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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누(러시아어: Айны 아이늬[*] 일본어: アイヌ 아이누[*], [ʔáinu])는 오늘날의 일본의 홋카이도 지방과 도호쿠 지방, 러시아의 쿠릴 열도, 사할린섬, 캄차카반도에 정착해 살던 선주민이다. 일본의 주를 이루는 야마토 민족과는 다른 북방계의 민족으로, 역사적으로 개별적인 부족 국가 형태를 지녀왔으며, 독자적 고립어인 아이누어를 사용하였다.
이들 대부분은 류큐 민족과 함께 일본의 근대화 이후 일본민족으로 편입되었다. 일본 내 아이누족은 대부분 일본에 동화되어 일본어를 쓰지만, 홋카이도에 살고 있는 고령자들 중 일부는 여전히 아이누어를 사용하고 있다. 현재, 공식적으로 인정된 일본 내의 아이누족은 약 2만 5천 명이다. 러시아의 아이누족 역시 러시아로 동화되어 대부분 러시아어를 말한다. 종교로는 샤머니즘이 대다수이고, 러시아에는 러시아 정교회로 개종한 아이누족도 있다.
'아이누'는 신성한 존재인 '카무이'와 대비되는 '인간'이라는 의미의 홋카이도 지방의 아이누어에서 비롯되었다. 일본어로는 '에미시', '에조(蝦夷)'로 불리는데, 이는 사할린 아이누의 '인간'을 뜻하는 '엔츄' 또는 '엔주'에서 비롯된 것으로 추측되기도 한다. '아이누'란 단어가 일본 내에서 차별적 의미로 쓰이고 있다는 생각에서 스스로를 우타리(Утaри: 친척, 동포라는 뜻)라고 부르는 아이누 사람들도 일부 있다.
아이누족은 적어도 약 1만년 전, 즉 조몬 시대에 이미 원주민으로서 일본 열도에 정착해 있었다. 그러다가 약 2,500년 전, 야요이인들이 아시아 본토의 중국 대륙과 한반도에서 도래하자 두 개 문화는 열도 내에서 섞여 일본 민족을 이루게 되었고, 나머지 섞이지 않은 아이누인들은 점차 북쪽 홋카이도와 남쪽 류큐(오키나와) 지역으로 이주하여 그들 인류학적 정체성을 유지했다.
15세기 전후에 완성한 현대 아이누 문화는 사할린 북부에서 내려온 시베리아인의 오호츠크 문화와 남부에서 올라온 조몬인의 사쓰몬 문화 융합으로 형성했다고 여긴다. 이 문화는 이후 18세기에 걸쳐 번성하였으며, 오늘날 아이누 민족 문화적 요소는 대부분 이 시기에 형성했다. 이들은 어업과 수렵채집은 물론 간단한 농사도 지었으며 이는 서력 기원 초기부터 그러했다.[1]
막부 시대에 일본 개척으로 말미암아 에조치(아이누 거주지)는 계속 줄었으며, 마쓰마에번은 홋카이도 남부까지 진출하여 거주지를 이루었다. 19세기 말부터 일본이 근대화하면서 홋카이도 역시 급격히 개척되기 시작했고, 아이누 민족은 빠르게 일본인과 동화해 갔다.[2] 현대에 아이누인 정체성 유지한 인구는 대략 수만 명 정도며, 대부분 홋카이도 지역에 살고 있다.
아이누족은 기원전 3세기쯤부터 본격화된 야요이인의 도래 이전부터 일본에 거주하던 조몬인의 일부를 이루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아이누의 전설인 '유카 우포포'에서는 "아이누족은 태양의 아이들이 오기 10만 년 전에 이 곳에 살았다."고 이야기하고 있다.[3] 초기에 인류학자들은 털이 많은 등의 외형을 보고 코카소이드와 연관되어 있다고 추정하기도 하였으나 현대 인류학의 연구에 의하면 이들의 관계는 멀다.
아이누인의 Y-DNA 하플로그룹은 대부분 하플로그룹 D에 속하며,[4] 이는 일본 열도 전체에 걸쳐 분포하며 류큐 지역에서 다소 높게 나타나나 아이누 민족에게서 나타나는 비율은 압도적으로 높다. 일본 외의 Y-하플로그룹 D가 흔한 지방은 티베트와 인도의 안다만 제도 뿐이다.[5] 여러 연구에 의하면 이들의 공통 조상은 현대 동아시아 인구의 주류를 이루는 하플로그룹 O의 확산보다 이른, 현재로부터 약 5~6만 년 전에 아시아 지역에 퍼진 인류이다.
약 15%의 아이누 남자들은 하플로그룹 C3 (Y-DNA)에 속하는데 이는 아이누족이 니브흐족, 이텔멘족 등 오호츠크 문화로부터 단일방향성의 유전적 영향을 받았음을 반영하는 것이라 추측되며, 실제로 아이누족은 이들과 지속적인 문화 교류를 가져왔다.[6]
타나카 외(2004)에 따르면, 이들의 미토콘드리아 DNA (mtDNA) 혈통은 주로 하플로그룹 Y (21.6%) 와 하플로그룹 M7a (15.7 %) 로 구성되어 있다.
공식적으로 인정된 일본 내의 아이누족은 약 2만 5천 명이다. 그러나 혈통적 또는 문화적으로 동화된 경우까지 합치면 비공식적으로는 20만 명까지 추산되기도 한다.[7] 러시아에는 300명이 살고 있다고 확인되었으며 비공식적으로는 약 1,000명 정도가 살고 있을거라 추정된다.
현대에 들어 아이누의 민족적 정체성과 언어를 부흥시키는 운동이 행하여지기도 하나, 2007년 기준 아이누어의 모어 화자 수가 10명까지 떨어진 것으로 조사되는 등[8] 그 정체성이 거의 소멸에 임박해 있다고 분석된다.
아이누인들은 애초에 일본과 러시아 두 열강국의 세력이 밀려오기 이전 오랫동안 전통작명법에 의한 이름을 썼지만, 현재는 거의 일본 이름이나 러시아 이름을 쓰고 있는 실정이다.
갓 태어난 아기는 정식 이름을 붙여주기 전에 울음소리에서 아이아이(으앙으앙 또는 응애응애), 또는 티넵(젖은 녀석), 폰숀(작은 응가), 숀타쿠(응가 덩어리) 같이 일부러 더러운 뜻의 임시이름을 지어 부른다. 유아사망율이 높았던 시대에 병을 가져다 주는 역신은 깨끗한 것을 좋아하고 더러운 것을 싫어한다는 믿음에서 역귀를 쫓기 위한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다. 또 레사쿠(이름없음)같이 아예 사람이 없는 것으로 쳐서 역귀를 쫓기도 한다.
아기가 무사히 영아기를 벗어나 어느 정도 자라고 아이의 개성이 드러나기 시작하는 나이가 되면 정식 이름을 붙여준다. 하쿠막쿠르(덜렁이) 쿠우카르쿠르(활바치), 쿠우친코로(활과 가죽말림대 틀을 가진 이), 무이사시마츠(쓰는 여자), 카무이마시(곰 고기를 굽는 이)등이 있다.
다만 병치레가 잦거나 외모가 반듯한 아이는 예쁜 것을 좋아하는 역귀의 손이 미치지 못하도록, 영아기때와 같이 천한 이름을 계속 쓴다. 투로시노(때쟁이), 에카시오톤푸이(할아버지 똥꼬) 같은 예가 있다.
아내는 남편의 이름을 불러선 안되었으며, 죽은 사람의 이름을 다시 쓰는 것은 그 사람에게 갈 불운이 자신에게 옮는다고 여겨졌기 때문에, 새롭고 독창적인 이름을 계속 짓도록 신경을 썼다. 또 큰 재앙을 맞거나, 비슷한 이름의 다른 사람이 죽거나 하는 경우에는 이름이 재앙을 불렀다 또는 이름에 재앙이 옮겨붙었다 같은 생각에서 바로바로 이름을 바꾸었다. 그 때문에 아이누족은 누구에게나 통용되는 평범한 이름이라는 것이 없다고 한다.
홋카이도가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령으로 편입되자, 호적법의 시행으로 말미암아, 뜻을 일본어로 옮기거나, 이름을 한자로 취음하여 일본식 성명을 새로 만들게 되었고, 이름은 메이지 중기까지는 전통 아이누 이름이 그대로 이어져 내려왔다. 아이누 이름에 익숙지 않은 일본인들은 이름의 성별을 어감으로 구별할 수 없었기 때문에, 기록할 때, 남자는 가타카나, 여자는 히라가나로 표기하여 적는 방법으로 구분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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