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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8년에 개발된 영국의 경전차 위키백과, 무료 백과사전
빅커스 6톤 경전차 또는 빅커스 마크E는 빅커스사에서 자비로 설계한 영국산 경전차다. 영국 육군은 이 전차를 도입하지 않았으나 많은 외국 군대가 이 전차를 도입했고, 소비에트 연방이 T-26 경전차로 거의 완벽하게 복제하기도 했다. 또한 폴란드의 7TP는 이 전차의 후계 차량이다. 제2차 세계 대전이 시작될 즈음, 이 전차는 르노 FT-17 이후 세계적으로 두 번째로 가장 보편적인 전차 설계의 기준이 되었다.
최초의 빅커스 Mk.E는 1928년에 개발되었다. 이 전차를 개발한 설계팀에는 유명한 전차 설계자인 존 발렌타인 카든과 비비안 로이드가 포함되어 있었다. 차체는 리벳 강철판으로 만들어졌으며, 차체 및 포탑 전면은 장갑판 두께가 25mm였고, 차체 상부의 얇은 부분은 19mm 정도였다. 추진력은 80 ~ 95 마력(버전에 따라 다르다)을 내는 암스트롱 시들리 푸마 엔진이었다. 이 엔진은 도로 상에서 최고 속도 35km/h를 냈다.
서스펜션은 2개의 차축을 사용하여, 판 용수철(leaf spring)으로 연결된 2개의 바퀴로 구성된 보기륜에 힘을 전달했다. 셋트로 구성된 보기륜이 전진하는 운동이 스프링을 통해 다른 보기륜을 끌고가도록 되어 있었다. 이 시스템은 제법 괜찮은 시스템으로 간주되었고, 비록 비슷한 시기의 크리스티식 서스펜션과 비교하지는 못했지만 일반적인 야지 성능보다 좋았다. 고강도 강철 궤도는 동시대의 전차들보다 양호한 5000 km (3000 마일) 이상의 수명을 제공했다.
이 전차는 2가지 버전이 만들어졌다.
B형은 진정한 혁신품임을 입증했는데, 2인승 포탑이 여타 무기들의 발사속도를 극적으로 증대시켰다는 점을 입장했던 것이다. 설계자들이 "이중 설치"(duplex mounting)라고 불렀던 이 설계가 이후 모든 전차의 설계에 공통적인 요소가 되었다.
서스펜션의 성능을 의심한 영국 육군은 이 전차를 채용하지 않았다. 그러자 빅커스는 모든 구매자들에게 이 전차의 설계를 홍보하기 시작했고, 곧 소련, 그리스, 폴란드, 볼리비아, 시암(태국), 핀란드, 포르투갈, 중국과 불가리아로부터 주문을 받았다. 그러나 영국은 제2차 세계 대전이 일어났을 때 사들였다. 빅커스는 총 153대를 생산했다.
폴란드에서 실시된 시험에서 빅커스E는 공냉식 푸마 엔진의 공기 흡입량이 적어 과열되는 경향을 보였다. 이 문제는 차체 측면에 더 큰 공기 통풍구를 추가하는 방안이 제안되었다. 이 때문에 벨기에가 새로 주문했을때에는 엔진을 롤스로이스 팬텀II 수냉식 엔진으로 교체했다. 이 엔진은 차체 후방에 장착할 수 없어서 전차의 왼쪽 측면에 장착했고, 이 때문에 포탑은 오른쪽으로 보다 치우쳐서 탑재하게 되었다. 이렇게 개조된 빅커스 6톤 전차는 Mk.F 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고, 벨기에는 샘플 한 대를 테스트했으나, 시험 결과 채용을 거부했다. 그렇지만 구형 엔진을 장착한 새로운 차체는 핀란드와 시암(현재의 타이)에 팔렸다.
영국 육군은 60파운드 포(127mm)를 끌 수 있는 포병 트랙터 용도로 Mk.E를 소수 개조하였다. 영국 육군은 Dragon, Medium Mark IV'라는 이름으로 12대를 주문했고 중국이 23대, 인도가[1] 18대를 주문했다.
폴란드는 대체적으로 설계에 만족하여 50대를 구매하여 자국에서 면허 생산했다. 폴란드는 빅커스6톤 전차에 기존에 보유하고 있던 디젤 엔진과 기관총, 그리고 더 커진 공기 흡입구를 장착하는 개조 작업을 수행했고, 이를 7TP라 명명하여 채용했다. 원형의 빅커스 6톤 전차는 38대만이 운용되었고, 12대는 조립되지 않은 채 남겨져 예비 부품으로 활용되었다. 38대의 원래 2포탑 전차는 나중에 22대가 개량된 포탑 및 47mm 주포를 탑재한 1개 포탑형으로 개조되었다.(표준 B형이다)
소련도 빅커스 전차의 설계에 만족하여 면허 생산했다. 그러나, 소련의 경우 자국 내 생산은 T-26 경전차로 생산하기 시작하여 여러 가지 파생형을 포함하여 대략 12,000대 이상 생산했다. 소련은 초기 2포탑 T-26에 7.62mm DP-28 기관총을 각 포탑에 장착하거나 기관총 1정과 37mm 포를 각 포탑에 혼성 탑재했다. 나중에 더 일반화된 버전은 45mm 주포와 2정의 DT 기관총[2]을 장착했다. T-26의 마지막 버전은 차체와 포탑의 경사 장갑을 용접 방식으로 생산했다. T-26이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가능한 플랫폼이었던 때문에 소련은 T-26 차체에 기반한 공병 차량을 만들었다. 화염방사기나 가교 전차같은 것들이다. 유명한 무선 조종 파괴 전차도 T-26 차체를 이용한 것이었다. 스페인 내전 중에 소련은 T-26을 공화파 군대에 300여대가량 지원했다. 1937년 3월, 과달라야라 전투에서 공화파의 T-26에 시달렸던 이탈리아군은[3] 이 전차들의 일부를 노획하여 M13/40의 참고 모델로 삼았다.
1939년에 소련과 핀란드 간의 겨울 전쟁 중에 핀란드군 기갑부대는 대략 32대의 구식 르노 FT-17 전차와 기관총으로 무장한 몇 대의 빅커스-카든-로이드 Mk. IV 등과 함께 26대의 빅커스 6톤 전차로 무장하고 있었다. 빅커스 6톤 전차는 종전 후에 37mm 보포스 대전차포로 주무장을 바꾸게 된다. 이 전차들 중 13대만이 전선에 투입되어 전투에 참가할 수 있었다[4].
겨울 전쟁 중인 1940년 2월 26일 혼카니미 전투에서, 핀란드는 전쟁 중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자신들이 보유한 빅커스 전차를 소련군 기갑부대와 전투에 투입했다. 그 결과는 재난에 가까웠다. 핀란드군 빅커스 6톤 전차 13대 중에서 고작 6대만이 전투가 가능했고 소련군 방어선에 첫 번째 공격에 참가할 수 있었다. 상황은 더 나빠져 6대 중 1대는 넓은 참호를 넘을 수 없어서 전진을 멈춰야 했다. 남은 5대는 고작 수 백미터를 계속 전진했으나 혼카니미 마을에 주둔하고 있던 소련군 전차 12대 한복판으로 뛰어들었다. 핀라든군 전차들은 소련군 전차 3대를 격파했지만 곧 그들 자신들도 격파되었다.[5] 이후에 계속된 정찰전에서 핀란드군은 2대의 빅커스 전차를 더 잃었다[6].
1941년에 핀란드는 그들이 보유한 빅커스 6톤 경전차에 겨울 전쟁 중에 노획한 소련제 45mm 포를 장착하고 이름을 T-26E로 개명했다. 핀란드 육군은 계속 전쟁 기간 중에 이렇게 개조한 빅커스 전차들을 사용했다. 19대가 개조되었고, 75대의 소련제 T-26 경전차와 함께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에도 계속 사용되었다.[7] 핀란드군은 이 개조형 빅커스들 중 일부를 1959년까지 훈련용으로 계속 사용했고, 1959년이 되어서야 핀란드는 더 새로운 영국 및 소련제 전차들로 교체했다.[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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