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타 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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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타 제국(마라티어: मराठा साम्राज्य 마라타 삼라저) 또는 마라타 연맹은 18세기 인도 아대륙의 상당 부분을 다스렸던 국가이다. 1674년에 시바지 보살레가 차트라파티, 즉 황제로 즉위하며 공식적으로 건국되었으며, 1818년에 페슈와(대재상) 바지라오 2세가 영국 동인도 회사 군대에게 패배하며 멸망하고 말았다. 마라타 제국을 세운 마라타인들은 인도에서 무굴 제국의 통치를 끝내는 데에 큰 영향을 주기도 하였다.[1][2]
마라타 제국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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मराठा साम्राज्य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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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어 | हर हर महादेव (주 시바를 찬양하라) | |||
수도 | 라이가드 | |||
정치 | ||||
정치체제 | 군주제 | |||
차트라파티(황제) 1674년 ~ 1680년 1808년 ~ 1818년 | 시바지(초대) 프라탑 싱(말대) | |||
페슈와(총리) 1674년 ~ 1683년 1795년 ~ 1818년 | 모로판트(초대) 바지라오 2세(말대) | |||
입법부 | 아슈타 프라단 | |||
역사 | ||||
• 건국 | 1674년 | |||
• 멸망 | 1818년 | |||
지리 | ||||
위치 | 마하라슈트라 | |||
면적 | 2,800,000 km2 | |||
인문 | ||||
공용어 | 마라타어, 산스크리트어 | |||
데모님 | 마라타인 | |||
인구 | ||||
1700년 어림 | 150,000,000명 | |||
경제 | ||||
통화 | 루피 파이사 모호르 시브라이 혼 | |||
종교 | ||||
종교 | 힌두교 | |||
기타 | ||||
현재 국가 | 인도 |
마라타인들은 현재의 마하라슈트라 지방의 서부 데칸 고원에서 발원한 전사 부족들로, 17세기에 '인도에서 외세를 몰아내자'라는 뜻의 '힌다비 스와라지야(Hindavi Swarajya)'를 주장하며 크게 세력을 불렸다.[3] 마라타인들은 탁월한 지도자 시바지 보살레의 영도 하에 비자푸르 술탄국에 반란을 일으키며 급성장하였으며, 시바지 보살레는 라이가드를 수도로 삼아 왕국의 기틀을 다졌다. 시바지 보살레의 아버지였던 사하지 보살레는 일찍이 탄자부르를 점령하였는데, 이 영토는 시바지 보살레의 형제였던 에코지 본슬레가 상속받아 이 곳에 탄자바르 마라타 왕국을 세웠다. 마라타인들은 그들의 강점이었던 기동성을 잘 활용하여 이후 무굴 제국과의 전쟁에서 우세를 점했고, 결국에는 인도 아대륙 대부분을 지배할 수 있었던 것이다.
1707년에 무굴 제국의 아우랑제브 황제가 세상을 떠난 이후, 시바지 보살레의 손자인 샤후 보살레 1세가 무굴 제국에게서 풀려나 마라타로 돌아왔고,[4] 그의 이모였던 타라바이 보살레와의 권력 투쟁 끝에 마라타의 권력을 틀어쥐었다. 이 때 샤후 보살레는 발라즈 비슈와나트와 다나즈 자드하브의 도움을 받았는데, 이후 그들에게 감사를 표하기 위하여 발라즈 비슈와나트와 그의 후손들은 페슈와, 즉 왕국의 대재상으로 임명하여 대대손손 이어갈 수 있도록 하였다. 이후 발라즈와 그의 후손들은 마라타 제국의 확장에 크나큰 역할을 하게 된다. 마라타 제국의 최전성기에는 남쪽으로는 타밀나두, 북쪽으로는 파키스탄에까지 이르렀다. 마라타인들은 이 때에 델리에 잔존하던 무굴 제국의 황실을 없애 버리고 그 자리에 페슈와들을 임명하는 방안을 고려하였을 정도였다.[5] 1761년에는 마라타 제국의 군대가 제 3차 파니파트 전투에서 아프가니스탄의 두라니 제국에게 패배하자 마라타 제국의 동부 확장은 일시적으로 중단되었다. 파니파트 전투 약 10년 후, 페슈와 마다브라오 1세가 대대적인 개혁 정책을 폈고, 마라타 제국은 북인도 지방에 대한 영유권을 다시 확립하였다.
마라타 제국은 광대한 영토를 다스리기 위하여 지방의 기사들에게 반쯤 자율성을 부여하였고, 이들을 모아 연맹을 만들었다. 1775년에 영국 동인도 회사는 페슈와 계승 다툼에 간섭하였고, 이로 인하여 제1차 영국-마라타 전쟁이 일어나게 되었는데 마라타 제국은 이 전쟁에서 승리하였다.[6] 마라타 제국은 1805년과 1818년 사이에 일어난 2차와 3차 전쟁에서는 영국에게 패배하였고, 결국 이로 인하여 대영제국이 인도 아대륙 대부분을 점거하게 되었다.
마라타 제국의 영토 상당수는 해안에 접하고 있었기에, 마라타 제국은 막강한 해군을 육성하여 이를 보호하려 하였다. 마라타 해군은 무역을 하는 상선들을 보호하였으며, 외국의 군함들과 상선, 그들 중에서도 특히 영국과 포르투갈의 배들이 오직 허가받은 항구에만 입항하여 있도록 하는 데에 성공적이었다.[7] 마라타 제국은 해안에 강력한 요새들을 세워 항시 감시하였으며, 강력한 군대를 주둔시켜 국경을 보호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