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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블루스 기타리스트 위키백과, 무료 백과사전
스티비 레이 본(영어: Stevie Ray Vaughan, 1954년 10월 3일 ~ 1990년 8월 27일)은 미국의 블루스 록 밴드 더블 트러블의 기타리스트이자 프런트맨으로 가장 잘 알려진 미국의 음악가, 가수, 작곡가, 음반 프로듀서였다. 비록 그의 주류 가수 경력은 겨우 7년 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는 블루스 음악 역사상 가장 상징적이고 영향력 있는 음악가들 중 한 명이자, 역대 최고의 기타리스트 중 한 명으로 여겨진다.
텍사스주 달라스에서 태어나 자란 본은 7살에 기타를 치기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형 지미 본에게서 영감을 받았다. 1972년, 그는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오스틴으로 이사했고, 지역 클럽 서킷에서 공연을 한 후 추종자를 얻기 시작했다. 본은 1978년에 밴드 더블 트러블을 결성하여 오스틴 음악계의 일부로 설립했고, 이 곡은 곧 텍사스에서 가장 인기 있는 공연 중 하나가 되었다. 그는 1982년 몽트뢰 재즈 페스티벌에서 공연을 했는데, 그곳에서 데이비드 보위가 그가 연주하는 것을 보고 스튜디오 공연을 위해 연락을 취했고, 그 결과 스티비는 음반 《Let's Dance》(1983년)에서 블루스 기타를 연주하게 되었고, 그 후 음반에 주요 음반사인 에픽 레코드에 관심을 가진 존 해먼드에 의해 발견되었다. 몇 달 만에, 본은 비평가들에게 호평을 받은 데뷔 음반 《Texas Flood》에서 더블 트러블로 주류에서 성공을 거두었다. 일련의 성공적인 네트워크 텔레비전 출연과 광범위한 콘서트 투어로, 그는 1980년대의 블루스 부활의 선두 주자가 되었다. 그의 등 뒤에서 기타를 연주하거나 지미 헨드릭스처럼 이빨로 줄을 잡아당기면서, 그는 유럽에서 전례 없는 스타덤을 얻었고, 그 후 로버트 크레이, 제프 힐리, 로벤 포드, 월터 트라우트 등과 같은 기타리스트들에게 획기적인 발전을 이룩했다.
스티비 레이 본은 1954년 10월 3일 미국 텍사스주 댈러스에서 태어났다. 그는 2차 세계대전 참전 용사 출신의 석면 노동자인 아버지와 비서일을 하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의 형인 지미 본 또한 뛰어난 블루스 기타리스트이다. 형이 기타 연주하는 것을 보고 자연스럽게 자신도 7살때부터 기타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스티비 레이 본은 어렸을 때 B.B. 킹, 알버트 킹, 머디 워터스, 버디 가이들을 듣고 블루스 음악에 심취하여 이들의 음악을 틀어놓고 즉흥 연주를 하면서 기타의 감각을 키웠다. 10살때부터 스티비 레이 본은 블랙버드란 밴드를 이끌어 가면서 실력이 발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음악에 역시 너무 심취해 있으니 학교 공부에는 소홀해 졌는데 고등학교 때에는 적응을 전혀 못하고 매일 정학 위기였고 음악 이론 수업에는 낙제를 먹었다.
결국 고3때 더 이상 있는게 무의미 하다 생각 하고 학교를 중퇴하고 태어날 때부터 쭉 살던 댈러스를 떠나 밴드와 함께 오스틴으로 이주를 하게 되었다. 그 이후 무명에 가까워졌는데 그의 이름이 알려지게 된 건 데이비드 보위 때문이다. 보위가 1983년 대박 히트시켰던 〈Let's Dance〉라는 곡에서 기타를 쳤던 게 계기가 됐다. 덕분에 메이저 음반사인 에픽과 계약하게 된다.
스티비 레이 본은 더블 트러블이라는 블루스 트리오를 이끌고 있었는데, 10대 시절부터 한솥밥을 먹던 고향 댈러스의 친구들과 만든 팀이다.
더블 트러블의 데뷔 앨범 《Texas Flood》(1983년)는 다행히 성공을 거둔다. 특히 경쾌한 셔플 리듬이 돋보였던 싱글 〈Pride And Joy〉가 빅 히트했다.
더블 트러블의 전성기는 이어져 1989년에 발표한 《In Step》 앨범은 그래미상을 수상했으며, 국내 팬들에게 가장 사랑받았던 곡 〈Tin Pan Alley〉가 수록된 《Couldn't Stand the Weather》 앨범도 명반이다.
1990년 8월 26일, 위스콘신주의 알파인 밸리 뮤직 시어터는 시카고와 밀워키의 중간 지점에 위치한 스키 리조트로, 이날 스티비 레이 본의 공연이 있었다.
이날 공연은 스티비 레이 본의 더블 트러블이 오프닝을 열고, 에릭 클랩튼을 중심으로 버디 가이, 로버트 크레이, 지미 본이 차례로 출연하여 잼세션을 벌이는 형식이었다.
마지막 앵콜 곡으로 모두 함께 로버트 존슨의 〈Sweet Home Chicago〉를 연주했다.
공연이 끝난 후 출연자들은 다음 날 예정된 공연을 위해 헬리콥터 타고 시카고로 이동해야 했다.
그날은 습도가 놉고 안개가 자욱한 밤이었다.
그런데 스티비 레이 본이 탄 헬리콥터가 사고를 내고 만다. 방향을 잘못잡고 스키장의 슬로프와 충돌한 것이다. 스티비 레이 본을 포함, 헬리콥터에 탔던 전원이 즉사했다.
원래 스티비 레이 본은 시카고까지 승용차로 이동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헬리콥터의 빈 좌석 하나를 발견하고 마음을 바꿨던 것이다.
1990년 8월 27일 그는 백인 기타리스트로서, 정통 블루스 록의 계보를 이어나가던 그는 35세라는 젊은 나이에 그렇게 사라져갔다. 그리고 스티비 레이 본의 사후에 지미 본이 프로듀서를 맡아 제작한 추모 앨범 《A Tritute to Stevie Ray Vaughan》은 블루스 록 팬이라면 필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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