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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사오 문화(중국어: 仰韶文化, 병음: Yǎngsháo wénhuà)는 황하 중류의 채도를 동반한 신석기의 농경문화이다. 채도가 특색으로 채도문화(彩陶文化)라고도 하였다. 하지만 현재는 다양한 지역에서 많은 유적 발견으로 채도문화설은 학자들 사이에서 배격당하고 있다. 기원전 5000년 ~ 기원전 2700년 사이에 존재했다.[1]
유적의 대부분은 강기슭의 대지(臺地)에 있고, 거주지와 공동묘지가 있다. 정주생활을 했고 조·수수 등을 재배하고 가축 사육과 사냥, 고기잡이도 병행했다. 간석기·뗀석기·돌식칼 등으로 수확하고, 흙을 구워서 만들거나 돌을 갈아 만든 팔찌도 애용했다.[1]
토기로는 붉은간토기와 바탕흙에 모래알이 함유된 회도(灰陶)가 있었는데, 특히 일부 붉은간토기에 기하학무늬와 사람 얼굴 등을 그린 채도는 제사라든지 묘장공헌(墓葬供獻)에 쓰였다. 성인(成人)은 공공묘지 안의 구덩이에 매장되었으며, 어린 아이는 옹관장(甕棺葬)으로 집 근처나 마루 밑에 묻혔다. 유적은 하남성(河南省) 서부, 산서성(山西省) 남부, 섬서성(陝西省) 중부 등지에 분포되어 있으며, 대표적 유적으로는 산시 성 서안시(西安市) 반파(半坡) 유적을 표준으로 하는 반파 문화와 하남성 섬현(陝縣)의 묘저구(廟底溝) 유적을 표준으로 하는 묘저구 문화가 있다. 시간적으로는 반파 유적쪽이 더 오래되었다.[1]
양사오 문화는 황하 상류에 전파되어 간쑤양사오(甘肅仰韶)문화의 탄생과 산둥(山東)의 농경문화에 영향을 끼쳤다. 중원에서는 이 문화에 뒤이어 룽산 문화(龍山文化)가 성립했다. 최근의 새로운 조사를 통해 허난 성 신정 현(新鄭縣)의 배리강(裵李崗)과 허베이 성 무안 현(武安縣)의 자상(磁上) 등에서 양사오 문화보다 앞서 있었던 초기 농경문화의 존재가 알려지게 되었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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