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조도일(馬祖導一, 709~788)은 8세기 중국 당나라 승려로, 조사선의 개조(시조)이다.
간략 정보 마조도일, 출생 ...
마조도일
미국 보스턴 미술관에 소장된 시모무라 간잔(下村觀山, 1873-1930)이 그린 마조도일의 초상
출생
709년 사천성(四川省) 성도(成都) 한주(漢州) 시방현(什方縣)
입적
788년 강서성 정안현 보봉향 석문산 보봉사(寶峰寺)
속명
마씨(馬氏)
칭호
8대 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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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종선에서 6대조사 조계혜능, 7대조사 남악회양에 이어, 위앙종과 임제종에서 선종 제8대 조사로 섬겼다.(참고로 운문종, 법안종, 조동종에서 8대조사로 섬겼던 석두희천과는 같은 8대조사라는 이유로 당대에 비교를 많이 당했었다.)
스승인 남악회양의 상수제자(상좌)였으며, 또한 기라성 같은 수많은 제자들을 두었다. 주요 직계 제자(아들 뻘)로는 위앙종과 임제종의 9대 조사인 백장회해, 남전보원, 서당지장, 단하천연, 대주혜해 등이 있다.
또한 직계제자의 제자들인 손자 뻘이상으로는 임제종 10대 조사인 황벽희운, 임제종 11대 조사인 임제의현[1], 화두로 유명한 조주종심, 위앙종을 창시한 위산영우 등이 있다.
남북국시대 신라말에서 시작되어 고려초에 완성된 9산선문 중에 7개가 마조도일의 제자들에게서 법을 이어받은 선사들이 형성한 것이다.[2]
마조도일은 조사선의 개조(시조)이다. 어떠한 물음에 엉뚱한 대답(선문답)을 한다던가, 소리를 지르던가, 다짜고짜 뺨을 때리던가 하던 것은 마조도일 이전엔 없던 일이다.[3]
마전작경(磨塼作鏡): 벽돌을 갈아 거울을 만들다
마조도일이 남악 전법원에서 좌선을 하며 수행을 하고 있었다. 손님을 만나지도 않았고, 스승인 남악회양이 와도 수행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남악회양은 마조도일을 기특히 여겨 가르침을 주기로 결심했다.[4]
스승인 남악회양은 마조도일의 암자 앞에서 벽돌을 갈기 시작했다. 마조도일이 나와 남악회양에게 왜 벽돌을 갈고 계시냐고 물었다. 그러자 남악회양을 거울을 만들려고 한다고 했다.[5]
그러자 마조도일이 어이없어 하며, 벽돌을 아무리 간다 한들 거울이 되겠습니까라고 했다. 이때 남악회양이 마조도일을 쳐다보며, 벽돌로 거울을 만들 수 없다면 좌선만으로 성불할 수 없다고 했다. 마조도일은 그럼 어떻게 해야 성불할 수 있냐고 물었다.[6]
그러자 남악회양은 소달구지가 움직이지 않으면, 채찍질을 달구지에 해야 하는지, 소에게 해야 하는지를 물었다. 마조도일이 대답을 못하자, 남악회양은 좌선만 하는 것은 부처의 흉내만 내는 것이니 부처를 죽이는 것이라고 하였다. 마조도일은 크게 깨우쳤다.[7]
즉, 좌선만 하는 것은 채찍질을 달구지(몸)에게만 하는 것이며, 깨달음을 위해서는 소(마음)를 채찍질 해야된다는 말이다. 운전수가 운전을 하지 않으면 차는 움직이지 않기 때문이다.[8]
일전일군(一箭一群): 화살 하나로 사슴을 떼거리로 잡다
마조도일에게는 석공혜장이라는 사냥꾼 출신 제자가 있었다. 마조도일이 석공혜장을 처음 만났을 때의 이야기이다. 사냥꾼이었던 석공혜장이 사슴 떼를 쫓던 중 마조도일을 발견하고는 사슴을 보았냐고 물었다.[9]
그러자 마조도일은 석공혜장에게 무엇을 하는 사람이냐고 물었고, 석공혜장을 사냥꾼이라고 말했다. 마조도일은 그럼 화살을 잘 쏘겠다고 하며, 화살 하나로 사슴 몇 마리를 잡냐고 물었다. 석공혜장이 한 마리를 잡는다고 하니, 마조도일은 화살을 쏠 줄 몰라서 그렇다며 자신은 화살 하나로 사슴을 떼거리로 잡는다고 했다.[10]
그러자 석공혜장이 사슴도 생명이 있는데, 스님은 어떻게 사슴을 떼거리로 죽이냐고 따졌다. 이때, 마조도일은 석공혜장에게 이런 것을 잘 알면서, 왜 자신은 잡지 못하냐고 물었다.[11] 이에 석공혜장이 출가를 하여, 마조도일의 제자가 되었다.
<열반경>의 대가인 분주무업을 선종으로 이끌다
분주무업(汾州無業, 782∼823)은 12살에 출가하고 20살에 구족계를 받은 후에, 일찍이 경학을 배워서 뛰어난 학자로 인정받고 있었다.[12]
그런 그가 마조도일을 찾아가 '즉심시불'을 잘 모르겠다고 하였다. 마조도일은 잘 모르겠다는 그것말고는 아무것도 없다고 말했다. 분주무업을 다시 달마대사가 중국으로 와서 전한 법은 무엇이냐고 다시 물었다. 마조도일은 다른 일은 신경쓰지 말고, 다음에 다시 오라고 했다.[13]
분주무업을 나가려는 순간, 마조도일이 분주무업을 크게 불렀다. 분주무업이 고개를 돌리자, 마조도일은 이것이 무엇인가라고 물었고, 분주무업을 깨닫고 큰절을 올렸다.[14]
강백 양좌주를 깨닫게 하다
양좌주는 불교학에 통달한 강사 승려였다. 강백은 강사를 높여 부르는 말이다. 어느 날, 마조도일이 양좌주를 만났다.
마조도일이 양좌주에게 경론에 해박하다는 데, 무엇을 가지고 강의하냐고 물었다. 양좌주는 마음을 가지고 강의한다고 했다. 그러자 마조도일은 마음은 광대이고, 의식은 광대에게 장단을 맞춰주는 사람(악공)인데, 어떻게 마음으로 강의할 수 있냐고 물었다.[15]
양좌주는 마조도일의 말에 마음이 상해서, 마음으로 강의하지 못한다면 허공으로 하냐며 소리쳤다. 마조도일은 허공은 할 수 있다며 선문답을 했다. 양좌주는 더 이상 대화를 하기 싫어 나가려고 했다. 마조도일이 큰소리로 양좌주를 불렀고, 양좌주가 뒤를 돌아보는 순간 크게 깨닫고 마조도일에게 큰 절을 올렸다.[16]
양좌주는 절에 돌아가서, 자신이 가르치는 승려들을 모아놓고 말했다. 자신의 불교학은 누구도 따를 수 없다고 생각했지만, 마조도일과 문답을 하니 평생 공부한 것이 얼음처럼 녹아버렸다고 했다. 이후 양좌주는 서산으로 갔고, 소식이 끊겨버렸다.[17]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아홉 산문 가운데 일곱 산문이 마조도일의 법손이다. 마조계열까지 합치면 여덟 산문이다.[18]
김, 종찬 (2012년 7월 26일). “한국선은 마조선(馬祖禪) 영향아래 형성”. 《불교신문》. 불교신문. 2023년 9월 18일에 확인함. 아울러 달마의 일심법에서 마조를 넘어선 사상적 계승을 추적해 나말여초의 구산선문과의 관계를 분석한 결과, “7개의 산문이 마조 제자들에게서 법을 받아온 것이다. 즉 한국선의 형성은 마조선의 절대적 영향 하에 형성됐다”면서
강, 호진 (2019년 7월 11일). “처음 읽는 선불교의 역사 - 마조도일 - 새로운 중국 부처의 탄생”. 《불교저널》. 불교저널. 2023년 9월 21일에 확인함. 나는 위에서 남종선의 실질적 종조가 마조라고 말했다. 달마나 육조혜능을 젖혀둔 것이 의아하겠지만, 선어록이나 선사의 일반적 이미지를 떠올려 보면 이해가 될 것이다. 불법의 정수를 묻는 제자에게 엉뚱한 말로 받아치는 선문답이나 돌연 소리를 지르거나 뺨을 후려갈기는 등의 기행(奇行), 그리고 불자(拂子)를 조용히 들어 올리는 모습은 마조 이전에는 없던 일이었다.
불교신문, 불교신문 (1998년 4월 28일). “선사들의 선문답-회양대사와 마조”. 《불교신문》. 불교신문. 2023년 9월 18일에 확인함. 훗날 그의 상수제자가 된 馬祖 道一을 깨친 일화는 유명하다. 마조는당시 남악 전법원에서 홀로 정진하고 있었다. 좌선에 열중하느라 마조는 어떠한 내방객도 맞이하지 않았다. 회양선사가 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회양대사는 그가 남다른 정진력을 가지고 있음을 알고 가르침을 주기로 했다.
불교신문, 불교신문 (1998년 4월 28일). “선사들의 선문답-회양대사와 마조”. 《불교신문》. 불교신문. 2023년 9월 18일에 확인함. 마조가 어이없어 하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벽돌을 아무리 간다고 거울이 될 수 있습니까."회양이 마조를 힐끗 쳐다보며 응수했다."돌을 갈아 거울을 만들 수없다면 좌선만을 해서는 성불할 수가 없지.""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불교신문, 불교신문 (1998년 4월 28일). “선사들의 선문답-회양대사와 마조”. 《불교신문》. 불교신문. 2023년 9월 18일에 확인함. ""소달구지가 움직이지 않으면 달구지에 채찍질을 해야 하느냐, 소에 채찍질을 해야 하느냐."이에 마조가 아무 말도 못하고 서있자 회양대사는 준엄하게 꾸짖었다."좌선한다면서 가만히 앉아있는 것은 부처를 흉내내는 것이니 그것은 부처를 죽이는 일이다. 또 선은 앉거나 눕거나 하는데에 있지 않다. 법이란 영원한 것이어서 형태에 얽매이는 것이 아니다." 마조는 여기에서 크게 깨달음을 얻고 회양선사를 10여년간 모시다가 강서로떠나 방장의 자리에 올라 선법을 거양했다.
무비스님, 무비스님 (2009년 11월 25일). ““수레를 때릴 건가? 소를 때릴 건가?””. 《불교신문》. 불교신문. 2023년 9월 18일에 확인함. 소를 때려야 하는가? 수레를 때려야 하는가? 뜻은 매우 평범하다. 그러나 대단히 유명한 말씀이다. 평범한 진리가 위대하다는 뜻이다. 차가 멈췄을 때 차를 매질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당연히 운전수에게 차를 몰기를 부탁한다.
정운 스님, 정운 스님 (2023년 5월 1일). “16. 마조의 문하- ①독특한 행적을 남긴 제자들”. 《법보신문》. 법보신문. 2023년 9월 18일에 확인함. 다음, 마조와 석공혜장과의 기연을 보자. 공안에 일전일군(一箭一群)이 있는데, 이는 혜장과 마조의 법거량이다. 혜장은 사냥꾼 출신인데, 그는 사냥하는 와중에 마조를 만났다. 석공이 사슴 떼를 쫓고 있는 중, 마침 마조가 그 앞을 지났다. “혹시 사슴이 지나가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까?”
정운 스님, 정운 스님 (2023년 5월 1일). “16. 마조의 문하- ①독특한 행적을 남긴 제자들”. 《법보신문》. 법보신문. 2023년 9월 18일에 확인함. “그대는 무얼 하는 사람입니까?”“사냥꾼입니다.” “그대가 사냥꾼이라면, 활을 잘 쏘겠군.” “예, 당연히 잘 쏩니다.”“그렇다면 화살 한 대로 몇 마리나 잡는가?”“화살 하나로 한 마리를 잡습니다.”“화살 하나로 한 마리라면, 화살을 쏠 줄 모르는군.”“스님께서 화살을 쏠 줄 아십니까?”“그럼, 잘 알지.”“그러면 화상께서는 화살 하나로 몇 마리를 쏩니까?”“화살 하나로 떼거리를 잡는다.”
정운 스님, 정운 스님 (2023년 5월 1일). “16. 마조의 문하- ①독특한 행적을 남긴 제자들”. 《법보신문》. 법보신문. 2023년 9월 18일에 확인함. “동물도 생명이 있는 존재이거늘 어찌하여 스님께서는 떼거리로 죽이십니까?”“그대가 그런 것은 잘 알면서 왜 자신은 잡지 못하는가?”
정운스님, 정운스님 (2023년 5월 8일). “17. 마조의 문하-②사교입선한 제자들”. 《법보신문》. 법보신문. 2023년 9월 21일에 확인함. 분주무업(汾州無業, 782∼823)은 어린 시절부터 개원사 지충 선사에게 ‘금강경’ ‘유마경’ ‘화엄경’ ‘법화경’ 등 경전을 배웠고, 12살에 출가했다. 20세 때 유율사에게 구족계를 받고 사분율을 배웠으며, 특히 ‘열반경’에 뛰어난 대가가 되었다. 그는 일찍이 경학을 배운데다 뛰어난 학자로서 인정을 받고 있는 터에 마조를 만났다.
정운스님, 정운스님 (2023년 5월 8일). “17. 마조의 문하-②사교입선한 제자들”. 《법보신문》. 법보신문. 2023년 9월 21일에 확인함. 무업이 무릎을 꿇고 마조에게 물었다. “삼승의 교학은 공부해 마쳤습니다. 선에서 즉심시불이라고 하는데, 저는 잘 알지 못하겠습니다.”/ “자네가 지금 알지 못한다고 하는 그 자체, 바로 그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네.” 무업이 물었다. “달마가 이 나라에 와서 비밀리에 전수한 심인(心印)이 무엇입니까?”/ “다른 일에 신경 쓰지 말게, 돌아갔다가 다음에 다시 오게!”
정운스님, 정운스님 (2023년 5월 8일). “17. 마조의 문하-②사교입선한 제자들”. 《법보신문》. 법보신문. 2023년 9월 21일에 확인함. 무업이 밖으로 막 나가려는 순간, 마조가 크게 불렀다. “여보게! 대덕(大德)!” 무업이 고개를 돌리자, 마조가 말했다. “여보게! 이것이 무엇인가?” 이때 무업이 크게 깨닫고 마조에게 큰절을 올렸다.
정운스님, 정운스님 (2023년 5월 8일). “17. 마조의 문하-②사교입선한 제자들”. 《법보신문》. 법보신문. 2023년 9월 21일에 확인함. 양좌주가 마조를 찾아오자, 선사가 먼저 물었다. “그대는 경론에 해박하다고 들었습니다.”/ “과찬의 말씀입니다”/ “그대는 무엇을 가지고 강의하십니까?”/ “마음으로 강의합니다.”/ “마음은 재주에 뛰어난 광대와 같고, 의식이란 광대놀음에 장단 맞추는 사람과 같거늘 어떻게 마음으로 경전을 강의할 수 있습니까?”
정운스님, 정운스님 (2023년 5월 8일). “17. 마조의 문하-②사교입선한 제자들”. 《법보신문》. 법보신문. 2023년 9월 21일에 확인함. 선사의 말씀에 비위가 상한 양좌주가 소리쳐 말했다. “마음으로 강의하지 못한다면, 그러면 허공이 한다는 말입니까?”/ “허공은 할 수 있지!” 양좌주는 마조와 대화하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생각하고 서둘러 나가려는 순간, 갑자기 마조가 그를 불렀다. “좌주!” 문득 돌아서는 순간에 양좌주가 크게 깨닫고, 마조에게 큰절을 올렸다.
정운스님, 정운스님 (2023년 5월 8일). “17. 마조의 문하-②사교입선한 제자들”. 《법보신문》. 법보신문. 2023년 9월 21일에 확인함. 좌주는 곧 사찰로 돌아가 공부하는 승려들을 모아놓고 말했다. “지금까지 나의 불교학은 그 어느 누가 따를 자가 없다고 자부해 왔습니다. 그런데 오늘 마조와 문답을 하고 나서 평생 공부한 것이 얼음 녹듯 했습니다.” 이렇게 양좌주는 말을 마치고 곧 서산으로 들어가 소식이 끊겼다고 한다.
정운스님, 정운스님 (2019년 6월 13일). “[선의 르네상스 선지식] 10. 한국 禪의 원류, 서당지장”. 《현대불교》. 현대불교신문사. 2023년 9월 24일에 확인함. 하지만 선이 크게 보급되기 시작한 시점은 신라 말 고려 초에 해당한다. 이때 아홉 산에 산문(山門)이 개산되었다고 하여 ‘구산선문’이라고 한다. 그런데 아홉 산문 가운데 일곱 산문이 마조 도일(馬祖道一, 709~788)의 법손이다. 즉, 마조의 수제자 가운데 서당 지장(西堂智藏, 735~814)의 법을 받은 제자는 도의·홍척·혜철이다. 도의(道義)국사가 개산한 산문은 가지산문으로 현 조계종의 종조에 해당한다. 홍척(洪陟)은 실상산문(남원 실상사), 혜철(惠哲)은 동리산문(곡성 태안사)이다. 또한 마조의 제자인 염관 제안의 법을 받은 범일은 사굴산문(강원도 강릉), 마곡 보철의 법을 받은 무염은 성주산문(충남 보령), 남전 보원의 법을 받은 도윤은 사자산문(강원도 사자산 법흥사), 장경 회휘의 법을 받은 현욱은 봉림산문(경남 창원)을 개산했다. 또한 마조계 가운데 쌍계산문을 개산한 진감 혜소(774~850)도 마조의 제자인 창주 신감(滄州神鑑)의 법을 받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