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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프랭클린 파머 주니어(Robert Franklin Palmer Jr., 1945년 6월 19일 ~ 1997년 11월 20일)는 미국의 작가, 음악학자, 클라리넷 연주자, 색소폰 연주자이자 블루스 프로듀서이다. 음악 분야에 대한 글로 잘 알려져 있으며, 뉴욕 타임스와 롤링 스톤에서 음악 저널리스트로 활동했다. 1960년대 재즈 밴드 인세스트 트러스트에서 클라리넷 연주자로 활동했다.
로버트 프랭클린 파머 주니어는 아칸소주 리틀록에서 교사 로버트 파머 시니어의 아들로 태어났다.[1] 1960년대 학생 비폭력 조정 위원회의 시민권 및 평화 운동가로 활동했던 파머는 1964년 아칸소 대학교 리틀록을 졸업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파머는 동료 음악가인 낸시 제프리스, 빌 바스, 루크 파우스트와 사이키델릭 음악을 주로하고 재즈, 포크, 블루스와 로큰롤 등의 요소를 섞은 밴드 인세스트 트러스트를 결성하였다.[2][3] 밴드는 1968년 캐피틀 레코드에서 첫 번째 셀프 타이틀 음반을 녹음했다. 파머는 생애 동안 그가 살았던 지역의 밴드에서 클라리넷과 색소폰을 계속 연주했다.[4]
1970년대 초 파머는 롤링 스톤의 객원 편집자가 되었고, 영화 잡지의 저널리스트로 활동했다. 1976년부터 1988년까지 뉴욕 타임스에서 수석 팝 음악 평론가로 일했다. 내셔널 퍼블릭 라디오에 따르면 파머는 뉴욕 타임스의 "첫 전업 록 작가"라고 언급했다.[5]
1985년 파머의 동료인 키스 리처즈와 로니 우드에 의해 아티스츠 유나이티드 어게인스트 아프르트헤이트(Artists United Against Apartheid)의 음반 《Sun City》에서 U2의 보노가 부른 〈Silver and Gold〉에서 클라리넷을 연주했다.[1]
파머는 미시시피 주립 대학교를 포함한 여러 대학에서 민족음악학과 미국 음악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1990년대 초반에는 R. L. 번사이드와 주니어 킴브로와 같은 팻 포섬 레코드의 음악가를 위한 블루스 음반을 제작하기 시작했다.
1988년부터 1992년까지 멤피스 근교에 거주한 파머는 리틀록 근처의 시골 저택에서 약 6개월을 보낸 후 1993년 초 루이지애나주 뉴올리언스로 이주하여 사망할 때까지 살았다.[4] 파머는 간질환으로 1997년 11월 20일 뉴욕주 발할라에 위치한 웨스트체스터군 의료 센터에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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