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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미디 세상만사》는 KBS 2TV에서 방송했던 코미디 프로그램인데 첫 회 방영분에서 부부간의 은밀한 사생활을 공개하고 성과 관련된 내용을 지나치게 선정적으로 묘사해 1995년 11월 15일 방송위원회로부터 '경고' 조치를 받았으며[1] 2회(95년 11월 17일) 방영분에서는 성과 관련된 내용을 지나치게 상세히 묘사하여 1995년 12월 8일 방송위원회로부터 `시청자에 대한 사과 및 연출자의 3개월 연출정지' 징계 조치를 받았다[2].
코미디 세상만사 | |
장르 | 코미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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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국가 | 대한민국 |
방송 채널 | KBS 2TV |
방송 기간 | 1995년 11월 10일 ~ 2000년 4월 28일 |
방송 시간 | 매주 금요일 밤 9:50 ~ 10:50(1995년 11월 10일 ~ 1996년 10월 11일, 1997년 3월 7일 ~ 1997년 10월 17일, 1997년 11월 28일 ~ 2000년 4월 28일) 매주 토요일 밤 9:00 ~ 9:55(1996년 10월 19일 ~ 1996년 11월 23일) 매주 일요일 밤 10:05 ~ 11:00(1996년 12월 1일 ~ 1997년 3월 2일) 매주 일요일 밤 11:10 ~ 12:10(1997년 10월 26일 ~ 1997년 11월 23일) |
방송 분량 | 1시간 10분 |
진행자 | 역대 진행자 참조 |
해설 | 최은경(21기) |
음성 | 2채널 스테레오 사운드(아날로그) |
1995년 11월 10일 첫 회부터 2000년 4월 28일까지 KBS 2TV에서 방송된 정통 코미디 프로그램. 성인코미디를 지향하여 금요일 밤 9시 50분에 방송되었다. 이후 1996년 10월 19일부터 토요일 밤 9시로 이동했으나 같은 달 25일부터 일부 프로그램의 방송시간대 조정에 따라[3] 그 해 12월 1일부터 일요일 밤 10시 5분으로 시간대가 변경됐지만 심야 시간대에 오락프로가 많다는 지적을 사자 1997년 3월 7일부터 금요일 밤 9시 50분으로 되돌아왔다. 그 뒤, KBS 금요극장의 신설에 따라 1997년 10월 26일부터 일요일 밤 11시 10분으로 이동했으나 SBS 이주일의 코미디쇼 등과의 경쟁에서 고전을 면치 못했으며 급기야 KBS 금요극장이 동시간대 MBC 베스트극장과의 겹치기 편성 논란[4] 탓인지 물의를 사자 4회 만에 막을 내려 같은 해 11월 28일부터 금요일 밤 9시 55분으로 돌아왔지만 타방송사 단막극과 코미디 프로로 경쟁하려는 시청률 장사 속셈[5]이란 지적을 사야 했다. 아무튼, 이 때는 아직 주 5일 근무 제도가 도입되기 전이라 토요일에도 출근을 해야했기 때문에 해당 시간대가 반 심야시간대 취급을 받았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방송순서고지는 당시 최은경(21기) 前 아나운서가 했는데, 초기에는 김미화, 서세원이 진행하였다가, 서세원이 스케줄 문제로 잠시 서수남이 진행을 맡기도 했었다가 하차한 후 1998년 1월 23일부터 최양락이 합류하였다. 프로그램의 모토가 성인코미디였기에, 검열삭제적 내용이 많이 포함되었다. 진행자인 김미화와 서세원, 최양락이 거의 모든 프로그램에 주연을 맡았으며, 그 외에 다른 찬조출연자들이 이를 보조했다. 유재석이 무명시절에 남편은 베짱이 코너를 통해 이름을 다소 알렸고 심현섭, 박준형, 박성호, 김영철, 김대희, 김준호, 임혁필 등도 또한 이 프로그램을 통해 데뷔했다. 그리고 이들은 아시다시피 이 프로에서 인지도를 높여 개그콘서트의 초창기 멤버로 활동하게 된다. 사실상 개그콘서트라는 최고 인기 코미디 프로그램이 만들어지는데 큰 밑거름을 한 프로그램. 최양락이 개인사정으로 하차하면서(1994년 4월 24일 첫 회부터 진행을 맡아 온 SBS 좋은 친구들을 같은 해 가을개편 때 타의로 그만둔 충격이 컸고[6] 이 과정에서 최양락은 호주 유학을 떠났다.) 김미화도 타의로 그만둔 뒤[7] 프로그램 자체가 중심을 잃고 갈팡질팡하다가 이렇게 되자 KBS는 후속작으로 줄곧 MBC에서 활동해 온 이경규와 자사 개그콘서트의 스타 심현섭을 공동 MC로 내세운 <이경규 심현섭의 행복남녀>를 신설했으나 일본 프로그램 표절 시비에 휘말려[8] 결국 5개월 만에 조기 종영되는 수모를 당했고 대체 프로그램으로 1TV에서 방영되어왔던 시사교양 프로그램 VJ특공대를 이동 편성했다. 종영을 부른 요인으로는 지주였던 두 개그맨들의 긴 공백기도 있었지만, 또다른 큰 요인으로는 언급한대로 이 프로그램으로 인지도를 쌓은 젊은 개그맨들이 개그콘서트에서 너무 커 버렸기 때문. 이 프로에서 젊은 개그맨들은 어디까지나 대선배들이 있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조연' 이었고, 그 때문에 자신들이 짠 아이디어를 '처음'으로 보여주는 무대가 개그콘서트가 되었기 때문에 이 프로그램에서 보여주었던 그들의 개그는 점점 상대적으로 이미 前 주에 했던 '뒷북 개그' 가 될 수 밖에 없었던 데다가 개그콘서트의 대성공으로 '공개 코미디' 가 대세가 되면서 정통 코미디 프로였던 코미디 세상만사는 점점 '과거의 유물' 같은 느낌이 될 수 밖에 없었다. --호랑이 새끼들을 키웠어-- 1999년 9월 3일부터 최양락, 김미화의 복귀와 함께 정통 코미디로 포맷을 바꿨으나, 라이벌 프로인 SBS 기분 좋은 밤 때문에 시청률이 갈수록 하락하자 2000년 4월 28일 종영되었는데 이 시기에는 1992년 3월 SBS로 이적한 뒤 '개밥그릇'이란 별칭을 얻었지만[9] IMF가 터지면서 코미디가 구조조정되어[10] 설 자리를 잃었던 KBS 4기(1986년) 출신 곽재문, 1991년 10월 SBS 이적 후 '랄랄라 선생님'으로 주가를 올렸으나[11] IMF가 터지면서 코미디가 구조조정되어[12] 설 자리를 잃기도 한 KBS 5기(1987년) 출신 최형만이 해당 프로그램을 통해 친정 KBS 복귀를 하기도 했다. 사실 이 프로그램의 진정한 가치는 코미디 프로라는 점 그 자체. 90년대 후반 이후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의 인기로 꽁트 코미디의 인기가 하락하자 다른 코미디프로들이 줄줄이 폐지되는 와중에 혼자 꿋꿋이 존속했다는 점으로 90년대 후반에는 방송 3사 유일의 코미디 프로그램이었다. 덕분에 KBS는 우리는 코미디 프로 시작 이후 한번도 중단한 적 없음이라고 자신있게 말 할 수 있게 됐다[13]. 방청객들의 웃음소리를 들어보면 이들 대부분이 아줌마들이라는 걸 바로 알 수 있었다. 코미디 프로인만큼 대부분의 출연진이 개그맨들이었지만, 전원주, 최란, 천호진, 권은아, 강남길, 이영범, 김형일, 윤철형 등 중견배우들도 출연했다. 개그맨들과 배우들이 함께 어우러지는 희극 연기도 꽤 볼 만 했던 프로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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