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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무(朴英武, 1943년 ~)는 대전고등법원장과 사법연수원장 등을 역임한 법조인이다.
1943년 함경북도 청진시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제8회 사법시험에 합격해 육군 대위를 전역하고 판사에 임용되었다.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로 재직 중이던 1993년 9월 고위 공직자 재산 신고에서 부인 명의로 '靑田'과 '毅齊'의 동양화 각 1점, 以堂과 毅齊 병풍 2점을 신고했다.[1]
서울지방법원 서부지원장으로 재직하다 법원장으로 승진하여 1999년 10월 11일에 창원지방법원,[2] 2000년 7월 21일에 서울행정법원[3], 2000년 9월 7일에 서울지방법원[4]에서 법원장을 하였으며 2001년 2월 12일에 대전고등법원장으로 승진하여 재직하던 중,[5] 2001년 8월 4일에 부산고등법원장으로 전보된 이융웅의 후임으로 특허법원장을 겸임하다가[6] 2002년 2월 8일에 사법연수원장으로 전보되었다.[7] 사법연수원장으로 재직하다 정기 인사가 있던 2003년 2월 12일을 앞두고 스스로 퇴직했다.[8]
최종영 대법원장은 사법연수원장으로 재직 중이던 2002년 2월 19일에 김대환신명균의 사직에 따라 최종영 대법원장에 의해 이융웅 서울고등법원장과 함께 신임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으로 지명됐다.[9]
서울고등법원에서 재판장으로 재직하던 1987년 2월 23일에 유성환 의원에 대한 3차 공판을 마치고 나오면서 "법정이 시장 바닥이나 유세장처럼 돼 버렸다"고 하면서도 "법정소란은 엄벌로도 잘 잡히지 않고 그렇다고 방치할 수도 없어 고민이다"고 말했으며[10] 1988년 11월 14일에는 미국 대사관 점거 및 폭발물 투척 사건으로 구속된 피고인 3명의 특수공무집행방해 재판 선고를 마치고 방청객 10여명이 법대 위로 뛰어오르고 사건 판결문이 빼앗으면서 "전두환이나 이순자는 잡아넣지 않고 엉뚱한 사람들만 잡아 넣는다"며 항의하는 사건이 발생했지만 곧 그밖의 방청객 50여명이 이들에 합세하여 경찰이 출동하여 7명을 연행했다.[11]
서울지방법원장으로 재직하던 2000년 10월 24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법원 경매절차의 투명성 확보 방안을 묻는 자민련 김학원 의원의 질의에 "인터넷을 통한 경매정보 제공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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