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 코윤루(영어: Qara qoyunlu/Kara koyunlu) 혹은 흑양(黑羊) 왕조(아제르바이잔어: قاراقویونلولار 카라코윤룰라르, 페르시아어: قره قویونلو)는 약 1374년부터 1468년까지 오늘날의 아제르바이잔, 아르메니아, 이란 북서부, 튀르키예 동부, 이라크 대부분을 통치했던, 문화적으로 페르시아화한 무슬림 투르크멘 왕조이다.[7][8][9][10][11] 일부 역사가들은 이곳에 살았던 민족을 아제르바이잔인이라고 주장한다.[12][13]

간략 정보 카라 코윤루, 수도 ...
카라 코윤루
قراقویونلو

 

1374년~1469년
 

국기
국기
수도
정치
정치체제군주제
카라 코윤루의 군주
1378년 ~ 1388년

1467년 ~ 1468년

바이람 크와자

하산 알리
역사
시대 구분중세
  설립

 • 멸망
1374년

1469년
지리
면적520.000km2
인문
공용어
종교
종교시아파 이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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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무르 제국의 쇠퇴를 틈타 급속하게 영토를 확장하였으나, 얼마 못가 다른 튀르크멘 연맹체였던 아크 코윤루에게 멸망당하였다. 다만 그 분파는 인도의 데칸 고원으로 이주하여 바흐마니 술탄국의 붕괴 이후 골콘다 술탄국을 세우기도 하였다.

역사

어원

'카라 코윤루'라는 이름은 문자 그대로 "검은 양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란 뜻이다.[14] 처음에 학자들은 이 이름이 전통적인 토템 동물을 의미한다고 추정했지만, 라시드 앗 딘 하마다니에 따르면 튀르크인들은 토템 동물의 고기를 먹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으며, 유목민들의 식단에서 양고기가 가지는 중요성을 고려해 볼때 이러한 가설은 틀린 것으로 결론이 났다. 또 다른 가설은 그 이름이 그들 무리의 주된 색깔을 가리킨다는 것이다.[15]

기원

카라 코윤루는 14세기까지 상부 메소포타미아반 호수모술 북부의 영토를 가지고 있었던 오구즈 튀르크 계통의 이와 부족(Yiwa tride), 그중에서도 바할루 씨족[16]이 중심이 되어 세운 국가다.[17] 바할루 외에 카라 코윤루를 구성한 부족들로는 나흐체반의 사드루, 간자와 바르다 지역의 카라만루, 마라쉬의 알파우트 및 아가체리, 에르주룸과 바이부르트 지역의 두칼루, 아르다빌 지역의 자기룰루 및 하질루 등이 있었다.[18][19] 역사학자 파루크 수메르는 "카라 코윤루는 의심할 여지 없이 오구즈족의 하위 씨족(oba)이었으며, 그들이 이와 부족에 속해 있었다는 블라디미르 미노르스키의 주장은 아마도 사실일 것"이라고 말했다.[20]

카라 코윤루의 한 분파인 두할루 투르크멘족은 비잔틴 연대기에 처음으로 등장한다. 카라 코윤루의 전통으로 미루어보아, 두할루 부족은 아마도 몽골 침공 당시 중앙아시아에서 소아시아로 이주했을 가능성이 높다.[21]

건국과 전성기

카라 코윤루의 실체가 정확히 확인되는 것은 대략 1375년경으로, 이때 그들은 주요 지도자인 바이람 크와자를 중심으로 모술을 지배하고 있었으며, 그의 후계자인 카라 무함마드 시기까지 바그다드타브리즈에서 통치하던 잘라이르 왕조의 속국이었다. 그러나 부족들은 곧 반기를 들고 타브리즈를 점령한 카라 유수프(Qara Yusuf, 카라 무함마드의 아들)의 지도 하에 독립을 쟁취한다.

1400년대 초, 티무르 제국티무르가 중앙아시아와 페르시아를 휩쓸고 서아시아로 침입해오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때 카라 유수프는 티무르에게 대항했으나 처참하게 패배했고, 결국에는 이집트의 맘루크 술탄국으로 망명해야만 했다. 카라 유수프는 다마스쿠스의 총독이었던 셰이흐 마흐무드의 환대를 받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잘라이르 왕조의 술탄이었던 아흐마드 잘라이르도 다마스쿠스에 도착했는데, 티무르와의 관계를 악화시키고 싶지 않았던 당시 맘루크 술탄 앗 나시르 파라즈는 이 두명을 생포하여 그에게 넘겨주기로 결심했다. 투옥되어 있는 와중에 카라 유수프와 아흐마드는 서로 약속을 하여, 잘라이르 왕조는 바그다드를 중심으로 메소포타미아의 영토를 유지하는 대신에, 카라 코윤루는 타브리즈를 중심으로 아제르바이잔 영토를 점령하기로 했다. 또한 아흐마드는 카라 유수프의 아들인 피르부다크의 대부 역할도 겸하기로 약속했다. 이후 1405년에 티무르가 사망하자 두 사람은 곧 풀려날 수 있었다.[주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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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르크멘 아미르의 영묘, 1838년 작.

망명에서 돌아온 카라 유수프는 티무르 제국의 총독인 이자딘 쉬르에게 항복을 강요하는 한편으로, 티무르가 세운 또 다른 총독이었던 알타미쉬를 생포하여 맘루크 술탄 바르쿠크에게로 보냈으며, 세력을 끌어모아 1406년 나흐츠반 전투에서 티무르 왕조의 아부 바크르를 패퇴시키고는 타브리즈를 탈환했다. 아부 바르크와 그의 부친 미란 샤는 아제르바이잔을 다시 점령하려 했으나, 1408년에 카라 유수프는 사르드루드 전투에서 그들과 맞붙어 결정적인 패배를 안겨주었다. 이때 미란 샤는 전투 도중에 전사하기까지 했다. 1409년 가을이 되자, 카라 유수프는 타브리즈를 수도로 삼고 시르반 일대, 특히 샤키에 몇 차례 습격을 감행했지만 별다른 소득은 없었다.[26]

4년 후인 1410년에 카라 코윤루의 군대는 바그다드를 함락시켰다. 카라 코윤루의 성장은 한때 그들이 섬겼던 잘라이르 왕조의 몰락을 부추겼다. 1420년 카라 유수프 사후 그의 아들들 사이에서 벌어진 권력 다툼에도 불구하고 카라 코윤루는 영토를 굳건하게 유지했다. 다만 특히 티무르 제국의 술탄 샤 루흐가 1420년, 1421년, 1229년의 세 차례에 걸쳐 카라 코윤루를 침공한 것은 큰 위협이었다. 카라 유수프 다음으로 집권한 이스칸데르는 티무르 제국에게 열심히 맞섰지만 결국에는 패배하여 후퇴해야 했다. 그러자 샤 루흐는 카라 코윤루의 새 통치자로 이스칸데르의 친형이었던 자한 샤를 세웠다. 1436년, 자한 샤는 샤 루흐의 지원을 받아 이스칸데르를 물리치고 스스로 왕위에 올랐다. 또한 그는 티무르 제국의 황후였던 가우하르 샤드의 양아들로 들어가 스스로를 '무자파르 앗딘 (신앙의 승리자)'라고 칭하기도 했다.[8][23]

자한 샤는 카라 코윤루의 전성기를 이끈 군주였다. 1440년에 조지아 왕국을 침공하여 막대한 조공을 얻어냈으며, 1445년에는 자립해있던 조카 알반드로부터 바그다드를 접수하면서 카라 코윤루의 단독 통치자가 되었다. 또한 1447년 샤 루흐가 사망하고 그 뒤를 이은 울루그 베그 역시 살해당하면서 티무르 제국이 내전기에 돌입하자, 곧장 그에 대한 공격에 나서 1458년에 티무르 제국의 수도였던 헤라트를 일시적으로 점령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아들 하산 알리가 반란을 일으켰고, 설상가상으로 티무르 술탄 아부 사이드 미르자가 진군해오자 얼마 지나지 않아 회군해야 했다.[27]

쇠퇴와 멸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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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한 샤의 이름이 들어간 은화. 1466~1467년 사이에 발행됨.

자한 샤는 메소포타미아 일부와 아라비아 반도의 동해안, 페르시아 중부 지역을 카라 코윤루의 지배권 안에 포함시켰다. 그는 많은 영역을 확보했지만, 역심을 품은 아들들과 통제하기 어려운 바그다드의 친척들로 인해 통치에 어려움을 겪었다. 1466년 자한 샤는 자신에게 반항하는 아크 코윤루(백양 왕조)로부터 디야르바키르를 빼앗기 위해 공격에 나섰으나 원정은 완전히 실패로 돌아갔고, 이 과정에서 자한 샤 자신이 패사(敗死)하면서 카라 코윤루의 패권은 무너져 내렸다. 이로부터 불과 2년 사이에, 우준 하산(1452~1478)의 치하에서 전성기를 맞이한 아크 코윤루는 카라 코윤루를 무너뜨리고 메소포타미아와 아제르바이잔, 페르시아 서부를 손에 넣었다.[28]

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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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브리즈의 블루 모스크

아크 코윤루의 수니파 이슬람과, 카라 코윤루의 시아파 이슬람 사이에 분명하게 대립이 있었다는 주장은 주로 그뒤의 사파비 제국의 사료들에 의존하고 있는데 이는 의심되어야 한다.

R. Quiring-Zoche, Encyclopædia Iranica[29]

카라 코윤루의 종교적인 소속에 관해서는 후대 왕족들 중 일부는 시아파식 칭호를 가지고 있었고 때때로 시아파 문구로 동전을 주조하기도 했지만, 당시 많은 투르크멘족 구성원들 사이에 시아파가 널리 퍼져있었다는 강력한 증거는 아직까지는 발견되지 않았다.

C. E. Bosworth, The New Islamic Dynasties[30]

카라 코윤루의 시대에는 시아파가 널리 퍼졌다. 아제르바이잔과 아나톨리아에서 사파비 가문의 셰이흐 주나이드가 성공적인 활동을 했으며, 후제스탄에서는 무사샤이야가 활동했는데 이것들은 모두 칼(무력)에 의해서 시아파가 전파되었다는 가장 중요한 중거이다. (카라 코윤루 왕족이자 카라 유수프의 동생인) 야르 알리처럼, 알리(제 4대 칼리파, 시아파의 시조)에 대한 의식적인 믿음이 있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카라 유수프, 이스칸데르, 자한 샤의 동전에는 네 명의 칼리파의 이름이 보인다. 또한 아크 코윤루, 맘루크 술탄국, 티무르 제국의 사료에는 카라 코윤루 통치자들이 시아파를 믿었다는 기록이 등장하지 않는다.

Faruk Sümer, İslâm Ansiklopedisi[1]

가계도와 역대 통치자들

카라 코윤루
골콘다 술탄국

만수르
바이람 크와자
(1374~1380년)
두르순
카라 무함마드
(1380~1389년)
카라 유수프
(1389~1401년)
(1405~1420년)
피르부다크
(1411~1413년)
이스칸데르
(1421~1429년)
(1431~1436년)
아부 사이드*
(1429~1431년)
자한 샤
(1436~1467년)
알반드하산 알리
(1468~1469년)
미르자 유수프
(1469~1469년)
피르 쿨리카디자
우웨이스 쿨리
술탄 쿨리
(1518~1543년)
잠쉬드 쿨리
(1543~1550년)
이브라힘 쿨리
(1550~1580년)
수드한 쿨리
(1550년)
무함마드 쿨리
(1580~1612년0
무함마드 아민
하야트 바흐시무함마드 쿠트브 샤
(1612~1626년)
압둘라 쿠트브 샤
(1626~1672)
아불 하산
(1672~1687년)
바드샤
  • *표시는 티무르 제국에게 복속된 카라 코윤루 통치자를 나타낸다.

같이 보기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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