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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문신 (1624–1693) 위키백과, 무료 백과사전
심재(沈梓, 1624년~1693년)는 조선 후기의 문신이다. 본관은 청송, 자는 문숙(文叔), 호는 양졸재(養拙齋)이다. 남인(南人) 과격파(탁남)의 선봉장으로, 권대운, 목내선 등과 가까웠다.
선조와 광해군 때의 남인(南人) 대신 좌의정 심희수의 양자 심창(沈昶)의 손자이다. 심창(沈昶)은 심희수(沈喜壽)의 형 심창수(沈昌壽)의 아들이다.
1654년(효종 5년) 식년문과에 급제하여 정자가 되고 1657년에 검열로 승진, 곧 정언을 거쳐 1660년에는 지평이 되었다. 현종 즉위 후 낭관으로 있으면서 지평, 서장관, 부수찬을 했고 지평, 부수찬, 수찬, 교리를 거쳐 다시 수찬, 교리, 부교리, 응교를 하다가 1667년에 승지가 되어 당상관에 오른다. 이후 우부승지로 있다가 1668년에는 경기도 관찰사로 외직에 나갔고 1670년에는 승지로 복귀한 뒤 대사간을 지냈다. 이후 대사간, 우부승지, 좌부승지 등을 거쳐서 우승지가 되었고 좌승지를 거쳐 호조참판이 되고 곧 도승지가 된다. 이후 대사간으로 부제조를 겸임하다가 경기도 관찰사로 외직에 나갔고 숙종 즉위 후 서인들이 실각하자 서인을 실각시키는 데 동조해서 도승지, 이조참판, 대사간 등을 두루 역임한다. 이후 부사로 청나라에 다녀왔고 계속해 대사간을 지내다가 경기도 관찰사로 다시 외직에 나갔지만 1680년 경신환국으로 쫓겨난다. 하지만 그의 능력을 알아본 서인 정권에 의해 특별히 발탁되어 도승지가 되었고 한성부우윤을 거쳐 다시 도승지, 대사간, 예조참판을 거쳐 초시 시관을 겸하며 과거를 주관하기도 했다. 이후 도승지를 하다가 공조판서가 되고 기사환국 이후 이조판서가 된다. 이후 민암의 측근이 되어 좌참찬, 대사헌을 하면서 관상감 제조를 겸했고 판의금부사로 지경연관사를 겸했다. 이후 판중추부사로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갔다가 1693년에 사망한다. 하지만 1694년 갑술환국으로 관작이 추탈된다.[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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