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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가 고다이(일본어: 千賀 滉大, 1993년 1월 30일~)는 일본의 프로 야구 선수이며, 현재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인 뉴욕 메츠의 소속 선수(투수)이다. 아이치현 가마고리시 출신[2]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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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3월 27일 촬영 | ||||
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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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적 | 일본 | |||
생년월일 | 1993년 1월 30일 | (31세)|||
출신지 | 아이치현 가마고리시 | |||
신장 | 185.4 cm | |||
체중 | 91.6 kg | |||
선수 정보 | ||||
투구·타석 | 우투좌타 | |||
수비 위치 | 투수 | |||
프로 입단 연도 | 2010년 | |||
드래프트 순위 | 육성 선수 드래프트 4위 | |||
첫 출장 | NPB / 2012년 4월 30일 MLB / 2023년 4월 2일 | |||
연봉 | $15,000,000(2024년)[1] | |||
경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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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국가대표팀 | ||||
올림픽 | 2020년 | |||
WBC | 2017년 | |||
센가 고다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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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어식 한자 표기 | 千賀 滉大 |
가나 표기 | せんが こうだい |
국립국어원 표준 표기 | 센가 고다이 |
통용식 표기 | 센가 코우다이 |
로마자 | Kodai Senga |
시즌 탈삼진률(11.33) NPB 기록 보유자이며[3] 클라이맥스 시리즈 통산 68탈삼진은 역대 1위이다.
육성 제도 출신 선수로서는 다수의 기록을 보유하고 있으면서 첫 노히트 노런 달성을 비롯한 최우수 평균 자책점, 최다 탈삼진, 다승왕, 최고 승률 등의 타이틀 획득 및 2020년의 투수 부문 3관왕 달성(노히트 노런과 투수 부문 3관왕은 레이와 최초)[4][5], 투수로서의 베스트 나인과 골든 글러브상 수상, 일본 시리즈 개막전 선발 투수, 육성 출신 선수로선 최다인 통산 승수·탈삼진수 기록[6], 가이 다쿠야와 함께 육성 출신 선수로는 사상 첫 올림픽 국가대표 선수이자 금메달 리스트이다. 또한 육성 출신 선수로는 사상 최초의 메이저 리거로도 알려져 있다.
친아버지가 배우 이와키 고이치의 팬이라는 이유로 출생 당시에 ‘滉大’(고다이)라고 지어줬다.[7]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소년 야구팀 ‘미타니 히가시와카바’, 4학년부터는 ‘북부 써니 보이즈’에 소속됐다.[8] 가마고리 시립 주부 중학교 시절에는 연식 야구부에 소속되면서 3루수로 활약했다.[2] 무엇보다 성장통 때문에 중학교 때는 거의 시합에 나가지 못했다고 한다.[9]
아이치 현립 가마고리 고등학교에는 지망 학교에 불합격하여 어쩔 수 없이 진학한 모양새로 고등학교 진학 후에는 한때 복싱이나 축구로 전향하려고 생각했다고 한다. 야구부는 강호교라고 말할 것도 없었고 중학교 시절 야구부 선배의 권유로 야구부에 입단했지만 정작 본인은 애당초 야구에 대한 진심이 느껴지지 않았다고 한다.[9] 더욱이 가마고리 고등학교는 1976년에 소속 현 대회 4강에 진출했을 뿐 그 후 적어도 센가의 고교 시절까지는 8강의 실적조차 남기지 않았다. 입단 후 본인의 희망은 경험있는 내야수였지만 “캐치볼을 하는 걸 본 단계이다. 공이 뻗어나가는게 야수의 공이 아니었다. 이건 투수의 공이구나라고 생각했다”라는 감독 가네코 히로시의 의향으로 투수로 전향하여 1학년 여름부터 실전에 등판했다.[10] 무릎 통증에 시달렸던 적도 있었기 때문에[11] 2학년 가을과 3학년 봄에는 공식전에 등판하지 않았지만[2] 3학년 때 하계 아이치현 대회(전국 고등학교 야구 선수권 아이치 대회) 예선 2차전에서는 3~4개 프로 구단 스카우터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아이치 상업고등학교를 7대 5로 승리했다.[12] 하지만 오카자키 상업고등학교와 맞붙은 3차전에서는 1대 7로 패해 탈락했다.[13]
2010년도 육성 드래프트 회의에서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로부터 4순위 지명을 받고 입단했는데[14] 아마추어 야구에 조예가 깊던 아이치현 나고야시의 스포츠용품점 ‘니시마사 베이스볼샵’의 니시카와 마사지 사장[2][15]이 당시 소프트뱅크 스카우트였던 오가와 가즈오에게 추천하여 센가의 영입을 결정했다고 밝혔다.[16] 등번호는 128번으로 결정했다.[17]
위에서 말한 무릎 통증으로 인해 고교 시절에는 그다지 연습을 쌓지 못한 점도 있어서 4월에 있은 3군 연습에서는 훈련의 절반도 달릴 수 없는 상태였지만[11] 구라노 신지 3군 투수 코치와 일대일로 몸을 단련하면서 8월에 150km/h를 측정했다(고교 시절 최고 속도는 144km/h).[18] 루키 시즌에서의 웨스턴 리그 공식전 등판 기회는 없었지만 미야자키 훼닉스 리그에서는 중간 계투로 4경기에 등판하여 총 3과 1/3이닝을 무안타 무실점으로 호투했다.[19] 최종적으로는 구속이 최고 속도 152km/h까지 늘어났다.[16]
춘계 스프링 캠프 종반에는 1군에 발탁되면서[19][20] 시범 경기의 등판 기회도 얻었지만 2월 26일 히로시마 도요 카프전에서 1이닝 4피안타 3실점으로 부진했고[21] 3월 9일 요미우리 자이언츠전에서는 왼쪽 발목을 삐어서 긴급 강판돼[22] 시즌 개막을 2군에서 맞이했다. 웨스턴 리그에서는 선발로서 4경기에 등판하여 평균 자책점 1.50의 성적을 남겼고 4월 23일에 지배하 선수로 등록[23]함과 동시에 추정 연봉은 440만 엔, 등번호는 21번로 변경됐다.[24] 같은 달 30일 지바 롯데 마린스전에서 데뷔 첫 등판 및 첫 선발로 나와 3과 2/3이닝을 던져 4피안타 4볼넷 3실점의 성적으로 승패는 연결되지 않았다.[25][26] 다음날에 출장 선수 등록이 말소돼[25] 5월 11일 지바 롯데전에서 다시 1군에서의 선발 기회를 얻었지만[27] 1과 3이닝 동안 겨우 볼넷 4개를 내주고 부진에 빠져[28] 4실점(2자책점)으로 데뷔 첫 패전 투수가 됐다.[29] 이후 7월 25일에는 1군에 승격[30]됐지만 등판 기회도 없이 같은 달 27일에 1군 등록이 말소되면서[31] 이 해의 1군 등판은 위에서 말한 겨우 2경기뿐이다. 하지만 웨스턴 리그에서는 21경기에 등판하여 7승 3패, 평균 자책점 1.33으로 좋은 성적을 남기고 웨스턴 리그 최우수 평균 자책점을 차지했다.[32][33] 가을에 오른쪽 어깨를 다쳐서 추계 스프링 캠프와 푸에르토리코에서 열리는 겨울 리그 참가도 포기했지만[2] 오프에는 210만 엔이 상승한 추정 연봉 650만 엔으로 계약을 갱신했다.[34]
1월 9일에 구단 측은 센가의 등번호가 41번으로 변경했다고 공식 발표했다.[35] 자율 훈련에서는 투구 폼 개량에 적극적으로 임하면서[16] 개막 로테이션 진입을 목표로 하고 있었는데[36] 3월 2일 요미우리와의 시범 경기에 등판하기로 예정돼 있었지만 발열 증세로 인해 회피했고 곧바로 2군에 내려갔다.[37] 같은 달 10일에는 1군에 복귀하여[38] 중간 계투로서 자신의 첫 개막 엔트리에 합류했다.[39] 3월 31일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전에서 데뷔 후 처음으로 구원 등판하여[40] 4월 11일 오릭스 버펄로스전에서는 데뷔 첫 홀드[41], 5월 12일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스전에서 데뷔 첫 승리 투수가 됐다.[42] 4월 3일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스전부터 무실점 기록을 세우면서[43] 4월 중순부터는 마무리로 기용돼[44] 6월 21일 라쿠텐전까지 27경기 연속 무실점을 기록했다.[43] 처음에 마무리로 기용된 6월 26일 닛폰햄전에서는 9회말에 삼자범퇴로 막아냈고 도요다 기요시가 보유한 ‘구원 투수 연속 무실점 이닝 기록(34와 1/3이닝)’이라는 퍼시픽 리그 기록을 수립했지만[45] 정규 이닝을 넘긴 연장 10회말에서는 1루수 나카무라 아키라의 결정적인 실책으로 자책점은 0이지만 1실점으로 끝내기 패배를 당했다.[46] 이 경기에서부터 4경기 연속으로 실점을 내주거나 패전 투수가 되면서[47] 7월 4일에 출전 선수 등록이 말소됐다.[48][49] 같은 달 14일에는 1군에 재등록되면서[50] 감독 추천에 의해서 첫 출전[51]하게 된 올스타전 2차전에서는 4회말부터 퍼시픽 올스타팀의 두 번째 투수로 등판했는데 2이닝 무실점, 4타자 연속을 포함 5탈삼진으로 호투[52]하여 감투선수상을 수상했다.[53][54] 후반기인 7월 26일 닛폰햄전에서 데뷔 첫 세이브를 올렸지만[55] 8월 이후의 등판에서는 구원 실패가 두드러져[56][57] 9월 4일 닛폰햄전에서 왼쪽 옆구리에 통증을 호소해 긴급 강판됐다.[58] 다음날인 5일에 왼쪽 복사근에 근육 파열이라는 진단을 받아 등록이 말소됐고[59] 그대로 시즌을 마쳤다. 이 해엔 팀내 2위에 해당되는 51경기에 등판[60]해 1승 4패 17홀드 1세이브, 평균 자책점 2.40을 기록했다.[61] 오프의 계약 갱신 협상에서는 2,650만 엔이 상승한 추정 연봉 3,300만 엔에 서명[60]했고 협상 자리에서는 다음 시즌부터 선발 재전향해달라고 호소했다.[61]
춘계 스프링 캠프를 처음으로 A조에서 시작했는데[62] 컨디션 조정 부족으로 초반에 B조로 강등됐다.[63] 그 후에는 1군으로 돌아와서 시범 경기에서는 중간 계투로서[64] 6경기에 등판하여 총 6이닝 1실점, 2세이브를 기록했지만[65] 롱 릴리프 요원을 필요로 하는 팀내 사정이 있는 관계로 2군에서 개막을 맞이했다.[66] 4월 4일에 출장 선수로 등록[65]하여 시즌 첫 홀드는 5월 7일의 닛폰햄전[67]과 홀드가 연결되지 않는 상황에서의 등판이 계속됐다. 같은 달 23일의 한신 타이거스전에서 자신으로선 1년 만의 승리를 올렸지만[68] 오른쪽 어깨의 이상을 느껴 6월 15일에 등록이 말소됐는데 이후 검사에서 피로로 인한 통증 진단을 받았다.[69] 그러나 투구 연습 재개는 12월 하순까지 미뤄져[70] 이 해엔 19경기에 등판하여 1승 1패 3홀드 평균 자책점 1.99의 성적을 남겼다. 오프에는 800만 엔이 삭감된 추정 연봉 2,500만 엔으로 계약을 갱신했다.[71]
작년에 통증이 발병한 오른쪽 어깨 재활을 거쳐 자율 훈련에서는 선발로의 재전향을 목표를 두고 조정을 이어나갔다.[72][73] 시즌 초반에는 오른쪽 어깨 상태를 우선시했기 때문에 실질적인 1군 복귀는 8월이 됐지만[74] 복귀전이 된 8월 18일 오릭스전에서 선발을 맡아 7이닝 4피안타 무실점 호투로 자신의 첫 선발승을 올렸다.[7] 다음날인 19일에 출전 선수 등록이 말소됐지만 두 번째 선발로 나선 9월 20일 지바 롯데전에서도 8이닝 1피안타 무실점으로 호투했다.[75] 그 후에는 팀내 사정으로 불펜에서 대기했고[76] 1경기에서의 구원 등판을 거쳐[77] 선발로 다시 돌아와[78] 정규 시즌에서는 4경기(3선발)에 등판하여 2승 1패, 평균 자책점 0.40을 기록했다.[79] 포스트시즌에서는 ‘조커’로서 다양한 상황에 기용돼[80] 지바 롯데와의 CS 파이널 스테이지 1차전과 3차전에서는 모두 위기의 상황에서 등판하여 구원에 성공하는 모습을 보였다.[81][82]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와 맞붙은 일본 시리즈 3차전에서 5회말에 1점 앞선 2사 1루 상황에서의 2번째 투수로 등판하여 이 시리즈에서의 첫 등판을 이뤘지만 야마다 데쓰토에게 역전 2점 홈런을 얻어맞고 패전 투수가 됐다.[83] 하지만 4차전에서는 2점 앞선 7회말부터 등판해 2이닝을 완벽하게 막아냈다.[84] 오프에는 작년과 동일한 추정 연봉 2,500만 엔에 계약을 갱신하고[74] 12월 26일에는 일반인 여성과 같은 달 14일에 결혼했다고 밝혔다.[85]
춘계 스프링 캠프에서부터 순조로운 마무리를 보여 개막 5경기째인 세이부전에서의 선발이 내정됐다.[86] 이 경기에서는 6과 2/3이닝을 던져 4실점으로 시즌 첫 승리 투수가 됐고[87] 4월 13일 세이부전에서는 9이닝 6피안타 10탈삼진 1실점, 135개의 공으로 역투하여 데뷔 첫 완투승을 올렸다.[88] 그 후에도 승리를 쌓아가며 7월 13일 지바 롯데전에서 개막 8연승을 기록했다.[89] 8월 6일 닛폰햄전에서 시즌 첫 패전 투수가 됐지만[90] 같은 달 20일 닛폰햄전에서는 시즌 10승째를 올렸다.[주 1] 9월 3일 라쿠텐전에서는 자신의 두 번째 완투로 시즌 12승째를 거두었고 야마구치 데쓰야가 보유하고 있던 ‘NPB 육성 드래프트 출신 투수에 의한 1군 공식전에서의 시즌 최다 승리 기록’을 경신하는 등[92] 개막 이후부터 선발 로테이션을 지켜내면서[93] 자신의 첫 규정 투구 이닝에 도달했다. 정규 시즌에서는 25경기에 선발 등판하여 12승 3패, 평균 자책점 2.61을 기록했다.[94] 클라이맥스 시리즈에서는 ‘육성 드래프트 출신의 첫 CS 선발 등판’을 이루면서[95] 퍼스트 스테이지와 파이널 스테이지에 각각 1경기씩 선발로 나왔다.[96][97] 시즌 종료 후에는 일본 대표팀 평가전(자세한 내용은 후술)에 출전했고 오프에는 4,000만 엔이 상승한 추정 연봉 6,500만 엔으로 계약을 갱신했다.[93]
제4회 WBC 출전(자세한 내용은 후술)을 거친 뒤 3월 25일 소속 팀에 합류[98]하여 정규 시즌에서는 컨디션을 고려해 라쿠텐과의 개막 2경기째의 첫 경기에서 시즌 첫 등판 및 첫 선발 등판했다.[99] 이 경기에서는 육성 드래프트로 동기 입단한 가이 다쿠야와 함께 사상 첫 ‘육성 선수 출신 선발 배터리’를 구성했지만 4이닝 7실점으로 패전 투수가 됐다.[100] 하지만 이어지는 4월 11일 닛폰햄전에서도 가이와 함께 선발 배터리를 구성하며 8이닝 무실점으로 호투하는 등 사상 첫 육성 선수 출신의 선발 배터리 승리를 기록했다.[101] 그 후에는 이 경기를 포함해 자신의 5연승을 기록하고 있었지만[102] 5월 16일의 오릭스전에서 등부분에 통증을 호소하여 겨우 9개의 공을 던지고 자신의 최단 기록인 2/3이닝에 강판당했다.[103] 출전 선수 등록은 제외되지 않고 치료나 조정을 진행하여[104] 11일을 쉰 5월 28일 닛폰햄전에 선발 등판하여 8이닝 1실점 호투로 승리 투수가 됐지만[105] 이어진 6월 4일의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스전에서는 8회 도중 5실점을 내주고 패전 투수가 됐다.[106] 그 후 등부분에서 통증이 재발하여 같은 달 8일에 등록이 말소됐다.[107] 전력에서 이탈하는 와중에 작년까지의 실적에 더해 WBC에서의 활약도 있어 올스타전 팬 투표에서는 선발 투수 부문에서 1위로 뽑혔다.[주 2] 7월 1일에는 1군에 복귀하여 라쿠텐전에 등판했고[109] 같은 달 14일 열린 올스타전 1차전에서는 사상 첫 ‘육성 드래프트 출신의 올스타전 선발 등판’을 이뤘다.[110][111]
시즌 후반기인 8월 12일의 닛폰햄전에서 시즌 10승째를 거두면서[주 3] 9월 9일 지바 롯데전에서 자신이 보유한 ‘NPB 육성 드래프트 출신 투수에 의한 1군 공식전에서의 시즌 최다 승리 기록’을 경신하는 개인 최다 기록인 시즌 13승째를 올렸다.[113] 승률 제1위의 타이틀과 규정 투구 이닝 도달이 목전에 두고 있는 상황이었는데[114] 10월 6일 오릭스전에서는 6이닝 3실점으로 규정 투구 이닝에 도달했지만 역전을 허용하며 강판됐다. 다만 9회 2아웃 상황에 팀이 동점을 만들면서 승률 제1위 타이틀을 확정지었다.[115] 정규 시즌에서는 22경기에 선발 등판하여 13승 4패, 평균 자책점 2.64, 리그 1위에 해당되는 승률 0.765를 기록했고[116] 팀의 2년 만의 리그 우승에 큰 기여를 했다.[117]
포스트시즌에서는 라쿠텐과의 CS 파이널 스테이지 2차전에 선발 등판해 7회 도중 2실점을 내주고 패전 투수가 됐지만[118] DeNA와 맞붙은 일본 시리즈에서 육성 출신 선수로선 사상 최초로 개막전 선발 투수를 맡았는데[119] 7이닝 4피안타 1실점으로 호투하며 처음으로 포스트시즌에서의 승리 투수가 됐다.[120] 이로써 2년 만의 일본 시리즈 우승에 기여했다.[117]
오프에 있은 계약 갱신과 관련해서는 6,000만 엔이 상승한 추정 연봉 1억 2,500만 엔으로 서명[121]했고 협상 테이블에서는 장래에 포스팅 시스템에 의한 메이저 리그에 도전하겠다는 입장을 전달했다.[122]
정규 시즌 개막을 앞두고 일본 대표팀 평가전(자세한 내용은 후술)에 출전했고 정규 시즌에서는 육성 출신으로는 사상 최초로 개막전 선발 투수로 지명돼[123] 오릭스와의 개막전에 선발로 나서 7이닝 1피안타 무실점으로 승패는 연결되지 못했지만 팀 승리에 기여했다.[124] 하지만 4월 6일 라쿠텐전에서 경기 도중 마운드에서 오른쪽 팔꿈치에 자꾸만 신경을 쓰는 듯한 모습이 잡혀 4회 도중 6실점을 내주며 패전 투수가 됐고[125] 다음날인 7일에 오른쪽 팔꿈치 이상으로 등록이 말소됐다.[126] 5월 1일 지바 롯데전에서 1군에 복귀하여 7이닝 5피안타 10탈삼진 1실점의 호투로 시즌 첫 승리 투수가 되면서[127] 이 경기를 포함해서 복귀 후 3전 3승을 기록했지만[128] 오른쪽 팔꿈치에 통증이 일어나는 증상이 나타나며 5월 19일에 또다시 등록이 말소됐다.[129] 6월 1일에 다시 복귀한 이후에는 투구 수를 100개 안팎으로 제한하는 규정이 생기면서[130][131] 교류전이 끝난 후에는 일정에 여유가 있기 때문에 10일간의 등록 말소를 포함시키는 등[132] 신중히 기용됐지만 7월 3일 라쿠텐전 등판 후[133]에 오른쪽 어깨 주변의 컨디션에 이상이 생겼기 때문에 이를 중요하게 여겼는지 같은 달 5일에는 4번째로 등록이 말소됐다.[134] 12일 쉬고 후반기 개막전 선발 투수를 맡으면서[135][136] 8월 17일 오릭스전에서 데뷔 첫 완봉승을 거두는 등[137] 8월에는 네 번의 선발로 4승 및 평균 자책점 0.86을 기록하며 퍼시픽 리그의 육성 드래프트 출신 선수로는 사상 최초로 월간 MVP를 수상했다.[138] 9월 15일 세이부전에서는 자신의 두 번째로 한 이닝 4탈삼진을 기록해 동일 선수가 두 차례나 달성하는 것은 사상 최초이다.[139] 정규 시즌 마지막 등판인 10월 6일 오릭스전에서 자신의 최다 타이 기록인 13승째를 올렸지만 규정 투구 이닝에는 2이닝에 도달하지 못했고[140] 이 해에는 22경기에 선발 등판하여 13승 7패, 평균 자책점 3.51의 성적을 남겼다.
클라이맥스 시리즈에서는 닛폰햄과의 퍼스트 스테이지 2차전에 선발로 나와 6이닝 2실점(1자책점)으로 승패는 연결되지 않았다.[141] 데뷔 후 처음으로 4일 쉬고 선발로 나선 세이부와의 파이널 스테이지 3차전에서는 5이닝 1실점을 기록하며 클라이맥스 시리즈에서의 첫 승리 투수가 됐다.[142] 히로시마와 맞붙은 일본 시리즈에서는 1차전과 5차전에 선발 등판했지만 ‘적극 계투’라는 팀의 방침도 있어[143] 두 경기 모두 5이닝을 채우지 못하고 강판됐다.[144][145] 오프에는 3,500만 엔이 상승한 추정 연봉 1억 6,000만 엔에 성적에 따른 보너스로 계약을 갱신했다.[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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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연속 개막전 선발 투수로 지명됐다.[147] 3월 2일 한신과의 시범 경기에서 158km/h[148], 같은 달 22일 히로시마와의 시범 경기에서는 159km/h를 측정하여 개인 최고 속도를 경신했고[149] 세이부와의 개막전에서는 6이닝 3피안타 무실점으로 승패를 가리지 못했지만 일본인 2위 타이 기록인 161km/h를 측정했다.[150] 팀 타선이 침체된 탓에 개막 이후부터 세 차례의 선발 등판에서는 승리를 거두지 못했지만[151][152] 4월 19일 세이부전에서 8이닝 2피안타 무실점으로 호투하며 시즌 첫 승리를 따냈고[153] 5월 18일 닛폰햄전에서 개막 5연승을 달성했다.[154] 같은 달 31일 라쿠텐전에서 8이닝 3실점으로 역투했지만 패전 투수가 되면서 개막 연승 행진은 멈췄지만[155] 5월에는 다섯 번의 선발로 3승 1패, 리그 1위인 승률 0.750·36이닝·43탈삼진을 기록하여 자신의 두 번째인 월간 MVP를 수상했다.[156] 더 나아가 6월에는 네 번의 선발로 3승 1패와 평균 자책점 2.88, 리그 1위인 31개의 탈삼진을 기록해 2개월 연속이자 자신의 세 번째가 되는 월간 MVP를 수상했다.[157] 팬 투표로 2년 만에 통산 세 번째로 올스타전에 선출돼[158] 1차전 선발로 나서 2이닝 3탈삼진 무실점으로 호투하며 승리 투수가 됐다.[159] 후반기인 8월 2일 닛폰햄전에서 8이닝 118구, 2점 앞선 상황에서 지원 연속 투구로 완봉승을 거두는 등 심신 양면에서 성장을 보였고[160] 9월 6일 지바 롯데전에서는 NPB 역대 80번째의 노히트 노런을 달성했다.[4][주 4] 이 해에는 시즌 내내 선발 로테이션을 지켰고 26경기에 선발 등판하여 180과 1/3이닝을 던져 13승 8패, 평균 자책점 2.79를 기록하여 팀의 에이스로서 인정받는 한 해가 됐다.[162] 더 나아가 227개의 탈삼진으로 최다 탈삼진 타이틀을 차지해 탈삼진률 11.33은 규정 투구 이닝을 도달한 투수로는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163]
클라이맥스 시리즈에서는 라쿠텐과의 퍼스트 스테이지 1차전에서 7이닝 4피안타 4실점으로 패전 투수가 됐지만[164] 세이부와의 파이널 스테이지 3차전에서는 8이닝 2피안타 10탈삼진 무실점으로 쾌투했다.[165] 요미우리와 맞붙은 일본 시리즈에서는 3년 연속으로 일본 시리즈 개막전 선발 투수를 맡아 7이닝 3피안타 1실점으로 승리 투수가 되면서[166] 팀의 3년 연속 일본 시리즈 우승에 큰 기여를 했다.[167]
시즌 종료 후 소프트뱅크 투수로는 구도 기미야스 이후 24년 만이자 육성 출신의 투수로선 사상 최초로 골든 글러브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게 됐다.[168] 또 육성 출신 투수로는 처음으로 베스트 나인(투수 부문)에도 선정됐다.[169] 계약 갱신 협상에서는 1억 4,000만 엔이 상승한 추정 연봉 3억 엔으로 서명했다.[170]
자율 훈련 기간 중에 오른쪽 종아리에 이상을 느껴 춘계 스프링 캠프에서는 별도의 훈련 조정에 들어갔다.[171] 2월 13일에는 불펜 투구를 재개했지만 환부의 영향으로 폼의 밸런스를 잃었고[172] 오른쪽 팔꿈치 아랫부분의 통증으로 인해서 2월 23일부터 투구 금지 조정에 들어가며 같은 달 29일에는 재활조에 합류했다.[173] 신체의 이상으로 개막에 맞춰 복귀가 늦어질 것으로 예상됐지만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정규 시즌 개막이 대폭 연기됐다.[174] 5월 25일에는 정규 시즌 개막일이 6월 19일에 하는 것으로 발표됐는데 1군 복귀로의 결정은 신중하게 진행시키겠다는 팀의 방침이 있어서 개막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됐다.[175] 7월 7일 라쿠텐전에서 시즌 첫 등판 및 첫 선발로 나와 개인 최고 속도인 161km/h를 측정하여 5이닝 4피안타 6탈삼진 3실점으로 승리 투수가 됐지만[176] 8월 18일 지바 롯데전에서 개인 최악의 성적인 피안타 12개, 2경기 연속 6실점을 내주는 등[177] 힘든 투구가 계속됐다. 하지만 같은 달 25일 오릭스전에서 7이닝을 던져 그해 첫 무실점으로 막아냈고[178] 9월 8일 라쿠텐전에서도 8이닝 무실점으로 호투했다.[179] 후반기에는 회복되면서 9월 29일 라쿠텐전에서는 첫회에 1점을 내준 이후에는 정규 시즌 종료까지 39이닝 연속으로 무자책점을 기록했다.[180] 정규 시즌 최종 등판이 된 11월 4일 지바 롯데전에서는 3회말에 퍼시픽 리그 역대 최고 속도(NPB 전체에서는 후지카와 규지에 이은 두 번째)로 개인 통산 1000탈삼진을 달성했다.[181] 이 해에는 18경기의 선발 등판으로 리그 1위 타이 기록인 11승·149탈삼진, 리그 1위인 평균 자책점 2.14를 기록하며 그해 개막전 선발 투수를 맡은 히가시하마 나오와 함께 선발 로테이션을 견인하는 등 팀의 3년 만의 리그 우승에 기여했다.[182] 또한 다승왕, 최다 탈삼진, 최우수 평균 자책점 등의 투수 부문 타이틀을 석권하여[183] 2018년의 스가노 도모유키 이후가 되는 NPB 역대 20번째, 퍼시픽 리그에서는 2006년의 사이토 가즈미에 이어 투수 3관왕을 달성했다.[184]
포스트시즌에서는 지바 롯데와의 CS 파이널 스테이지 1차전에 선발 등판해 7이닝 동안 8피안타 8탈삼진 3실점으로 승패가 연결되지 않았다.[185] 요미우리와 맞붙은 일본 시리즈에서는 1969~1972년 호리우치 쓰네오 이후 4년 연속으로 일본 시리즈 개막전 선발 투수를 맡아[186] 7이닝 3피안타 무실점의 호투로 승리 투수가 됐고[187] 팀의 4년 연속 일본 시리즈 우승에도 큰 기여를 했다.[188][주 5]
오프에는 1억 엔이 증가한 추정 연봉 4억 엔으로 계약을 갱신했다.[190]
양쪽 종아리 통증으로 인해 춘계 스프링 캠프를 재활조에서 시작하여[191] 3월 12일 주니치 드래건스와의 춘계 교육 리그에서 연초에 실전 등판을 했지만 개막 로테이션에서는 제외됐다.[192] 4월 6일 닛폰햄전에서 시즌 첫 등판 및 첫 선발로 나왔지만[193] 5점 앞서고 있는 6회 1아웃 상황에 상대 타자 와타나베 료의 투수 라이너성 타구를 잡았을 때 왼쪽 발목을 다쳐 긴급 강판됐다.[194] 경기 후에는 염좌 진단을 받아 다음날인 7일에 등록 말소가 됐지만[195] 4월 9일에 MRI·CT 검사를 받은 결과 왼쪽 발목에 인대가 손상됐다고 판명났다.[196] 같은 달 10일 구단측에서는 복귀할려면 최소 2~3개월 정도 걸릴 수도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197] 6월 17일 독립 리그 팀인 히노쿠니 샐러맨더스와의 3군전에서 실전 복귀를 이뤘고[198] 7월 6일에는 1군 복귀하여 같은 날 지바 롯데전에 등판했지만 2/3이닝을 던지며 9피안타 3볼넷을 기록해 개인 최악의 성적인 10실점을 내주며 패전 투수가 됐고[199] 같은 달 9일에 출장 선수 등록이 말소됐다.[200] 도쿄 올림픽 출전을 거쳐(자세한 내용은 후술) 정규 시즌이 재개된 후에는 4전 4승을 기록하여[201] 팀의 침체도 있어서 시즌 종반에는 등판 간격을 5일로 좁히고[202] 10월 3일 오릭스전에서는 자신의 두 번째인 4일 쉬고 선발 등판했다.[203] 팀은 10월 23일에 4위로 확정돼 있었지만 이틀 후인 25일 지바 롯데와의 시즌 최종전에서 자원해 5일 쉬고 선발로 나서 6이닝 동안 6피안타 3실점으로 6년 연속 두 자릿수 승리를 달성했다.[204][205] 이 해에는 부상의 영향으로 3년 만에 규정 투구 이닝을 채우지 못했지만 13경기에 선발 등판하여 10승 3패, 평균 자책점 2.66을 기록했다.[206]
10월 19일에 국내 FA권을 취득했지만[207] 오프에는 권리를 행사하지 않고 팀에 잔류하게 되어 선수 자신이 계약을 재검토하거나 파기할 수 있는 ‘옵트아웃’ 조항이 들어간 연봉 변동제 5년 계약을 체결했다.[208] 또한 연봉에서는 2억 엔이 상승한 추정 연봉 6억 엔에 서명했다.[209]
순조로운 조정을 보이면서 춘계 스프링 캠프 도중인 2월 15일에 후지모토 히로시 신임 감독으로부터 자신으로서는 3년 만이자 세 번째가 되는 개막전 선발 투수로 지명됐다.[210] 시범 경기에서 두 번째 선발로 나올 예정이었는데 코로나19 밀접 접촉자로 분류되면서 이를 피하고[211] 자가 격리 조치가 내려졌지만 다행히 밀접 접촉자로 특정되지는 않았으며[212] 이후의 시범 경기에서는 2경기에 등판하여 모두 1실점으로 막아내는 호투를 보여[213] 별 문제없이 닛폰햄과의 개막전에 선발 등판했다. 7이닝 4피안타 1실점으로 승패는 연결되지 않았지만[214] 팀의 6년 연속 개막전 승리에 기여했다.[215] 이어진 4월 1일 라쿠텐전에서 8이닝 5피안타 무실점으로 호투하며 시즌 첫 승리를 거두고[216] 개막 3연승을 기록했다.[217] 5월 13일 닛폰햄전에서는 첫회에 개인 최고 속도를 경신하는 시속 164km/h를 측정해 8이닝 4피안타 1실점[218], 자신의 최다 타이 기록이 되는 14탈삼진이라는 역투에도 불구하고 완투패[219]를 당해 시즌 첫 패전 투수가 되는 불명예를 안았다.[218] 같은 달 20일 지바 롯데전에서도 4이닝 4실점으로 패전 투수가 됐고[220] 다음날인 21일에 오른쪽 팔꿈치 통증으로 등록이 말소됐다.[221] 13일을 쉬고 6월 3일 주니치전에 복귀하여 등판했지만[222] 같은 달 24일 닛폰햄전에서 6회의 투구 연습 중에 오른쪽 팔꿈치 통증을 호소하며 긴급 강판됐고[223] 다음날 25일에 또다시 등록 말소됐다.[224] 18일을 쉬고 7월 13일 오릭스전에 복귀하여 등판을 이뤘고[225] 이어진 21일 라쿠텐전에서 8이닝 4피안타 무실점으로 호투하며 자신의 4연승을 기록했지만[226] 후반기가 개막된 7월 29일 세이부전[227]에서는 5이닝 5실점으로 패전 투수가 됐다.[228] 8월 4일에는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아 증상도 있어서 자가 격리에 들어갔고[229] 다음날인 5일에 출전 선수 등록이 말소됐다.[230] 8월 21일에는 2군에서 실전 복귀했고[231] 같은 달 28일 닛폰햄전에서 1군에 복귀했는데 80구의 투구 수 제한이 걸린 선발 등판이었지만[232] 76구로 6이닝을 던지고 4피안타 무4사구 9탈삼진 무실점의 호투로 승리 투수가 됐다.[233] 그 후에는 정상이 아닐 정도의 투구가 두드러졌지만[234][235] 팀이 우승 매직넘버 1[236]로 맞이한 10월 1일 세이부전에서 5일 쉬고 선발 등판해[237] 7이닝 1실점으로 역투했다.[238] 다만 팀 타선의 지원이 없어서 팀은 연장전에서 패했고[239] 다음날인 2일에도 팀은 패배하여 오릭스가 승리함으로써 리그 우승을 놓쳤다.[240] 이 해에는 세 번의 전력 이탈이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팀에서는 유일하게 규정 투구 이닝을 채워 22경기에 선발 등판해 11승 6패[241], 리그 2위의 평균 자책점 1.94를 기록했다.[242]
포스트시즌에서는 세이부와의 CS 퍼스트 스테이지 1차전에 선발 등판[243]했는데 4점 앞선 5회초 1아웃 1·3루 상황에서 병살성 타구를 나카무라 아키라가 악송구한 것을 시작으로 2점을 내주고[244] 6회초에도 솔로 홈런을 얻어맞고 실점했지만[245] 자원해서 8회까지 연투하고[246] 8이닝 4피안타 11탈삼진 3실점(2자책점)의 역투로 승리 투수가 됐다.[245] 계속되는 오릭스와의 파이널 스테이지 3차전에선 5일 쉬고 선발 등판하여 지면 팀은 탈락이라는 각오로 마운드에 올랐지만[247] 시속 160km/h를 넘을 정도의 빠른 구속으로 압도적인 투구를 선보였다.[248] 양쪽 다리에 쥐가 나는 바람에 7회 도중 강판됐는데 3피안타 무실점의 호투로 승리 투수가 됐다.[249] 클라이맥스 시리즈에서는 2전 2승으로 에이스의 역할을 이뤄냈지만[250] 팀은 다음날 10월 15일에 열린 4차전에서 파이널 스테이지 탈락이 결정되자 경기 후에는 “내 마음 속에는 6년 정도 얘기했고 이제 와서 달라진 건 없다. (FA)행사는 무조건 할 것이다”라고 시즌 중에 취득한 해외 FA권을 행사하겠다고 천명했다.[251]
11월 10일에 NPB로부터 해외 FA 선수로 공시됐다.[252]
2022년 12월 18일에 뉴욕 메츠와 5년 계약[주 6]을 맺었다.[255] 구단 역사상 14번째의 일본 출신의 선수이자 MLB에서는 최다이며[255] 자신의 이적으로 육성 출신 최초의 메이저 리거가 탄생했다.[256] 12월 19일에 입단 회견을 가졌다.[257] 등번호는 34번으로 결정했는데[258] 이 등번호는 구단 공식 트위터에서 ‘34’, ‘40’, ‘46’이라는 3가지 숫자를 선택해달라는 설문조사를 실시하여 34를 택한 것이었다.[259] 메츠 입단의 결정적인 선수로는 맥스 슈어저, 저스틴 벌랜더 등 두 사람이 소속돼 있음을 밝혔다.[260] 또한 2023년 3월에 개최될 예정인 제5회 WBC 일본 대표팀과 관련하여 도쿄에서 치를 예선 B조 경기에 대해서는 빅리그 적응 때문에 참가할 수 없다고 말하면서도 마이애미에서 열리는 준결승전에 일본이 진출했을 경우에는 대회 기간 중에 참가하겠다고 WBC 대표팀 감독으로 취임한 구리야마 히데키에게 이같은 입장을 전달했다는 사실을 공개했다.[258] 하지만 구리야마 감독은 센가가 이적 1년 차인 사정을 고려해서 준결승에 진출할 경우를 포함한 일본 대표팀 선수로 발탁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261]
4월 2일, 론디포 파크에서 열린 MLB 데뷔전 마이애미 말린스와의 4차전에서 첫 등판 및 첫 선발로 나섰다. 타선에게 2점을 지원받은 직후인 1회말에 선두 루이스 아라에즈를 안타로 내보낸 뒤 자신의 폭투로 인해 주자를 2루로 진출시켜 후속 타자인 호르헤 솔레르에게 적시 2루타를 허용하여 첫 실점을 내줬고 이어진 두 명의 타자에게 연속 볼넷으로 무사 만루 위기에 몰렸다. 5번 타자 율리에스키 구리엘을 상대로 MLB 진출 후 첫 탈삼진이 되는 헛스윙 삼진, 이어진 헤수스 산체스를 상대로 헛스윙 삼진, 존 버티를 우익수 라인 드라이브로 잡아내며 위기를 넘겼다. 이후 2회 선두 타자에게 볼넷을 내줬지만 1아웃 후 병살타, 5회 2아웃 상황에서 아라에즈에게 첫회 이후 안타를 얻어 맞았지만 이어진 솔레르를 헛스윙 삼진, 6회말에는 선두 타자 재즈 치좀 주니어를 상대로 이 경기에서 8개째 삼진을 헛스윙으로 잡아낸 뒤 교체됐다. 이로써 5와 1/3이닝 동안 88개의 공을 던져 1실점으로 호투해 이후 팀은 5대 1로 승리하면서 MLB 데뷔 첫 승리 투수가 됐다.[262] 7월 8일에 마커스 스트로먼이 사퇴하여[263] 대체 선수로서 MLB 올스타전에 첫 출전하는 영예를 안게됐다.[264] 메츠의 신인 선수가 MLB 올스타전에 출전한 사례는 1967년 톰 시버, 1968년 제리 쿠스먼, 1984년 드와이트 구든, 2019년 피트 알론소에 이어 다섯 번째였다.[264] 이 해에는 29경기에 등판해서 12승 7패, 내셔널 리그 2위에 해당되는 평균 자책점 2.98, 202탈삼진[265], 리그 3위의 피안타율 6.82[266], 리그 4위의 탈삼진률 10.93[267], 리그 5위의 피홈런율 0.92[268]라는 성적을 남겼다. 또 기자단 투표에서는 올해의 신인상 2위[269], 사이 영 상 투표에서도 7위[270]에 올랐다.
2월 14일 스프링 캠프 첫날부터 오른쪽 어깨가 뻣뻣하는 증상이 나타나면서 전체 연습에 참가하지 않았고 같은 달 21일에 MRI 검사를 거쳐 다음날인 22일 의사로부터 오른쪽 어깨 뒷부분에 염좌가 발견됐다는 진단을 받았다.[271] 복귀 시기는 결정하지 않았고 수술 일정도 잡히지 않았지만 메츠 구단측은 센가가 빠른 시일 내에 복귀가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 25일에는 통증이 있는 오른쪽 어깨에 채취한 혈소판을 주입해 조직을 복구시키는 ‘PRP 주사’를 맞았다고 구단 홈페이지를 통해서 밝혔다.[272] 개막 이후 60일 부상자 명단에 들어가면서 재활 훈련을 계속해오다 7월 3일, 산하 마이너 리그 팀인 싱글A 브루클린 사이클론스의 일원으로서 뉴욕 시내에서 열린 허드슨 밸리전에 선발로 나와 2와 2/3이닝을 무안타 무실점, 6탈삼진으로 회복하는 모습을 보였다.[273] 마이너 리그에서 총 4차례나 실전 등판한 후 7월 26일 메이저 리그 복귀 무대인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전에서 시즌 첫 선발 등판했다. 5와 1/3이닝을 던져 2피안타 2실점, 9탈삼진으로 호투했지만 6회에 선두 타자 오스틴 라일리를 내야 뜬공으로 잡아냈고 1루수 피트 알론소에게 베이스 커버를 위해 방향을 트는 순간 왼쪽 종아리를 부여잡고 쓰러지며 교체됐다.[274] 팀은 승리하면서 미일 통산 100승을 달성했지만 60일 부상자 명단에 들어갔다고 구단측이 발표했다.[275]
2016년 10월 18일에 ‘사무라이 재팬 야구 네덜란드 대표 및 야구 멕시코 대표팀 평가전’의 일본 대표팀 선수로 발탁됐다.[276] 이 평가전에서는 중간 계투로 두 경기에 등판했다.[277]
2017년 1월 24일에 제4회 WBC 일본 대표팀 선수로 발탁됐다.[주 7] 3월에 개최된 본선에서는 중간 계투[279][280]와 선발로 등판했다.[281] 준결승인 미국전에서는 3루수 마쓰다 노부히로의 실책으로 이 대회에서의 첫 실점을 내주고 패전 투수가 됐지만 총 11이닝 동안 16개의 탈삼진을 기록했다.[282] 이는 스가노 도모유키와 나란히 이 대회에서의 최다 탈삼진이었다.[283] 대회 종료 후 포지션별 우수 선수(올 WBC 팀, 투수 부문은 3명)에는 일본 대표팀에서 유일하게 수상했다.[98][284] 또한 위의 활약을 인정받아 5월 22일에는 가마고리시로부터 스포츠 영예상을 수상했다.[285]
2018년 1월 23일에 ‘ENEOS 사무라이 재팬 시리즈 2018’의 일본 대표팀 선수로 발탁됐다.[286] 이 경기에서는 ‘사무라이 재팬 톱 팀’의 첫 대진이었고 개막전 선발 투수로 지명[287]되면서 예정된 2이닝을 첫회 선두 타자부터 6명의 타자들을 연속으로 삼진을 뺏어낼 정도의 압도적인 투구를 선보였다.[288]
2019년 10월 1일에 제2회 프리미어 12의 일본 대표팀 선수로 발탁됐지만[289] 같은 달 24일에 오른쪽 어깨 이상이 생겨 출전을 고사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290]
2021년 6월 25일에 나카가와 고타가 골절로 인한 부상에 의해서 도쿄 올림픽 본선 출전을 포기[291]함에 따라 센가는 왼쪽 발목 인대 손상으로 이탈 중이면서도 1군에 복귀할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와 대체 선수 후보로 거론됐다. 본인의 상태를 확인한 뒤 구단도 이에 승낙하여[292] 7월 5일 일본 대표팀에 정식 합류하는 것으로 결정했다.[293] 본선에서는 결승을 포함한 2경기에 구원 등판해 총 3이닝을 6탈삼진 무실점으로 호투해 일본의 금메달 획득에 기여했다.[294]
스리쿼터[296][297]로부터 던지는 평균 구속 154.4km/h(2022년 시즌)[298]·최고 속도 164km/h[299]의 강력한 포심과 함께 낙차가 큰 포크[300], 컷볼[301]이나 종슬라이더로 헛스윙을 빼앗는 스타일을 취하고 있다.[2] 특히 엄청난 낙차를 자랑하는 포크볼은 ‘유령 포크’(영: ghost fork)라고 불릴 정도로 센가의 대명사가 됐다.[302][303]
MLB 첫 해인 2023 시즌에 센가의 포크볼은 타자의 헛스윙률을 나타내는 Whiff%로 59.7%를 기록했는데 이는 2008년 피치 트래킹 도입 이후 선발 투수 하나의 구종으로서 MLB 시즌 최고 기록이다.[304] 또한 득점 가치(Run Value)에 기초를 두는 것을 바탕으로 센가의 구종 가운데서 상대의 득점 기대치를 가장 낮추고 있는 구종은 컷볼이며 같은 해 센가 이상으로 컷볼의 득점 가치가 높은 투수는 코빈 번스 뿐이었다.[305]
고등학교 시절 최고 속도 144km/h를 기록하고 이후 프로 1년차에 기초 체력 양성을 우선시한 결과, 1년간 최고 속도 기록을 152km/h까지 늘렸다.[16] 2년차에는 당시의 선배 투수인 지카다 레오의 권유로 스포츠 트레이너 고노에 히사오가 주재하는 합동 자율 훈련에 지카다, 천웨이인, 요시미 가즈키, 우에노 유키코 등과 함께 참가했다. 고노에로부터 신체의 사용법을 배운 것을 계기로 낮은 쪽으로의 속구 신장을 대폭 향상시켰다.[16] 지역 구단인 주니치 드래건스의 스카우트는 소프트뱅크 입단 후 2군에서 센가의 투구를 시찰했을 때 ‘아이치에 이런 선수가 있었다니…’라고 한탄했다고 한다.[7]
고교 시절에는 포크볼의 손잡이를 얕게 하는 스플릿핑거 패스트볼(스플릿)을 던졌지만 슬라이더가 회전하고 있었기 때문에 집게손가락을 실밥에 걸칠 수 있는지를 공부했다. 프로 입단 후 제구난에 시달리고 있던 센가는 2012년 1월 자율 훈련에서 야구계 굴지의 컨트롤을 자랑하는 요시미에게 적극적인 조언을 요구해[306] 엄지의 사용법을 가르쳐 ‘20구 중에서 단 한 구밖에 제대로 떨어졌던 포크’가 매번 바로 아래로 떨어지는 완성도가 높은 포크로 바뀌어[307] 유령 포크로까지 불리게 됐다.[300]
구원 투수로 기용되기 시작한 2013년 정규 시즌에서는 1군 공식전에서 팀내 1위인 51경기에 등판했다. 동점인 상황에서 등판한 7경기 중 5차례의 구원에 실패했다. 그런 한편으로 근소한 차이로 지고 있는 상황에서 등판한 18경기 가운데 17경기를 무실점으로 막아내고 있었다. 당시에는 직구와 포크를 주체로 투구를 조합하고 있었지만 2015년에 선발로 재전향한 이후에는 슬라이더를 볼 배합에 추가함으로써 투구의 폭과 안정감을 더하고 있다.[7]
NPB에서는 지명 타자 제도가 있는 퍼시픽 리그에 소속돼 있었기 때문에 평소에는 타석에 서지는 않았지만 MLB로 이적하기 전인 2022년까지 교류전에서 타석에 들어선 7경기 중 4경기에서 안타를 쳤고 통산 18타수 4안타의 성적을 남겼다.
구라노 신지의 증언에 의하면 입단 초기에는 보통 선수의 훈련 메뉴를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체력이 없고 강하게 던지면 어깨에 이상이 생기는 경우가 있다곤 하지만 당시보다 몸의 부드러움과 유연한 자세가 있다고 평가했다.[308]
연 도 | 소 속 | 등 판 | 선 발 | 완 투 | 완 봉 | 무 4 구 | 승 리 | 패 전 | 세 이 브 | 홀 드 | 승 률 | 타 자 | 이 닝 | 피 안 타 | 피 홈 런 | 볼 넷 | 고 4 | 몸 맞 | 탈 삼 진 | 폭 투 | 보 크 | 실 점 | 자 책 점 | 평 자 책 | W H I P |
---|---|---|---|---|---|---|---|---|---|---|---|---|---|---|---|---|---|---|---|---|---|---|---|---|---|
2012년 | 소프트뱅크 | 2 | 2 | 0 | 0 | 0 | 0 | 1 | 0 | 0 | .000 | 29 | 4.2 | 7 | 0 | 8 | 0 | 0 | 1 | 0 | 0 | 7 | 5 | 9.64 | 3.21 |
2013년 | 51 | 0 | 0 | 0 | 0 | 1 | 4 | 1 | 17 | .200 | 232 | 56.1 | 32 | 1 | 26 | 0 | 1 | 85 | 10 | 1 | 16 | 15 | 2.40 | 1.03 | |
2014년 | 19 | 0 | 0 | 0 | 0 | 1 | 1 | 0 | 3 | .500 | 90 | 22.2 | 17 | 0 | 5 | 0 | 1 | 28 | 1 | 0 | 5 | 5 | 1.99 | 0.97 | |
2015년 | 4 | 3 | 0 | 0 | 0 | 2 | 1 | 0 | 0 | .667 | 85 | 22.1 | 9 | 0 | 10 | 0 | 0 | 21 | 0 | 0 | 2 | 1 | 0.40 | 0.85 | |
2016년 | 25 | 25 | 3 | 0 | 0 | 12 | 3 | 0 | 0 | .800 | 681 | 169.0 | 125 | 16 | 53 | 0 | 6 | 181 | 7 | 1 | 52 | 49 | 2.61 | 1.05 | |
2017년 | 22 | 22 | 0 | 0 | 0 | 13 | 4 | 0 | 0 | .765 | 572 | 143.0 | 107 | 15 | 46 | 0 | 2 | 151 | 6 | 0 | 47 | 42 | 2.64 | 1.07 | |
2018년 | 22 | 22 | 1 | 1 | 1 | 13 | 7 | 0 | 0 | .650 | 584 | 141.0 | 116 | 21 | 58 | 0 | 5 | 163 | 5 | 0 | 57 | 55 | 3.51 | 1.23 | |
2019년 | 26 | 26 | 2 | 2 | 0 | 13 | 8 | 0 | 0 | .619 | 752 | 180.1 | 134 | 19 | 75 | 1 | 8 | 227 | 4 | 1 | 60 | 56 | 2.79 | 1.16 | |
2020년 | 18 | 18 | 1 | 0 | 0 | 11 | 6 | 0 | 0 | .647 | 503 | 121.0 | 90 | 4 | 57 | 0 | 2 | 149 | 5 | 0 | 37 | 29 | 2.16 | 1.21 | |
2021년 | 13 | 13 | 0 | 0 | 0 | 10 | 3 | 0 | 0 | .769 | 340 | 84.2 | 60 | 2 | 27 | 0 | 2 | 90 | 7 | 0 | 25 | 25 | 2.66 | 1.03 | |
2022년 | 22 | 22 | 1 | 0 | 0 | 11 | 6 | 0 | 0 | .647 | 568 | 144.0 | 103 | 7 | 49 | 0 | 3 | 156 | 2 | 2 | 37 | 31 | 1.94 | 1.06 | |
2023년 | NYM | 29 | 29 | 0 | 0 | 0 | 12 | 7 | 0 | 0 | .632 | 694 | 166.1 | 126 | 17 | 77 | 0 | 5 | 202 | 14 | 1 | 60 | 55 | 2.98 | 1.22 |
2024년 | 1 | 1 | 0 | 0 | 0 | 1 | 0 | 0 | 0 | 1.000 | 20 | 5.1 | 2 | 1 | 1 | 0 | 1 | 9 | 0 | 0 | 2 | 2 | 3.38 | 0.56 | |
NPB: 11년 | 224 | 153 | 8 | 3 | 1 | 87 | 44 | 1 | 20 | .664 | 4436 | 1089.0 | 800 | 85 | 414 | 1 | 30 | 1252 | 47 | 5 | 345 | 313 | 2.59 | 1.11 | |
MLB: 2년 | 30 | 30 | 0 | 0 | 0 | 13 | 7 | 0 | 0 | .650 | 714 | 171.2 | 128 | 18 | 78 | 0 | 6 | 211 | 14 | 1 | 62 | 57 | 2.99 | 1.20 |
연도 | 소속 | 투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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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 기 | 척 살 | 보 살 | 실 책 | 병 살 | 수 비 율 | ||
2012 | 소프트뱅크 | 2 | 0 | 1 | 0 | 0 | 1.000 |
2013 | 51 | 0 | 14 | 0 | 1 | 1.000 | |
2014 | 19 | 0 | 1 | 0 | 0 | 1.000 | |
2015 | 4 | 0 | 3 | 0 | 0 | 1.000 | |
2016 | 25 | 10 | 30 | 1 | 1 | .976 | |
2017 | 22 | 8 | 17 | 1 | 1 | .962 | |
2018 | 22 | 4 | 13 | 1 | 1 | .944 | |
2019 | 26 | 10 | 23 | 4 | 1 | .892 | |
2020 | 18 | 2 | 18 | 0 | 2 | 1.000 | |
2021 | 13 | 8 | 7 | 0 | 0 | 1.000 | |
2022 | 22 | 6 | 30 | 1 | 4 | .973 | |
2023 | NYM | 29 | 14 | 8 | 1 | 1 | .957 |
2024 | 1 | 1 | 0 | 0 | 0 | 1.000 | |
NPB: 11년 | 224 | 48 | 157 | 8 | 11 | .962 | |
MLB: 2년 | 30 | 15 | 8 | 1 | 1 | .95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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