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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환관 (1421–1505) 위키백과, 무료 백과사전
김처선(金處善, 1421년 ~ 1505년)은 세종부터 연산군까지 일곱 왕을 섬긴 최고위 내시인 판내시부사 겸 상선을 역임한 조선의 환관이다. 본관은 전의(全儀, 지금의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이다.
세종부터 연산군까지 7명의 왕을 보필했다. 몇 차례 관직을 삭탈당하고 유배되기도 했으나 곧 복직되었다. 1460년(세조 6) 원종공신(原從功臣) 3등에 추록되었으며, 성종 때에는 대비의 병을 치료하는 데 공이 있다고 하여 정2품인 자헌대부(資憲大夫)가 되었다. 1505년(연산군 11)에 연산군이 궁중에서 자신이 창안한 처용희(處容戱)를 베풀고 음란한 거동을 벌이자 "이 늙은 신이 네 임금을 섬겼고, 경서와 사서를 대강 통하지만 고금에 상감과 같은 짓을 하는 이는 없었다"고 직간하다가, 연산군에게 직접 다리와 혀를 잘리고 죽임을 당했다. 죽은 뒤 부모의 묘가 파헤쳐지고 처(處)와 선(善) 두 글자의 사용이 엄금되어 모든 관리와 백성들이 그 이름을 쓸 수 없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전국에 있던 "김처선"은 개명을 명령받았고, 처서 (處暑)는 '조서'(徂暑)로, 처용무 (處容舞)는 풍두무 (豊頭舞)로 이름이 바뀌었다. 또한 문서에서도 그의 이름과 같은 글자를 쓰지 못하게 하고, 본관인 전의도 없어지는 등 수난을 당했다. 또한 그의 양아들 이공신도 죽음을 당했으며 부인 서씨와 며느리를 노비로 삼았다. 연산군이 폐위된 뒤 1512년(중종 7) 김처선의 행적을 《속삼강행실》에 수록하려 하였으나 환관의 힘이 세질 것을 두려워했던 중종은 마음 속에만 묻어두고 이를 거절하였다. 그러나 1751년(영조 27) 2월 3일 나라에서 충신의 정문이 내려 그의 공을 인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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