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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가 승천한 이후 사도들의 행적을 기록한 책 위키백과, 무료 백과사전
사도행전(使徒行傳, Acts of the Apostles)은 예수 승천 후 사도들 행적을 기록한 책이다. 초대 교회 예수 운동과 성령의 역사를 이해할 수 있는 성경이다. 초기 선교사역에 관한 역사적 개설서로 현대와 같은 형태의 교회 전례력이 형성되는데 이바지했다.[1]
사도행전과 루가의 복음서는 본래 한 편의 책이었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한 명의 저자가 쓴 것으로 추정하는데, 전통적으로 루가가 쓴 것으로 이해한다.[2] 기원후 80년대에 작성했다고 보는 시각이 대부분이나 기원후 90~110년경에 작성했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사도행전 앞부분인 루가복음은 야훼가 나사렛 예수의 탄생과 공생애와 죽음과 부활을 통해 자신의 구속사를 어떻게 완성하였는지에 관해 서술한다. 사도행전은 그 뒤를 이어 예수의 승천을 시작으로 초대 교회가 형성되는 과정을 증언한다. 사도행전 첫 부분은 예루살렘을 배경으로 성령 강림인 오순절 사건을 비롯해 예루살렘 교회의 성장을 기록한다. 유대인들은 처음에는 복음을 수용하지만 곧 배척한다. 사도 바울로의 개종 후 복음은 이방인들에게 전달된다. 책 후반부는 바울로의 개종, 소아시아와 에게해 선교, 그리고 로마에서 투옥에 관한 이야기를 담는다.
루가 복음서와 사도행전은 '어떻게 유대인의 구세주인 메시아가 비유대인 중심의 교회를 갖게되었는가'라는 질문에 관한 답변이다. 이 질문에 관해 저자가 제시하는 답변은 유대인이 예수를 거부했다는 것이다.[3] 또한 루가 복음서와 사도행전은 유대인들에게 보내는 '예수 운동'에 관한 변호문이기도 하다. 율법 강론과 설교 대부분은 유대인 청중을 대상으로 한다.[4] 또한 저자는 예수의 추종자들을 유대인의 한 종파로 묘사하는데, 이는 기독교인들이 공인된 종교의 신자로서 법적 보호를 받을 자격이 있음을 변호하기 위한 것이다.[5]
사도행전이라는 명칭은 2세기 후반에 이레네오가 처음 사용한 것이다. 사도행전이라는 이름을 이레네오가 붙인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적어도 저자가 처음부터 사도행전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은 아니라는 것이 정설이다. 이레네오가 사용한 '행(行)'에 대응되는 단어 '프락세이스(πράξεις)'는 본문 19장 18절에서 단 한 번만 사용되는데, 이 행동의 주체는 사도가 아니라 기독교인들이기 때문에 사도행전이라는 이름이 처음부터 붙여진 것은 아님을 알 수 있다.[6]
루가의 복음서와 사도행전은 본래 한 편의 책이다.[2] 이 둘을 합치면 신약성경의 약 27.5%로, 이 두 책의 저자는 단일 저자로서 신약성경의 가장 많은 부분을 작성한 것이다. 반면 저자의 이름은 어디에서도 나타나지 않는다.[7] 다만 2세기 교회 전승에서 비롯된 전통적인 해석으로 말미암아 사도 바울로의 동역자인 루가를 이 두 책의 저자로 유추할 뿐이다. 즉, 루가는 데오빌로에게 보낸 복음서인 루가의 복음서에서는 예수의 복음과 행적을 기록하고, 사도행전에서는 예수 운동이 어떻게 진행되었는가를 기록하고 있다. 사도행전 1장 1절에서 "데오빌로여 내가 먼저 쓴 글에는 무릇 예수께서 행하시며 가르치시기를 시작하심부터"에서 당시 로마의 기사 계급이며 루가와는 절친한 사이였던 데오빌로의 등장은 루가복음 1장 3절에서도 나타난다. 또한 사도행전 16:8-10,20:5-15,21:1-18,27:1-28:16에서 보이는 '우리(고대 그리스어: ἐγώ 헤민[*])'라는 의미는 당시 상황을 함께 바라본 목격자로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바울이 자신의 동역자중 직접 언급하지 않은 인물은 루가와 디도뿐이라는 점도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고 본다. 또한 사도행전 3:7, 4:22, 9:18, 12:23, 13:11, 28:8에 사용되는 의학용어는 상당히 구체적이고 전문적이라는 점에서도 의사인 루가가 저자였다는 주장에 힘을 싣는다.
그러나 사도행전에서 기록하는 바울로의 기록과, 바울로 서신에서 바울로 본인이 증언한 자신의 이야기에 일치하지 않는 부분이 종종 나타난다는 점에서 저자가 루가가 아니라는 의견도 제기된다.[8] 이들은 대표적으로 사도행전 9장, 22장, 26장에 기록된 바울로의 회심 사건 및 그 직후의 일과 갈라디아인들에게 보낸 편지 1장에서 바울로의 직접 증언에 차이가 있음을 지적한다.[9] 또한 바울이 예루살렘 교회를 방문한 횟수를 다르다는 점도 지적된다. 그러나 이 부분은 당시 교통 또는 연락 상황에 비추어 볼때 누락되었을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고 갈라디아인들에게 보낸 편지 1장과 2장에서 바울은 모든 행적을 낱낱이 보고하고 있지는 않고 중요사건과 방문만을(갈1:18,2:1) 기록한 것으로 보기도 한다. 두번째로는 사도 바울로의 신학사상에 대한 이견에 대한 지적이다. 바울은 로마인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신칭의에 대한 신학을 정립했고 이는 바울의 핵심 신학 사상이라고 인데, 이와 관련된 내용이 사도행전에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는 바울의 신학사상을 너무 편협하게 보는 시각이라는 지적과 루가는 이미 루가복음의 저자로서 실재 예수님의 기적과 표적을 경험했기 때문에 그의 신학적 표현 내용은 다소 바울의 신학과 다를 수 있다는 가능성도 반론의 하나의 커다란 주제로 인식된다. 실재로 백석대학교 김경진 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루가가 바울을 사도로 인정하지 않는 근거는 바울이 예수의 사역에 친히 참여하고 목격한 증인으로서의 사도의 자격에 부합하지 않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루가의 이런 행동은 루가 자신의 소신에 따른 결과라고 생각된다. 그 증거를 사도행전 1장에서 찾을 수 있다. 이 때 베드로가 제시한 사도의 자격은 한 마디로 예수가 세례 요한에게 받으신 후 부활하실 때까지 그 모든 과정을 친히 목격한 증인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특별히 루가는 사도행전에서 사도의 자격으로서의 증인을 무척이나 강조하고 있다. 그런데 바로 이 자격 조건에 따르면 바울은 결코 그에 해당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부활 후에야 예수를 만났기 때문이다.[10]
이들은 루가의 복음서와 사도행전의 저자가 바울로의 추종자이기는 하지만, 사도 바울로의 견해들을 직접 공유하지는 않았다고 본다.[11] 그럼에도 저자가 식자층이었으며, 노동자는 아니지만 육체 노동을 존중하는 사람이었고, 아마도 도시에서 태어나고 자란 인물일 것이라는 데에는 동의한다. 식자층임에도 육체 노동자들 및 소상공인들을 존중하는 태도는 당시 흔한 것이 아니었다.[12]
작성 시기에 대해서는 바울로가 로마에 투옥된 기원후 62년로 보는 시각도 있지만, 주류 학계가 인정하는 사도행전의 추정연대는 서기 80년대이다.[13][14] 이들은 루가의 복음서와 사도행전이 마르코의 복음서를 참고한 흔적이 나타나며 예루살렘 파괴를 암시하지만, 1세기 후반에 기독교 공동체들 사이에서 공유되기 시작한 바울로 서신을 참고한 흔적은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에 주목한다. 그러나 바울로 서신과 요세푸스의 저작을 참고했다고 보는 학자들도 있는데, 이들은 서기 2세기 초에 루가의 복음서와 사도행전이 작성되었을 수도 있다고 본다.[15] 그러나 대부분의 학자는 요세푸스의 저작을 참고하지 않았다고 보는데, 만일 요세푸스의 저작을 참고한 것 처럼 보여지는 부분이 있다면 그것은 더 오래된 공동의 사료를 참고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16]
현존하는 사본은 크게 서방형(Western text-type)과 알렉산드리아형(Alexandrian)이 있다. 사도행전을 완전히 보존하고 있는 사본 중 가장 오래된 것은 알렉산드리아형의 경우 서기 4세기로 거슬러 올라가는 반면, 서방형의 경우 서기 6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다만 파편화되어 남아있는 본문은 서방형의 경우 서기 3세기의 것도 전해진다. 서방형 사본의 경우 알렉산드리아형 사본보다 대략 6.2~8.4% 더 긴데, 알렉산드리아형 사본에 없는 내용은 대부분 성령의 사역을 강조하고 유대인들이 메시아를 거부하는 내용이다.[17] 대다수의 학자들은 서방형보다 짧은 알렉산드리아형을 더 선호하고 더 큰 권위와 신뢰를 주지만, 루가의 복음서의 경우 더 짧은 서방형 사본에 권위를 둔다.[17]
사도행전은 바울로를 비롯한 사도들이 그들의 이성과 열정으로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케리그마를 선언한 예수 운동을 벌여간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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