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move ads
금관가야의 초대 왕 위키백과, 무료 백과사전
수로왕(首露王, 42년 4월 11일(음력 3월 3일) (임인년)[1] ~ 199년 5월 6일(음력 3월 23일) , 재위: 42년 4월 23일(음력 3월 15일) ~ 199년 5월 6일(음력 3월 23일) [2]) 또는 김수로(金首露)는 가락국(駕洛國)의 초대 국왕이며, 김해 김씨의 시조이다. 시호는 수릉왕(首陵王)이다.[3]
수로왕 首露王 | |
---|---|
수로왕 표준영정 | |
제1대 금관가야 국왕 | |
재위 | 42년 4월 23일(음력 3월 15일) ~ 199년 5월 6일(음력 3월 23일) |
대관식 | 수로왕(首露王) |
전임 | (초대) |
후임 | 거등왕(居登王) |
이름 | |
휘 | 김수로(金首露) |
이칭 | 뇌질청예(惱窒靑裔) |
묘호 | 세조(世祖) 태조(太祖) |
시호 | 수로왕(首露王) 수릉왕(首陵王) |
연호 | 미상 |
신상정보 | |
출생일 | 42년 4월 11일(음력 3월 3일) |
출생지 | 구지봉(龜旨峰) |
사망일 | 199년 5월 6일(음력 3월 23일) (157세) |
사망지 | 금관가야(현 김해시) |
왕조 | 가락국(駕洛國) |
가문 | 김해(金海) |
배우자 | 허황옥(許黃玉) 보주태후(普州太后) |
자녀 | 10남 2녀, 거등왕(居登王) |
종교 | 불교 |
묘소 | 수로왕릉(首露王陵) |
신라 유리왕 19년(42년) 가락국 북쪽 구지봉(龜旨峰)에 하늘로부터 떨어진 6개의 금란(金卵)이 모두 변하여 6가야국의 왕이 되었다고 하는데, 김수로도 그 가운데 하나이며, 변한(弁韓)에서는 왕(王)을 간(干)이라고 부른 것을 알 수 있는데 9명의 간이라는 뜻인 구간(九干)들이 수로를 왕으로 추대하였으며 나라 이름을 가락국이라 하였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가락국기에 의하면 하늘에서 내려온 6개의 황금 알 중 가장 먼저 깨어난 9척(약 2m[4])의 소년이 수로왕이 되었다고 하나, 신라의 최치원에 의하면 그가 천신 이비가지와 정견모주라는 여성의 아들이었다고 기록하였다. 전설에 의하면 150세 이상을 생존했다고 한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가락국기에 의하면 변한의 구야국에는 주민들이 각 촌락별로 나뉘어 생활하고 있었다. 그런데 42년 음력 3월 변한의 구야국 왕들인 9명의 간(干)들에게 하늘에서부터 "너희들의 왕을 내려 보낸다"라는 계시를 주고 왕을 내려보내기 위해선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놓아라. 그러지 않으면 구워서 먹으리"라는 노래를 부르라고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늘의 계시를 들은 가락국 9명의 간들과 2백 3명의 백성들이 김해의 구지봉(龜旨峰)에 올라가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춤을 추면서 하늘에서 들려온 말대로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놓아라. 그러지 않으면 구워서 먹으리"라고 구지가(龜旨歌)를 불렀다.
변한의 구야국 백성들이 모여들며 노랫소리가 커지자 하늘에서 빛이 나더니 곧 붉은 보자기에 싸인 금빛 상자가 내려오고, 그 안에 둥근 여섯의 황금 알이 들어있었다. 12일 후 이들 금알에서 사내아이들이 태어났는데, 그 가운데 키가 9척이며 제일 먼저 알에서 깨어난 아이가 수로였다. 9명의 간들은 그를 6가야 중 수도이자 영토가 넓은 가락국의 왕으로 추대하여 주민들은 그를 가락국의 왕으로 받들었고, 또한 나머지 다섯 동생들도 각각 5가야의 왕이 되었다고 한다.
신라의 학자 최치원이 여러 고을을 돌아다니며 기록들을 수집하여 쓴 석이정전(釋利貞傳)의 내용에 따르면 가야산의 여신 정견모주(正見母主)가 하늘의 신(神)인 이비가지(夷毗訶之)에 감응하여 두 아들을 낳았는데 한 명은 이름이 뇌질주일(惱室朱日)이었고, 다른 한 명은 뇌질청예(惱窒靑裔)라고 하였다. 금관가야의 시조가 된 뇌질청예(김수로왕)는 여신 정견모주를 닮아 얼굴이 희고 갸름했으며 대가야의 시조가 된 뇌질주일(이진아시왕)은 이비가지를 닮아 얼굴이 해와 같이 둥글고 붉었다고 한다.
석탈해와 재주를 겨룬 뒤 이겨 가락국의 왕 자리를 지켰고, 102년, 파사 이사금의 요청으로 실직곡국과 음즙벌국 사이의 영토 분쟁을 중재하였다. 이에 파사 이사금이 6부에 명하여 수로를 위한 연회에 모이게 하였다.
부인은 허황옥(許黃玉)이며, 189년까지 무려 158년 동안이나 살았다는 신화적 인물이다.[5] 수로왕은 허황옥을 태우고 온 15명의 아유타국 선원들에게 450필의 비단을 내렸는데 이는 대단히 많은 물량이며 또한 옷감 450필, 쌀 150섬을 싣고 움직일 수 있는 배를 이미 갖고 있었다는 것은 가야가 연안 항해뿐만 아니라 국제적인 뱃길도 꿰뚫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또한 그러한 물량은 단순한 하사품이라기보다 교역 물량이라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6]
문무대왕 때 수로왕의 위패를 신라의 종묘에 봉향하고 제를 올린 적이 일시적으로 있었다. 문무대왕은 김수로왕의 15대 외손에 해당된다. 이 설에 의하면 김유신 가(家)는 "구형왕 - 무력 - 서현- 유신"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구형왕 - 세종 - 솔지 - 서현 - 유신"으로 이어져 삼국유사나 삼국사기의 신라본기의 내용과 차이가 있다.[7]
《삼국유사》가락국기에는 문무대왕이 외가의 조상인 가락국의 김수로왕 제사에 관한 교서를 내린 사실을 전하고 있다
“ | 가야국 시조의 9세손인 구형왕이 신라에 편입될 때에 거느리고 온 아들인 세종의 아들이 솔우공이고, 그 아들인 서운(김서현)의 딸 문명왕후께서 나를 낳으셨다.[7] 때문에 시조인 수로왕은 나에게는 15대 조가 된다. 나라는 이미 없어졌지만 그 묘가 아직 남아 있으니 종묘에 합사하여 제사를 계속하도록 하라.[7] | ” |
《삼국유사》가락국기에 따르면 문무대왕은 가야국의 태조 김수로왕을 신라 왕실의 종묘에 합사하도록 특별교서를 내리면서, 자신을 "구형왕 - 세종 - 솔지 - 김서현 - 문명왕후"로 이어지는 외가의 후손으로 칭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김솔지는 세종의 아들로 구형왕의 손자가 되는데, 이는 김서현을 김무력의 아들, 세종의 조카로 보는 통설과는 상반된다.
《삼국유사》 가락국기의 기록에 따르면, 3월의 재계일(齋戒日)에 구지봉(龜旨峰)에 9간(干:족장 또는 왕)들이 203명의 무리를 거느리고 모였을 때, 하늘로부터 “하늘이 나로 하여금 이곳에 새로 나라를 세워 다스리라 명하므로, 내가 거기로 내려가고자 한다”는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6개의 황금알이 담긴 금합(金盒)을 받았는데, 몇 시간 뒤 그 알 속에서 나온 아기들이 6가야국의 왕이 되었으며, 그 중 가장 먼저 나와 ‘수로’라는 이름으로 불린 키가 가장 큰 인물이 김해김씨의 시조이자 금관가야의 건국자가 되었다는 신화이다. 특히 이 신화는 하늘의 신이 아도간(我刀干) ·여도간(汝刀干) 등 9명의 간들이 부족들을 다스리는 부족(9간) 연합사회의 통치자로서 인간사회에 내려왔다는 것과, 인간사회가 그를 환영의 극치인 ‘춤과 노래’로 스스럼없이 맞아들여 왕으로 삼은 영신(迎神)신화라고 해석하고 있다.
Seamless Wikipedia browsing. On steroids.
Every time you click a link to Wikipedia, Wiktionary or Wikiquote in your browser's search results, it will show the modern Wikiwand interface.
Wikiwand extension is a five stars, simple, with minimum permission required to keep your browsing private, safe and transpar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