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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포시(金浦市)는 대한민국 북서부이자 경기도 북서부에 위치하고 있는 시이다. 한강의 퇴적으로 충적토가 쌓여 농경에 적합한 김포평야를 이룬다.
동쪽으로 한강을 경계로 고양시, 파주시, 서쪽으로 인천광역시 강화군, 남쪽으로 서울특별시 강서구, 인천광역시 계양구, 서구와 인접하고, 북쪽으로는 한강을 사이에 두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개성시 개풍구역과 경계를 이룬다. 시청은 사우동에 있고, 행정 구역은 3읍 3면 8행정동이다.
김포의 지명유래는 형제가 길을 가다가 황금 두덩어리를 얻어서 나누어 가지고 배를 타고 강을 건넜다. 동생이 갑자기 형을 시기하는 마음이 일어나자 황금이 좋은 물건이 아니라 판단하여 강에 던졌다. 형이 그 이유를 묻고 자신 또한 황금을 강에 던졌다는 이야기다. 이에 따라 투금포 즉, 금을 던진 포구라 한 데서 비롯돼 김포라 명명됐다는 이야기다. 또한 김포의 옛이름 검포의 검은 단군왕검의 검과 같은 의미의 고대어로, 제정일치사회에서 신군이 제사를 지내는 신성한 땅이라는 의미를 지닌다.[8] 삼국사기 지리지에 김포 지명이 첫 등장했다. 김포현은 본래 고구려 검포현인데 경덕왕이 이름을 고쳤으며 지금도 이를 그대로 쓰고 있다. 흔히 사용하지 않는 어려운 글자인 검보다 일반적이고 좋은 의미의 한자인 금이 쓰이면서 지금의 김포가 되었다.[9] 이는 경기도 정명 1,000년 보다 앞서며 전국에서는 두 번째로 오래된 지명이다.[10]
김포시는 경기도의 북서쪽 에 있는 한강 하구에 위치하고 있으며, 김포시와 인천 서구 검단 일대를 김포반도라고 부른다. 문수산·가현산·장릉산 등의 낮은 산이 약간 있을 뿐인 준평원화한 지역으로서 한강에 의한 퇴적으로 이루어져 농경지로 가장 적합한 평야지대를 형성하고 있다. 이와 같이 소구릉군의 기복이 약간 있으나 넓은 평야를 이루고 있는 이곳을 김포평야라고 한다. 지질은 시생대의 화강편마암과 중생대 대동계(大同系)의 혈암·사암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김포시의 행정 구역은 3읍 3면 8행정동으로 구성되어 있다. 김포시의 면적은 276.65 km2이며, 인구는 2020년 5월 말 주민등록을 기준으로 44만7038 명, 17만9727 가구이다.[11] 시 전체인구 가운데 75.5%가 동 지역에 거주한다.[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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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구·세대는 2020년 5월 31일 기준
2019년 4월 김포시의 주민등록 인구는 429,752명이다. 신도시 지역인 장기본동, 장기동, 구래동, 마산동, 운양동과 풍무동을 중심으로 인구가 계속 늘고 있다.
2010년 기준으로 0~14세 인구는 19%, 65세 이상 인구는 11%이다. 생산연령층인 15~64세 인구는 70%로 전국평균 72.8%보다 비율이 낮고, 유소년인구부양비는 27%로 전국 평균인 22.8%보다 높고, 노년인구부양비는 13%로 전국 평균인 14.5%보다 낮다. 여자 인구 100명당 남자 인구를 나타내는 성비는 103로 남자가 다소 많다.[12]
김포시의 인구추이[13]
김포시의 2012년 지역 내 총생산은 16조 984억 원으로 경기도 지역 내 총생산의 2.2%를 차지하고 있다. 이중 농림어업(1차 산업)은 2,485억 원으로 비중이 낮고 광업 및 제조업(2차 산업)은 10조 1,630억 원으로 63.1%의 비중을 차지하고 상업 및 서비스업(3차 산업)은 5조 6,869억 원으로 35.3%의 비중을 차지한다. 2차 산업 부분에선 김포한강 신도시가 세워짐에 따라 도소매업(5.4%)과 건설업(4.7%), 부동산업 및 임대업(3.7%)과 전기, 가스, 증기 및 수도사업(3.0%)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14]
2014년 김포시 산업의 총종사자 수는 129,440명으로 경기도 총종사자 수의 2.9%를 차지하고 있다. 이중 농림어업(1차 산업)은 93명으로 비중이 낮고 광업 및 제조업(2차 산업)은 62,946명으로 48.6%의 비중으로 차지하고 상업 및 서비스업(3차 산업)은 66,401명으로 51.3%의 비중을 차지한다. 2차 산업은 경기도 전체의 비중(27.1%)보다 높고 3차 산업은 경기도 전체 비중(72.9%)보다 낮다. 3차 산업 부문에서는 도소매업(12.1%), 숙박 및 음식점업(7.7%)과 교육서비스업(6.2%), 보건업 및 사회복지서비스업(5.2%)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15]
김포시의 2010년 기준 상주인구는 215,050명이고 주간인구는 227,159명으로 주간인구지수가 106으로 높다. 통근으로 인한 유입인구는 45,757명, 유출인구는 31,213명이고, 통학으로 인한 유입인구는 2,687명, 유출인구는 5,122명으로 전체적으로 유입인구가 12,109명 더 많은데, 이는 산업시설이 많이 이전해온 수도권 외곽지역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16]
월곶면 성동리에 있는 조선시대 산성이다. 1694년(숙종 20년)에 축성된 이 산성은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과 격전을 벌였던 곳이다. 그 주위에는 김포의 금강이라 불리는 문수산(376m)이 위치해 있다.
반정을 통해 광해군을 몰아내고 즉위한 조선 인조의 아버지인 원종과 그의 비 인헌왕후 구씨의 무덤이 있는 곳이다. 사적 제202호로 지정되어 있고, 소재지는 풍무동 산 141-1이다. 장릉산은 원래 북성산으로 불리다가 1627년 인조 5년 8월 27일 부친 정원군의 묘를 양주에서 이장하여 온 후부터 장릉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성리학자이며 임진왜란 때 의병장이였던 조헌선생을 모시기 위해 지어진 서원이다. 감정동 소재.
대곶면 신안리에 소재한 덕포진은 서해에서 강화만을 거쳐 서울로 진입하는 입구인 손돌항에 세워진 요새로 임진왜란 이후 선조때 만들어졌다.(사적 제292호) 조선 숙종 때까지는 월곶진이 주진이었으나, 그 후 덕포진이 주진으로 승격했다. 덕포진 인근에는 덕포진박물관이 있어 볼거리가 많다.[17]
대곶면 대명리에 소재한 대명항은 김포 유일의 지방 어항이다. 서울에서 가까운 만큼 관광객이 많이 찾는다. 대명항 바로 옆에는 김포함상공원이 있어 볼거리가 풍부하다.
하성면 가금리에 위치해 있다. 제2해병사단에서 관리 하는 '애기봉(愛妓峯)'의 어원은 병자호란 때 끌려간 평양감사를 산봉우리 꼭대기에서 그리다 죽은 기생 애기의 한이 서려있다고 해서 붙여졌다. 애기봉은 북녘땅이 한눈에 보이기 때문에 많은 관광객들이 찾고 있다.
월곶면 고막리에 있는 공원이다. 1998년에 16개의 조각 작품 설치와 함께 문을 열었고, 2001년에 추가로 14개의 조각 작품이 설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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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개 고등학교) |
올림픽대로의 건설로 서울로의 접근이 용이하며, 수도권제1순환고속도로와 인천국제공항고속도로, 수도권제2순환고속도로, 국도 제39호선, 제48호선이 김포시를 통과하며, 1970년에 김포와 강화를 잇는 강화대교가 개통되어 김포와 강화군을 오가는 데 더욱 편리하게 되었다. 김포 한강신도시와 개화 나들목을 연결하는 김포한강로를 비롯해 도로교통과 버스체계가 잘 갖추어져 있는 편이다. 인천국제공항고속도로를 통해 인천국제공항으로 바로 갈 수 있으며, 수도권제2순환고속도로를 통해 인천광역시 중구, 서구, 송도 지역 등으로 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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