용 전체가 말장난이라는 것인데 우아하고 자기비판적이며 다소 신랄한 농담으로, 베루스에게는 완전히 칭찬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노년의 L. 율리우스 세르비아누스는 이 문구를 직접 쓰고 대리석 판에 새겼으며 (아마 토가를 입은 채, 공을 갖고 노는 모습을 한 조각상이 있을 것으로 추정?) 이걸 126년 1월의 칼렌다이 때 M. 안니우스 베루스에게 전하였다. 다음에 그들이 만났을 때, 이 노년들은 이 농담에 진심으로 웃는 척을 하였을 것이다. 이 내용은 가상이지만, 내용 자체는 매우 기이한 비문이다.
그는 90세에 가까운 나이인 138년에 사망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명상록'에서 "나의 조부이신 베루스께 친절한 성향과 상냥함을 배웠다"라고 하였다.[4] 노년에, 베루스는 정부가 있었는데 마르쿠스는 그녀에 대해 "자신이 할아버지보다 그 정부와 오래 살지 않아도 된다는 것"에 감사해 했다.[5]
베루스는 집정관 리보 루플리우스 프루기와 아마 비텔리우스 황제의 딸인 비텔리아 갈레리아 푼다니아 사이에서 태어난 것으로 추정되는 루필리아 파우스티나 (활동 시기: 90년)와 혼인했다.[6][7] 프루기는 또한 루필리아라는 이름의 또 다른 딸을 두었는데 그녀는 트라야누스 황제의 조카딸이다. 베루스는 파우스티나 사이에서 최소한 자녀 셋을 두었다:[8]
로널드 사임은 성명학적인 증거를 근거로 하여 베루스 부부 사이에 가이우스 움미디우스 콰드라투스 세르토리우스 세베루스와 혼인한 안니아라는 딸이 있었다고 제시한다.[9]
아들 베루스가 124년에 사망하고 나서, 아버지 베루스는 손자들을 입양하여 며느리인 도미티아와 같이 길렀다.[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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