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특별시 강동구에 위치한 법정동 위키백과, 무료 백과사전
암사동(岩寺洞)은 서울특별시 강동구에 위치한 법정동으로 8호선 암사역이 있다.
동쪽으로는 천호1동˙명일동과 인접하고, 서쪽은 한강을 건너 광진구, 남쪽은 구 암사시장이 자리한 천호2동, 북쪽은 구리암사대교를 건너 구리시가 있다.
암사동이라는 이름은 삼국시대의 9개의 사찰(절터)이 위치해 있어서 구암사(九岩寺), 속칭 바위절이라 하던 것이 암사동으로 변하여 오늘에 이른 것이다. 삼국시대 초창기 백제 불교의 효시인 백중사가 위치했던 자리라 추정한다. 이후 고려 시대에 이르기까지 7개의 사찰이 더 증축이 되었다고 전하였다. 조선시대 구암사리로 불리다가 1914년 주소 사업으로 볕우물, 불현마을, 점마을, 새장터 등을 합하여 구천면 암사리로 이름붙여졌고, 이후 서울에 편입되며 지금의 암사동이 되었다. [1]
신석기시대에 사람이 살던 흔적이 오늘날까지 남아있으며, 이 암사 선사유적지는 사적으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다.
오늘날 선사유적지에 해당하는 강변 지대는 한강 수로의 뱃길과 맞닿아 배가 쉬어가는 곳이기도 했는데, 이들을 상대로 장사하는 사람이 많아 현금의 유통이 빠르고 구천면의 다른 지역보다 부유했다고 전해진다.
법정동 | 행정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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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사동 | 암사제1동 |
암사제2동 | |
암사제3동 |
올림픽대로가 인접해 있어서 교통이 편리하다. 암사대교가 개통되어 있으며, 지하철 8호선이 암사역에서 구리를 거쳐 진접신도시까지 연장 개통이 계획 중이다.
구암사 중 오랫동안 명맥을 유지해 온 백중사(伯仲寺)가 암사라는 이름으로 알려지기도 하였으며, 서거정이 읊은 「백중사」[2] 시가 전한다.
백중사라는 절의 위치에 대해서는 조선시대 집필된 신증동국여지승람 제 6권 광주군 부분에서 백중사 라는절은 하진참(下津站) 동쪽에 있다라고 전하였다.
고려말에서 조선초기때까지 이 절은 위치하였으나 중종때 승과를 없앴고, 이후
임란을 맞이한 뒤 유림들이 번창했던 1700년대 즈음 사라진것으로 추정이 된다.
아래의 시는 경기도 광주군 구천면 암사리 (지금의 서울시 강동구 암사동) 고지봉옆
한강 연안에 있던 일명 암사(岩寺), 또는 암회사(岩回寺) - 백중사(伯仲寺)를 소재로 한 서거정의 사찰과 풍류의시이다.
伯仲寺 백중사에서
招提架蒼獻 (초제가창헌)
何日側金開 (하일측금개)
落葉無人掃 (낙엽무인소)
空堂有客來 (공당유객래)
山形臨水斷 (산형임수단)
水勢觸山廻 (수세촉산회)
坐共高僧話 (좌공고승화)
胸襟自不埃 (흉금자불애)
<사가정 : 사가시집 - 보유 . 3>
사찰이 푸른 벼랑에 걸렸는데,
언제쯤 금을 펼쳐 저리 지었나.
낙엽이야 쓰는 사람 없을망정
절집에 찾아오는 길손 있구나.
산세는 못물에 이르러 끊겼고
물굽인 산에 부딪쳐 굽도누나.
앉아서 고승과 함께 대화하니
마음은 제냥 세속 티끌 사라져.
벼랑(蒼獻)에 매달린 듯한 사찰(招提), ‘금개’는 ‘부처님을 연화대에 모셨는가’란 뜻이니, 기련 1.2구는 예사롭지 않은 사찰의 전경으로 시상을 열었다. 대구인 3.4구는 ‘없고 : 있음’으로, 대를 맞춰 고즈넉한 산사의 정밀경, 이른바 세속과의 차별성을 전제로 법계의 위상을 설정했다.
5.6구 역시 ‘산 : 물’의 형상으로 대를 맞추되 ‘산 다한 곳, 그러니 산자락 다하자 물이 모인 못이요, 모인 물은 산자락 굽이굽이 굽돌아 흐른다는 백중사의 실경 묘사로 7.8구의 주제를 유도했다.
곧 불자와 유가와의 선문답이 아니라, 유불불이(儒佛不二)의 법문, 혹은 청정법문이었대도 좋다. 워낙 도란 상대에 대한 인정이요, 시문의 예도 역시 다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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