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시(密陽市)는 대한민국경상남도 동북부에 있는 시이다. 경부선 철도와 중앙고속도로가 지나며, 대구광역시와 부산광역시의 중간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울산광역시울주군과 경상북도청도군의 경계를 이루고 있으며, 주변 6개 시군과 경계를 두고 있다. 시청 소재지는 교동이고, 행정구역은 2읍 9면 5동이다. 동서북 삼면은 심산준령에 위치해 있으며, 남쪽으로는 낙동강이 유하하여 동북쪽이 높고 서남쪽이 낮으며 동서의 길이가 남북의 길이보다 큰 지형 형태를 이루고 있다.
1415년(조선 태종 15년) 1천 가구 이상인 고을을 도호부로 하면서 밀양도호부(密陽都護府)가 되었다. 조선 세종 때 기준으로, 수산현(守山縣)과 풍각현(豐角縣)을 속현(屬縣)으로 두고 있었고, 향(鄕)이 1개(내진향(來進鄕)), 부곡(部曲)이 3개(두야보(豆也保)·이동음(伊冬音)·금음물(今音勿))였다.
화악산(이는 조선 때에는 밀양의 진산(鎭山)으로 여겨졌다), 가지산의 지맥이 북동쪽에 융기해 있어 산세가 험준한 산간지대를 이루었지만, 남쪽은 낙동강과 밀양강 유역에 광활한 상남·하남 평야가 전개되어 곡창지대를 이루고 있으므로 농업생산력도 다른 시에 비해 과시할 만한 곳이다. 수자원이 풍부하여 일찍이 섬유공업이 발달되었으며, 남천강변에 휴양지가 많이 있어 입지적으로 보아 상공업의 발달에도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17]
낙동강은 창녕군 쪽에서 동진하여 초동면·하남읍─창원시 동읍·대산면·김해시 한림면 사이의 경계를 이루며 흐르다가 삼랑진읍과 김해시 생림면 간의 경계에서 밀양강과 합류한다. 밀양강의 본류 동창천은 울산광역시울주군두서면의 고헌산에서 발원하여 남류하다가 밀양으로 진입하여 단장천, 감존천, 범곡천, 직현천 등과 합류하고, 상동면에서 청도천과 합류하여 본격적으로 밀양강이 되어 남류하다가 낙동강에 합류한다.
남부내륙지방에 위치해 한서의 차가 심하며, 특히 여름에는 대구광역시와 함께 전국적으로 가장 무더운 도시로 유명하다. 강수량도 연평균 1,226.6mm 정도로 적은 강수량은 아니나, 대체로 비가 많이 오는 경상남도의 기후의 특징을 감안하면 많은 강수량도 아니다. 어떻게 보면 인근의 대도시인 대구광역시와 유사한 기후를 보인다.
밀양시는 북동쪽의 가지산, 북서쪽의 화악산 지맥에 접하여 있으면서 동쪽의 재약산과 남서쪽의 종남산을 등지고 계절풍의 영향을 받고 있는 편이다. 사면이 산으로 둘러싸인 관계로 연평균 기온이 12.9°C로 비교적 온화하며, 연평균 습도는 연간 69%로 국내의 평균습도에 속한다. 풍속은 연간 1.6m/sec로 동계의 계절풍은 북북서 내지 북동풍이 주축을 이루며, 하계의 계절풍은 남동, 남서풍이 재약산과 종남산의 영향으로 극히 적게 나타나고 있는 경향을 보일 뿐 대체로 일반적이다. 연평균 강수량은 1360mm로서 우리나라 기후 구분에 따르면 남부평지 다우형으로 6월, 7월, 8월 3개월의 강우량이 1년 강우량의 65%로 우기에 해당하며, 하계를 제외한 춘추동 기간은 건기를 형성한다. 하계는 비가 많이 내리고, 동계는 비가 적은 것이 또한 특징이다.[20]
KTX가 정차하고, 대구부산고속도로와 국도 제24호선, 국도 제25호선의 확포장으로 명실상부한 영남의 교통중심 도시로 발돋움하였으며 인근 대도시인 창원과 42.3km, 울산과 63.9km, 부산과 58.8km, 대구와 56.6km 거리에 있는 교통의 중심지이다. 그래서 일찍이 근대화 초기부터 인근 지방과의 교역이 활발하였다.
대중교통 수단으로는 시내버스, 시외버스, 농어촌버스, 철도가 있으며 버스 교통에 비해 철도 교통이 발달하였다. 이는 밀양터미널 시외버스 노선이 부산, 마산.창원, 울산, 경산, 김해 등 주로 밀양시 주변 도시로 가는 노선 밖에 없는데다 그나마도 서울을 제외한 수도권과 충청, 호남권으로 가는 노선이 아예 없는 몇 안 되는 지역이기 때문에 타 지방으로 가려면 철도 노선에 의지할 수 밖에 없다. 밀양에서 서울고속버스 터미널로 다니는 고속버스가 일 4회 운행되고 있다.
영남루는 보물 제147호로, 경상남도 밀양시 내일동에 있는 누각으로 구 객사의 부속건물이다. 1365년 고려 공민왕 때 부사 김주(金湊)가 신라시대 때부터 이 자리에 있었던 영남사의 부속 누각으로 전해져 오던 작고 초라한 누각을 철거한 후, 진주 진주 촉석루의 제도를 취하여 다시 만들었는데, 이 때부터 규모가 큰 독립된 누각이 되었다.[1] 정면 5칸, 측면 4칸으로, 1844년에 다시 지어진 조선시대 후기 건물의 특색을 잘 반영한다. 옛날에 귀한 손님을 맞이하여 잔치를 베풀던 곳으로, 진주 촉석루, 평양 부벽루와 함께 한국 3대 누각 가운데 하나이다.
표충사
표충사는 밀양시 단장면 구천리 해발 1,189m의 재약산에 자리를 잡고 있는 사찰이다. 654년신라 태종무열왕 1년 원효대사가 창건하여 죽림사(竹林寺)라 하였다. 1286년고려 충렬왕 12년에는 《삼국유사》의 저자인 일연 국사가 1,000여 명의 승려를 모아 불법을 일으키기도 하였다. 1839년조선 헌종 3년 사명대사의 법손인 월파선사가 사명대사의 고향인 무안면에 그의 충혼을 기리기 위해 세워져 있던 ‘표충사’(表忠祠)를 이곳으로 옮기고 절 이름도 표충사라 고쳐 부르게 되었다. 밀양 표충사 청동은입사향완(국보 제75호), 밀양 표충사 삼층석탑(보물 제467호), 그 밖의 여러 유형 문화재들이 이 곳에 있다.
표충비각
밀양시 무안면 홍제사 경내에 있는 비각이다. 일명 ‘땀흘리는 비각’이라고 하며, 국가의 중대사가 있을 때를 전후하여 비면에 자연적으로 땀방울이 맺혀서 마치 구슬땀처럼 흐르는데 이것을 두고 사람들은 나라와 겨레를 염려하는 사명대사의 영험이라고 신성시하고 있다.[2]
아랑사
아랑전설이 얽힌 곳으로, 1983년 7월 20일 경상남도문화재자료 제26호로 지정되었다. 명종 때 밀양부사의 딸이었던 아랑이 자신을 욕보이려던 통인(通引) 백가(白哥)에게 항거하다가 죽임을 당하여 대숲에 버려진 후 밀양에서는 신임 부사마다 부임 첫날밤에 죽게 되었고, 이후 이상사(李上舍)라는 사람이 밀양부사를 자원하여 아랑의 원혼에게서 억울한 사연을 듣고는 통인을 잡아 처형하고 아랑의 시신을 찾아내어 장사 지내니 그뒤로는 원혼이 나타나지 않았다는 전설이다. 지금도 매년 음력 4월 16일에 제사를 지내고 있으며, 이곳과 표충사(表忠祠)·아랑각(阿娘閣)·천진궁 등에서 매년 5월 16~20일에 밀양아랑제가 열린다.
밀양아리랑대축제는 매년 4월말에서 5월초에 전야제를 시작으로 문화예술행사, 체험행사, 공연, 전시등 다채로운 행사가 열리는 50여년 역사의 경상남도의 대표적인 향토축제 중 하나이다. 축제기간에는 고유제, 길놀이, 서막식, 밀양아리랑가요제, 밀양아리랑의밤, 아랑규수뽑기, 무형문화재 공연, 연극공연 등 전통문화 계승은 물론 시민대화합의 장으로 펼쳐진다.[3]
얼음골은 해발 1,189m의 천황산 북쪽 중턱 해발 600m지점에 위치한 계곡이다. 한 여름에도 얼음이 얼어있고, 처서가 지날 무렵부터 얼음이 녹는 신비로운 이상기온 지대이다. 약 3,000평쯤 되는 이 돌밭에는 해마다 6월 중순부터 바위 틈새에서 얼음이 얼기 시작하여 더위가 심해질수록 얼음이 더욱 많아져 삼복더위가 한창일 때 그 절정에 이르고, 반대로 가을철에 접어들면서부터 얼음이 녹기 시작하여 겨울철에는 바위틈에서 얼음대신 더운김이 올라오고 계곡을 흐르는 물도 얼지 않는 이상기온 지대이다.[4]
밀양시 삼랑진읍무월산에 위치한 옛 경부선 터널이다. 상행 457m, 하행 443m 총 900m로 이루어져있어서 쌍둥이 같은 모습 때문에 트윈터널이라는 이름이 지어졌다.
트윈터널
방언
영남 지방에 위치하여 동남 방언을 구사한다. 부산 말씨와 비슷한 뉘앙스를 풍기는 방언을 구사하기도 하지만, 대구와도 가까운 위치에 있기 때문에 특히 "ㅆ"을 "ㅅ"으로 발음하는 등 전반적으로 대구 말씨와도 유사한 편이다. 결과적으로 밀양 방언은 대구 방언+경남 방언의 혼합 형태를 띠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