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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륜성왕(轉輪聖王, 산스크리트어: सम्राटचक्रवर्तिन् 차크라바르틴, 산스크리트어: चक्रवर्तिराजन् 차크라바르티라자)은 고대 인도의 사상에서 말하는 이상적인 군주상으로, 지상을 무력이 아닌 정법(正法)으로 전 세계를 통치하며 황제에게 요구되는 모든 조건을 갖추고 있다고 하는 황제를 말한다. 주로 불교, 힌두교, 자이나교 등 다르마 계통의 종교에서 이상적인 군주상으로 간주되었다.
차크라바르틴이라는 말을 직역하면 '윤보(輪寶)를 돌리는 성군'이지만, '수레바퀴'를 '왕권(王權)'과 연관지어 해석하는 관념이 구체적으로 어디서 기원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정설이 없다. 몇 가지 설을 들어보면
등이 있다.
분명한 것은 이 '윤보'는 차크라바르틴이라는 이상적인 군주의 '무한한 통치권'을 상징한다는 것이다. 이미 베다 시대(기원전 2000년경) 중반 이후, 바퀴를 왕권의 상징으로 여기는 관념이 인도 세계에 존재하고 있었는데 차크라바르틴이라는 개념도 그 연장선상에 놓여있다고 할 수 있다. 이 관념은 브라만교로도 계승되었지만, 분명하게 그 개념이 형성된 것은 불교나 자이나교(당시 인도에서는 '비정통파'로 분류되던)에서였다.[1] 이후 차크라바르틴에 관한 기술은 《전륜성왕사자후경(轉輪聖王師子吼經)》이나 《대선견왕경(大善見王經)》 등의 불교 경전 여기저기서 등장한다.
석가모니가 생존하던 기원전 6세기에서 5세기경의 인도 사회는 기존의 씨족 공동체 사회가 해체되고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로서의 '도시'를 중심으로 한 도시국가가 성립되고 있었다. 통합이 추진되면서 기존의 부족이나 도시국가를 초월하는 '세계 제국'으로의 발전을 모색하는 와중에 세계를 다스리는 신화적이고 이상적인 의미의 제왕 즉 차크라바르틴 관념이 등장하게 되었다.
브라만이 제창한 왕권신수설과는 달리 국가계약설의 이념을 제시했던 불교는 국가의 '왕권'에 대한 관념의 바탕을 인간에 두고, 브라만교에서 강조한 신분 제도의 강조보다는 '법(다르마)'로 대표되는 민주적인 방법으로 사회질서를 확립하고 나라를 다스린다는 오늘날의 '공화국'과 비슷한 형태의 정치체 원칙을 강조하였다.[2] 하지만 이러한 '공화국' 형태의 국가들이 차츰 '군주국' 형태의 국가에 밀려 통합되면서 왕권은 점점 전제화되고, 계약설적 관점을 강조한 불교의 통치자관도 수정이 불가피해졌음이 지적된다. 기존의 교리와 현실 사이의 내재적인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는 군주상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차크라바르틴 사상이 채택되었던 것이다.[3] 이후 차크라바르틴 관념은 힌두교나 자이나교에도 등장하게 되었다.
불교 경전에 기술된 차크라바르틴에 대한 관념은 대체로 다음과 같았다.
세계는 번영과 쇠퇴의 순환을 반복하는데, '번영기'에는 인간의 수명이 8만년까지 달하지만 인간의 덕이 점차 없어지면서 수명은 짧아져서 모든 선이 사라진 '암흑기'에는 10년밖에 되지 않게 된다. 그 뒤 인간의 덕이 점차 회복되면서 다시 8만년까지 수명이 늘어나는 '번영기'를 맞이한다. 차크라바르틴은 바로 이 '번영기'에 등장하며, 전생의 선업의 결과로 차크라바르틴으로 탄생한 것이다. 부처와 같은 32서상(瑞相)을 지녔으며[3] 사해(四海)의 대지를 '무력'이 아닌 '법'의 힘으로 정복한다.
차크라바르틴에는 금륜왕(金輪王)ㆍ은륜왕(銀輪王)ㆍ동륜왕(銅輪王)ㆍ철륜왕(鐵輪王)의 네 종류가 있다. 철륜왕(철륜성왕)은 철의 수레바퀴(윤보)를 가지고 (고대 인도의 세계관에서는 지구상의 육지는 네 개의 섬 즉 주洲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보았다) 실제의 전쟁을 통해 하나의 주를 지배한다. 마찬가지로 동륜왕(동륜성왕)은 구리의 수레바퀴를 가지고 군사력으로 위세를 보이는 것으로 두 개의 주를, 은륜왕(은륜성왕)은 은의 수레바퀴를 가지고 먼저 사신을 보내는 것만으로 세 개의 주를 지배한다. 그리고 가장 최상인 금륜왕(금륜성왕)은 금의 수레바퀴를 가지고 모든 왕들이 스스로 머리를 숙여 귀복함으로써 네 개의 주 모두(대체로 히말라야에서 인도양에 이르는 지역)를 지배하며 결과적으로 모든 세상을 통일하는 것이다.
또한 법(다르마)에 준거한 통치를 강조하는 것으로서 "전륜왕은 확실히 법에 의지하고, 법을 공경하고, 법을 중시하고 법을 존경하고, 법을 받들고, 법을 기치로 삼아, 법을 제일로 하여 크샤트리야ㆍ가신들ㆍ군대ㆍ브라만ㆍ시민ㆍ지방민 그리고 산과 들의 짐승과 하늘의 새에 대해서도 각자에 맞는 수호와 비호, 보호를 내린다."는 기술도 있다.
이렇듯 불교의 정법(다르마)이란 국민뿐 아니라 자연의 질서까지도 조절하고 온 우주를 지배하는 힘으로 설명되는데, 만약 왕이 정법을 따르지 않으면 가뭄과 홍수, 기근, 질병, 전쟁 등의 재난이 덮친다고까지 하였다. 불교 경전에서 말한 정법의 이념을 기존의 브라만교의 경전에서 말한 제국적인 전설과 융합시킨 것이 차크라바르틴 이념의 기본적인 체계가 되었다.[4]
차크라바르틴은 자신의 수명이 다하기 전에 왕궁 위에 놓아둔 수레바퀴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왕자에게 양위한 뒤 출가하는데, 출가하고 7일이 지나면 그 수레바퀴는 홀연히 사라져 버리며 새로 즉위한 왕이 이것을 전왕인 아버지에게 물으면 아버지는 "수레바퀴(윤보)는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물건이 아니라 국왕 자신의 '공덕'으로 주어지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를 새로 즉위한 왕이 잘 알아듣고 법에 따른 통치를 행하면, 만월의 밤에 수레바퀴(윤보)는 다시 공중에 나타난다는 것이다. 만약 차크라바르틴이 출가하지 않고 재위하다 죽었을 경우 시신은 대중들의 손에 의해 부처의 시신처럼 정중히 다루어져 유골은 큰 탑에 모셔진다.
이 차크라바르틴의 시대가 끝나면, 다시 세상은 '암흑기'로 접어들게 되는 것이다.
《잡아함경(雜阿含經)》에 보면 차크라바르틴은 7보(寶)와 4신덕(神德)을 갖추고 있다고 여겨진다.
여기에 4신덕, 즉 네 가지의 신령한 덕이란
이다.
차크라바르틴에 대한 설명은 '일곱 보물과 네 가지 신덕'이라는 《잡아함경》의 표현에서 점차 '4주(洲)의 왕', '4변의 정복자' 혹은 '여법한 법왕'이라는 《장아함경》의 정형화된 문구로 표현되고 있는데, 비교적 성립 시기가 늦은 불전일수록 반영된 세계관은 더욱 확장되어 그 개념도 복잡하고 다양하게 진화된 양상을 보이는 것은 대표적인 차크라바르틴으로 꼽히는 아소카(후술)라는 구체적인 인도의 역사적 경험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을 것으로 유추된다.[5]
인도의 역사에서 이러한 차크라바르틴 관념이 실제 정치에도 영향을 준 사례로 가장 먼저 마우리아 제국의 황제인 아소카를 꼽는다. 다만 전륜성왕의 관념과 아소카의 '다르마의 정치'가 어떤 관계에 있었는지는 분명히 정의하기 어려운데, '법(다르마)에 의한 통치'라는 아소카의 이상이 불교 경전에서 말하는 차크라바르틴의 모습에 매우 가까운 것이긴 하지만 아소카의 시대에 이러한 '전륜성왕관'이 형성되었는지 분명히 증명할 사료가 없다. 마우리아 제국이라는 거대한 '제국'의 성립을 배경에 두고 '모두를 지배하는 이상적인 군주'로서의 차크라바르틴 관념이 성립된 것이라는 설이 있는 반면, 이미 형성되어 있던 차크라바르틴 관념에 영향을 받은 아소카가 '법(다르마)의 통치'를 외치게 된 것이라는 설도 있다.
인도에서 차크라바르틴으로 칭한 왕으로서는 마하메가바하나의 왕이었던 카라벨라가 있는데, 그는 차크라바르틴 말고도 '차크라(輪)'라는 단어가 들어간 많은 칭호들을 사용했다. 다만 카라벨라 왕이 이용한 이들 칭호란 전후의 문맥이나 그 자신이 남긴 사적들을 통해 유추해볼 때 이상왕으로서의 전륜성왕보다는 왕이 가지는 권력의 상징으로서의 '차크라'였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팔라바 제국, 촐라 제국, 비자야나가라 제국의 황제들도 차크라바르틴을 자칭했으며,[6][7] 여기서의 차크라바르틴 관념은 불교에서의 차크라바르틴 개념이 아니라 힌두교에서의 차크라바르틴 관념에 가까웠는데, 힌두교에서 차크라바르틴은 유지의 신 비슈누의 수다르샨차크라와 연관되었기 때문에 질서의 수호자이자 비슈누의 대변자로서의 지위를 지녔다. 동남아시아에서는 왕의 정식 명칭의 일부로 쓰이거나 아유타야 왕국의 차크라파트처럼 현지어로 와전되기도 했지만, 직접적으로 그 말이 이름에 쓰이기도 했다. 《대반야바라밀경(大般若波羅蜜多經)》에도 이 말이 있다. 티베트 불교 지역권에서는 원(元)의 쿠빌라이나 북원(北元)의 알탄 칸, 청(淸)의 역대 한(汗)들이 으레 전륜성왕으로 비유되곤 했다.
한국의 역사에서 전륜성왕을 지향한 일을 가장 확실하게 확인할 수 있는 군주로는 신라(新羅)의 진흥왕(眞興王)을 꼽을 수 있다. 경주(慶州) 황룡사(黃龍寺)의 창건설화에도 보이듯 아소카를 전륜성왕의 모델로 삼았던 진흥왕은 두 왕자에게도 각각 동륜성왕과 철륜성왕을 가리키는 '동륜(銅輪)'과 '사륜(舍輪)'이라는 이름을 주었다.[8] 말년에는 머리를 깎고 스스로 출가하였는데 이에 대해서는 아소카도 말년에 승려로서 출가하였다는 전승과의 관련을 지적하는 설이 있다.[9] 또한 백제의 성왕, 발해의 문왕, 신라의 법흥왕ㆍ선덕여왕ㆍ진덕여왕도 전륜성왕을 표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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