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koyan이 개발한 초음속 제트 전투기 및 요격기 위키백과, 무료 백과사전
미코얀-구레비치 MiG-21(Mikoyan-Gurevich MiG-21, 나토 명칭 Fishbed)는 소련의 주력 전투기로, 전투기 설계 및 개발기술을 집약해 결함을 줄인 전투기다. MiG-21은 역사상 그 어느 전투기보다도 장기간 생산이 계속됐으며, 어떠한 초음속 전투기보다도 많은 수가 생산돼 세계 도처에서 전투에 참가했다. 전세계적으로 10,000여 대가 생산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MiG-21은 오래된 전투기지만, 일부 보유국 중에서는 수년 전까지도 엔진, 센서, 무장 등의 개량 노력이 지속된 효율성 높은 전투기로서, 현재도 인도, 중화인민공화국(중국제 개량형 사용),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등지에서 운용하고 있다.
초기에는 정보 부족으로 인해 비슷한 모양의 수호이 Su-9 전투기와 혼동되기도 했다. 제인스 인포메이션 그룹의 "1960년~1961년 세계 항공기" 에서는 (All the World's Aircraft 1960-1961) Su-9의 일러스트를 사용하여 Mig-21을 소개하기도 했다.
북한은 미그 21 180대를 보유해 2010년 기준으로 북한 전투기 중 최다 보유를 하고 있다. 이에 대한민국도 제공호을 포함해서 F-5계열 전투기 180대를 보유해 대응하고 있다. 남북한의 10톤급 전투기로서, 모두 2020년 경에 퇴역할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중국에서 청두 J-7로 후속 개발이 계속되었으며, 크게 개량하여 FC-1을 개발하였다. 북한이 최근 FC-1을 소량 도입하였다는 보도가 있다.
MiG-21은 1950년대 초/중반 이후 미국의 제트 폭격기 세력의 증가와 한국전쟁의 전훈에 따라 개발이 시작되었다.
1952년부터 미국 공군은 B-47 폭격기를 4년 동안 2,000대 배치했다. 마하 0.9급의 순항속도를 가진 이 폭격기는 MiG-15와 MiG-17을 무력하게 만들었으며, MiG-19만이 겨우 대적할 수 있었다. 그런데 B-47보다 성능이 우수한 B-52 폭격기가 1952년 4월 17일에 첫 비행을 하고, 1955년 2월부터 실전 배치되기 시작하자 소련의 입장에서는 본토 방공에 심각한 위협을 느끼게 되었고, 이에 대처하기 위한 전투기의 개발이 더욱 절실해졌다. 또한 미국은 B-52 외에도 B-58 허슬러라는 마하 2급 폭격기도 배치하였다.
한국전쟁에서 교훈 또한 보다 고성능의 전투기 개발의 필요성이 대두했는데, MiG-15로 초기에 성능상의 우위를 점유하였던 소련 전투기는 전쟁 후반에 들어서 미국 F-86의 성능개선에 따라 공중전에서 10:1이라는 열세를 면치 못했다. 근거리 선회기동의 공중전에서 속도, 가속선회율, 상승율 등의 성능이 승패를 가름하는데 이에 대한 중요성이 다시 한번 확인되었다.
1953년 후반, 미코얀 설계국에 하달된 전투기 요구조건은 다음과 같았다.
이런 요구사항은 B-52폭격기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었다. 당시의 기준에서 이 요구 조건은 소형기이면서 마하 2 이상의 속도를 요구하는 것이 문제가 되었다. 기가 작으면, 내부연료탑재량이 제한되고 출력이 큰 대형엔진의 탑재를 제한하게 되기 때문이다.
MiG-21의 설계는 소련의 중앙항공유체역학연구소(TsAGi)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주익의 형태는 삼각익과 후퇴익이 검토됐으며, 엔진은 기체의 크기를 감안하여 감안해 단발로 결정했다. 공기흡입구는 가장 심혈을 기울여 많은 검토끝에 결정됐는데, 공기 흡입구 중앙에 있는 센터바디(노스콘)은 속도에 따라 세 가지 위치를 자동조절하게 했으며, 공기흡입면은 실속 방지를 위해 면적을 작게 했다. 저속 및 시동에 대비해 주익 전연 아래에 보조 공기흡입구를 설치했다. 조종계통은 가볍고 효율적인 방도를 추구해 단일유압시스템으로 했으며, 라다와 보조익은 인력에 의한 예비작동방식을 택했다.
1954년, 미코얀 설계국은 삼각익형과 후퇴익형으로 시작기를 제작하기 시작했다. 후퇴익형 시작기 Ye-50은 1955년 후반에 첫 비행을 실시했다. 이때는 원래 탑재 예정이었던 투만스키 R-11 엔진이 생산되지 않아 MiG-19의 엔진인 투만스키 RD-9를 장착하고 보조동력으로서 기체 후미에 로켓 엔진을 장착했다. Ye-50은 주동력과 로켓 동력을 동시에 사용하여 마하 2.3을 기록했다. Ye-50의 시험비행은 항공역학적으로 아무 문제점도 없었다.
R-11엔진을 장비한 후퇴익기인 Ye-2A와 삼각익기인 Ye-5는 1956년 5월과 6월에 각각 첫 비행을 했으며 비행시험결과 Ye-5가 내부연료탑재량이 많아 양산기본형으로 선택됐다.
최초의 양산전시작기인 Ye-6은 비행시험중 엔진실속으로 상실했는데 안정판의 조종에 미비한 점이 발견돼 이 계통을 이중유압 장치로 재설계, 보완했다. 1957년, 이 항공기가 MiG-21로서 정식 채택되어 양산에 들어갔고, 1958년부터 소련 공군에 인도가 시작됐다.
최종 개량형인 MiG-21 BIS형의 제원은 다음과 같다.
일반 특성
성능
무장
일반 특성
성능
무장
MiG-21의 정확한 생산대수는 알려지지 않았다. 서방측 전투기 중 가장 많이 생산된 기종은 F-4 팬텀으로 약 5,000여 대가 생산되었는데, 그보다 많은 것은 분명하다. 소련에서 생산된 것만 약 6,500 ~ 7,000대이며, 인도의 힌두스탄 항공사에서 약 400대, 중국의 지안에서 약 400대, 체코에서 200대 정도가 생산된 것으로 추정된다. 결과적으로 총생산대수는 7500~8000대라는 추정인데 약 1만대에 달한다는 추측도 있다.
MiG-21과 J-7 등 MiG-21의 파생형들을 운용하고 있는 국가들은 다음과 같다. 다음 목록에서 J-7(f-7)은 중화인민공화국이 MiG-21을 바탕으로 독자 개량한 전투기다.
MiG-21은 개발 이후 여러 전쟁에서 실전에 참가했다.
인도와 파키스탄은 모두 MiG-21을 운용하고 있었다. 파키스탄의 MiG-21은 중화인민공화국에서 독자적으로 Mig-21을 개량한 청두 J-7의 개량형 중 하나인 J-7MP를 운용했다. 인도공군은 운용중인 Mig-21 bis와 M/MF 128대를 Mig-21-93 바이슨으로 개량해 2015년까지 운용할 예정이다.
1960년대와 1970년대에 걸쳐 이집트, 이라크, 시리아의 MiG-21이 이스라엘과의 중동 전쟁에서 투입되었다. 1960년대에는 이스라엘 공군의 F-4 팬텀과 A-4 스카이호크와 싸웠으며, 1980년대에는 F-15 이글이나 F-16 파이팅팰콘과 싸웠다. 1960년대에 중동 국가에 MiG-21이 대량 공급되었지만, 3차 중동 전쟁에서는 이스라엘 공군의 선제 공격으로 지상에서 파괴되어 실제 전투는 치러보지 못했다. 하지만, 이후에도 상당수의 MiG-21이 중동 국가에 보급되었다.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당시 초기 단계에서 투입되기도 했다.
1965년말 MiG-21PF형이 북베트남 공군에 제공되었다. 임무는 비교적 좁은 지역에서 방공작전이었고, 소련에서 공급된 레이다와 지대공유도탄, 그리고 관제시스템이 통합 운용되었다. 북베트남 공군은 미국 공군 및 미국 해군의 폭격기나 전투기들이 접근하면 긴급 출격하여 지상 레이다 관제소의 정확한 유도하에 적기에 대한 요격 임무를 수행했다. 분명히 MiG-21은 초기의 F-4에 비해 근접공중전에서 우월했으나, 시야와 기동성에 제한이 있어 전쟁기간 중 시종 수세에 몰렸다. 하지만 미국은 MiG-21과 격투전에 상당히 고생한 끝에 전투기 조종사들의 근접격투전 능력(소위 "독파이트, dog fight") 배양을 위해 탑건(Top Gun)제도를 시행하게 되었다.
유고슬라비아는 1962년 소련에서 MiG-21을 구입했다.당시 유고슬라비아가 소련으로부터 구입한 MiG-21 전투기는 MIG-21F-13형이었으나 이후 MiG-21PFM형,M형,MF형,BiS형등 다양한 형태의 MiG-21 전투기들을 소련으로부터 대량 구입했고, 1970,80년대 당시 유고슬라비아 공군이 운용하던 MiG-21 전투기의 댓수는 100대를 넘을 정도였다.그러나 1991년 유고슬라비아 연방에 속해있던 슬로베니아 공화국과 크로아티아 공화국이 연방에서 탈퇴,분리 독립을 선포하면서 유고슬라비아 연방은 여러개의 나라들로 쪼개져 분열,붕괴되기 시작했고 이에 유고슬라비아 정부가 연방에서 탈퇴한 두 공화국들을 상대로 군사적 침공을 감행하면서 이로 인해 유고슬라비아는 사실상 전쟁 상태에 돌입했는데 전쟁 과정에서 유고슬라비아 공군의 MiG-21 전투기들이 실전에 투입되어 크로아티아와 슬로베니아로 침공하는 유고슬라비아 육군을 지원하는 역할을 담당했다.그러나 전쟁 와중에 크로아티아도 유고슬라비아 공군에서 탈출하여 크로아티아측으로 귀순한 크로아티아계 출신 조종사들이 몰고 온 MiG-21 기체 3대를 확보하고 옛 소련에서 분리 독립되어 나온 우크라이나로부터 MiG-21 25대를 비밀리에 밀수도입하여 MiG-21을 공군 전투기로 운용했다.이후 유고슬라비아 공군의 MiG-21은 크로아티아,보스니아,코소보등 계속되는 구 유고 지역의 전쟁으로 파괴되거나 손실되어 그 수가 줄었고 유고슬라비아 전쟁 이후 남아있던 유고슬라비아 공군의 MiG-21 기체들은 유고슬라비아 연방에서 분리독립되어 나온 세르비아 공화국에 승계되어 현재 세르비아 공군에서 운용 중이다.
1999년 7월 북한은 카자흐스탄에서 미그21bis 40대를 부품으로 수입해 조립했다.[3] 카자흐스탄 외무장관은 38대를 정부승인 없이 부품으로 밀수했으며, 미그기 반환을 북한에 요구했으나, 북한은 수입한 사실 자체를 부인했다.[4]
한국 김대중 정부는 카자흐스탄에 항의하였으며, 미국도 우려를 표시했다. 이 밀매사건에 연루된 무크타르 알틴바예프 국방장관, 누르타이 아비카예프 국가안보위원회(KGB) 위원장이 해고되었으며, 기업인 알렉산더 페트렌코가 기소되었다.[5] 그러나, 무크타르 알틴바예프 국방장관은 무죄판결을 받고 다시 국방장관이 되었고, 기업인은 5년형을 받았으나 사면되었다. 무크타르 알틴바예프 국방장관은 다시 임명된 후, 900대의 전투기 중 600대를 중고로 수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6]
한국 김대중 정부의 정보당국은 대당 20만달러라는 헐값에 구입한 미그 21 전투기는 F-15K 전투기의 1/500 가격에 불과한 것으로 새로운 위협으로 보기 어렵다고 보았다.[7] 반면에 야당인 한나라당은 김대중 정부와 현대그룹이 제공한 돈으로 미그기를 산 것이라며 크게 항의했다.
2000년 7월 19일 러시아 일간신문 브레먀 MN은 북한이 수입한 미그기가 사실상 비행능력을 상실한 것에 불과하다고 평가했다.[8]
2013년 7월 북한은 쿠바에서 미그21bis 2대와 엔진 15개를 수입하려다 적발되었다. 쿠바 외교부는 수출이 아니라 쿠바 전투기이며 수리를 위해 북한에 보내려던 것이라고 변명하였다. 미그21bis는 1972년 이후에 생산된 것으로서, 미그21 시리즈 중에서 가장 대형인 Tumanskiy R25-300 터보젯 엔진을 장착했다.
인도는 1980년부터 1987년까지 미그21bis를 라이센스 생산하였으며, 2000년을 전후해 미그21bison으로 개량하였다. 인도미국 연합공군훈련에서 미그21bison은 F-15와 F-16에 대적하여 상당한 성능을 보였다. 러시아는 미그21bison이 F-16 초기형의 성능을 가진다고 주장한다. 미그21bison은 파조트론사의 코표 레이다를 장착하여 8개 목표물 동시추적과 그 중 2개 목표물을 동시공격할 수 있으며, 사거리가 100 km가 넘는 러시아판 암람 미사일인 빔펠 R-77을 발사할 수 있다.
한편, 2013년 기준으로 미그21 최신 업그레이드 버전은 미그-21 bison 바로 다음에 나온 미그-21-97이다. 1997년에 처음 개조되었으며, 미그21bis 보다 더 고출력인 미그29의 RD-33 엔진을 장착했다. 러시아는 공중전에서 F-16을 4대 1로 이긴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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