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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리안치(圍籬安置)는 중죄인에 대한 유배형 중의 하나이다. 죄인을 배소에서 달아나지 못하게 하기 위해 귀양간 곳의 집 둘레에 가시가 많은 탱자나무를 돌리고 그 안에 사람을 가둔다. 탱자나무는 전라남도에 많았기 때문에, 대개 죄인들은 전라도 지역의 섬에 유배되었다.
위리안치는 ‘가택연금형’으로 1464년 조선 세조 10년 11월 18일 안치 죄인인 종친 화의군 이영, 한남군 이어 등에 대한 ‘금방조건’[1]을 의금부에서 마련하였는데 이를 통해 그 내용을 알아볼 수 있다.[2]
1506년 연산군이 폐위되어 강화도 교동에 위리안치되었다.
1613년 광해군 5년 영창대군을 강화도에 위리안치하였다. 이듬해 1614년 이이첨 일파가 강화부사 정항을 시켜 영창대군을 증살하였는데 이때 영창대군의 나이 9세였다. 1615년에는 능창군을 교동에 위리안치하였다.
1623년 광해군도 폐위 후 광해군과 폐비 유씨, 폐세자 이질과 폐세자빈 박씨 등 네 사람은 강화도에 위리안치 되었다.
혜경궁에게 문안을 드리지 않았다는 표면적인 죄상으로 흑산도에 유배시키고 실제 이유는 과거 외조부 홍봉한을 공격한 데 있음을 밝혔다. 1779년에는 홍국영에 의해 더 높은 형벌인 흑산도로 위리안치에 처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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