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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주선기념박물관은 1967년 11월 단국대학교 박물관으로 개관하였다. 1981년 난사 석주선 박사가 평생 모은 3365점의 유물을 기증하여 민속 복식 박물관으로 재탄생되었다. 2001년에는 정부로부터 공로가 인정되어 대한민국의 제1종 종합박물관으로 정식 등록(문화관광부)하게 되었고 매주 화요일, 목요일 무료로 개관해 오고 있다.[1]
석주선기념박물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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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 대한민국 |
개관일 | 1967년 11월 |
2007년 8월 30일 서울시 용산구 한남동에서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로 자리를 옮긴 석주선박물관은 지하 1층, 지상 2층에 연면적 4,844m2 규모며 3개 수장고를 갖추고 있다. 박물관은 350년 된 6세 소년의 실물 남아 미라를 비롯해 소장품 41,550점 중 1,500여점을 엄선해 전시하고 있다.[2]
용인문화원 주관으로 1997년부터 향토문화유적답사를 동서남북으로 나눠 4개 코스로 운영하고 있는데 2013년부터 기본코스 5개에 특별코스 5개를 추가로 신설, 모두 10개 코스로 확대하였다.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은 3코스에 포함되어 있다.
개관직후부터 시작된 지표조사와 발굴을 통해 1978년에는 단양신라적성비(국보 198호), 1979년에는 충주 고구려비(국보 205호)를 비롯해 수많은 문화재를 발견 조사하여 대한민국 역사학계에 공헌을 인정받았다. 1981년에는 고 난사 석주선박사가 평생 수집한 3,365점의 유물을 기증해주어 대한민국의 민속 복식 분야의 토대를 마련하였다.
2001년 경기도 양주 해평 윤씨 묘역에서 350년 된 6세 소년의 실물 남아 미라와 당시 시신을 감싸 관에 넣어졌던 부모의 옷(중치막)이라는 조선복식을 공개해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3][4]
2001년 문화기반시설 박물관 부분(문화관광부) 장려상을 수상하였다. 2004년 10월에는 세계박물관 대회(ICOM) 특별전을 개최하였고 2009년 4월 14일 단국대학교 수지 신 캠퍼스로 옮겨 신축박물관을 개관하였다.
경기도 용인시 단국대학교 죽전캠퍼스내의 석주선기념박물관 입구 좌우측에는 1980년 6월 11일 서울특별시 중요민속문화재 제42호로 지정된 구 영릉 석물 중 석호상이 각각 한 마리씩 놓여 있다.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에는 보물 1점(안중근 의사 유묵, 보물 제569-21호)를 비롯하여 총 11건 100점의 중요민속 문화재, 고고 미술, 민속 복식에 이르기까지 약 4만여 점의 유물이 소장되어 있다.[1][3]
또한 친오빠이자 한국의 나비박사로 알려져 있는 석주명의 유품 및 관련 사료 50여점은 단국대 석주선기념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한국전쟁이 터졌을 때 석주명은 13년 동안 연구한 <한국산 접류의 분포 지도> 때문에 수십만 개의 나비 표본이 있는 과학박물관에 머물러 있었다.
1950년 9월 말의 폭격으로 박물관이 전소되었고, 나비 표본과 원고도 불에 타고 말았다. 남겼던 원고는 누이동생 석주선에 의해 복원되었다. 전쟁으로 실의에 빠져 있던 석주명은 다시 힘을 내서 박물관 재건을 위한 회의에 참석하러 가다가 1950년 10월 6일 인민군으로 오인 받아 총격을 당해 사망하고 말았다.
대학 박물관으로는 처음으로 전문학술지 『한국복식사』를 발간하였다.[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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