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양정부(北洋政府)란, 1912년부터 1928년까지 베이징에 존재한 중화민국 정부를 말한다. 이 정부는 군벌세력들을 중심으로 정권을 장악했다.
개요
당시 중국은 신해혁명으로 난징에는 쑨원 주도 하에 중화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었고, 청나라는 북양함대를 이끄는 위안스카이가 권력을 좌지우지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서로간의 충돌을 꺼려했던 임시정부와 위안스카이는 협상을 개시했고, 결국 중화민국 정부를 베이징에 두고 대총통직을 위안스카이에게 넘겨주는 조건으로 양측 간에 합의가 타결되었다. 쑨원으로부터 대총통직을 받고 북양정부 수립을 완료한 위안스카이는 수도를 자신의 근거지인 베이징에 두었으며, 독재 체제를 굳히려는 양상을 보였다. 이후 본색을 드러낸 그는 내부적으로는 혁명가들을 탄압하였으며, 특히 열강들에게 너무 많은 이익을 주어 점차 국민들의 반발을 샀다. 마침내 그는 고문들과 장남 위안커딩의 권유로 중화민국을 중화제국으로 바꾸고 스스로 황제에 올랐으나, 측근들의 반발에 직면한데다 가족들도 위안커딩을 제외하면 모두 반발하고 영국, 프랑스, 미국 등 열강들 또한 강하게 반발하였다. 더욱이 1915년 12월 25일에는 운남군벌의 량치차오, 차이어, 탕지야오 등이 합세하여 토원 봉기가 일어나고 봉기가 전국으로 퍼져 호국전쟁이 발발하자 3월 23일 제정을 취소했다. 하지만 계속되는 측근들의 배신과 하야 압력에 요독증이 악화되어 1916년 6월 6일 사망했고, 그 뒤를 이은 대리총통 리위안훙은 임시약법과 구국회의 회복을 선언했다.
하지만 헌법 제정 문제로 국회 내부의 정쟁이 이어졌고 부원지쟁과 장훈복벽을 거쳐 중화민국 국회가 다시 전복되면서 호법전쟁 등 남북 내전이 이어졌고 북방에서는 북양정부의 권력을 쥐기 위해 안휘군벌의 돤치루이, 직예군벌의 펑궈장, 차오쿤, 오패부, 봉천군벌의 장쭤린, 산시군벌의 옌시산 등이 중국 각지에서 할거하였다. 이 군벌들이 중앙에서 대립하였고, 각 지방에서도 군벌들이 난립하여 중국 전역에서 군벌들이 서로 싸우는 상황이 1928년까지 이어진다. 이 시기에 1919년 외몽골 출병을 통해 다시 복속시킨 외몽골이 1921년 로만 폰 운게른슈테른베르크의 공격에 다시 빼앗기는 등 국가적 손실도 매우 심각하였다.
이후 장쭤린이 대원수 자리에 오르고, 중국 통일을 이루는가 싶었지만 1926년 장제스의 북벌이 시작되면서 많은 군벌들이 몰락하게 된다. 국민당은 4.12 상하이 쿠데타 이후 잠시 분열되었으나 곧 영한합작을 통해 1927년 장제스를 중심으로 하여 난징 국민정부가 수립되었고 장제스는 1928년 펑위샹, 옌시산 등과 힘을 합쳐 2차 북벌에 나섰다. 결국 장쭤린은 수도를 봉천으로 옮긴다고 선포한 후 내각을 거느리고 본거지인 만주로 퇴각하다가 관동군의 고모토 다이사쿠, 도이하라 겐지 등이 일으킨 황고둔 사건으로 암살당했다. 그 뒤를 이은 장쉐량이 봉천군벌의 지도자가 되지만 힘의 차이를 깨달은 장쉐량은 장제스에게 항복하였고, 동북역치로 국민정부에 합류함으로 북양정부는 1928년에 완전히 소멸했다.
같이 보기
참고 문헌
- 이윤섭 (2010년 12월 5일). 《객관적 20세기 전반기》. 필맥. ISBN 978-89-91071-82-7.
- 황보종우 (2003년 9월 1일). 《청소년을 위한 세계사 사전》. 청아출판사. ISBN 978-89-368-009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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