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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타 다카아키(일본어: 梶田 隆章,[9] 1959년 3월 9일[5] ~ )는 일본의 물리학자, 천문학자이다.
가지타 다카아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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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어식 한자 표기 | 梶田 隆章 |
가나 표기 | かじた たかあき |
국립국어원 표준 표기 | 가지타 다카아키 |
통용식 표기 | 카지타 타카아키 |
로마자 | Takaaki Kajita |
도쿄 대학 탁월교수, 도쿄 대학 특별영예교수,[10] 도쿄 대학 우주선연구소장·교수 겸 동 연구소 부속 우주 중성미자 관측 정보 융합 센터장,[11] 우주 물리 수학 연구소 주임연구원, 도쿄 이과대학 이공학부 물리학과 비상근 강사이다. 전문은 중성미자 연구이며 학위는 이학박사이다.[9] 2015년에 중성미자 진동 현상을 발견한 공로로 아서 B. 맥도널드와 함께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12][7] 2017년부터 아사히상 선정위원을 맡고 있으며 2020년부터 2023년까지 일본 학술 회의 회장(제25기)을 맡았다.[13] 사이타마현 히가시마쓰야마시[1] 출신이다.
1959년 3월 9일, 사이타마현 히가시마쓰야마시의 농가에서 태어났다. 유년 시절부터 특히 자연에 흥미가 있던 것은 아니었지만 독서를 좋아했고, 부모에게 ‘오차노미즈 박사(お茶の水博士 →차의 물박사)가 되고 싶다’라고 말한 적도 있었다.[14]
암기보다 생각하는 공부를 좋아하고, 고등학교 수업에서는 물리, 생물, 세계사, 일본사 등에 흥미를 가졌으며 특히 지학을 좋아했다. 서툰 과목은 고문과 한문이었다. 중학교 시절의 신장은 150cm 정도였지만 고등학교에 들어와서는 180cm를 넘을 정도로 성장했다.[15][16]
사이타마 대학에서 물리학을 전공하여 소립자에 대한 흥미를 갖게 됐다. 연구자가 될 자신은 없어서 공부는 그다지 하진 않았지만 대학 3학년 때 대학원에 진학하는 것을 결심했다.[17][18] 성적은 초등학교와 중학교 시절에 벼락치기 공부할 정도의 최상위 수준이었지만 사이타마현내에서 진학이 잘 되는 학교인 고등학교에서는 중하위권 정도였으며 대학 시절에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계속해왔던 궁도부 활동에만 열중하면서 대학원 입시는 전혀 풀리지 않았다고 한다. 부인과는 사이타마 대학 궁도부에서 3학년 때 모두 부장을 맡았고[19] 대학원에서는 연구에만 몰두하게 됐다.[20][21]
사이타마 대학 이학부를 졸업하고 도쿄 대학 대학원 이학계 연구과에 진학했다. 고시바 마사토시 연구실에 소속돼[22] 이때부터 고시바, 도쓰카 요지 밑에서 우주선 연구에 종사했다.[23] 특히 소립자에 관심이 많았던 것은 아니었지만 ‘왠지 모르게 흥미가 있었다’라는 이유로 연구실을 택했다고 한다.[24]
중성미자 연구를 시작한 것은 도쿄 대학 이학부 부속 소립자 물리 국제 연구 센터 조수가 된 직후인 1986년이다. 중성미자의 관측 수가 이론적 예측과 비교하여 크게 부족하다는 것을 느끼면서 그것이 중성미자 진동에 의한 것이라고 추측했다. 중성미자 진동이란 중성미자가 도중에 다른 종류의 중성미자로 변화하는 현상으로, 중성미자에 질량이 있다는 것을 증명한 것이다. 이것을 확실하게 증명하기 위해서는 방대한 관측 데이터가 필요하므로 기후현 가미오카정(현: 히다시)에 있는 중성미자 관측 장치인 가미오칸데를 이용해서 관측을 시작했다. 전환점이 된 것은 가미오칸데보다 용적이 15배나 큰 슈퍼 가미오칸데가 1996년에 완성되면서 관측 데이터가 비약적으로 증가한 것이었다.
1996년부터 슈퍼 가미오칸데로 대기 중성미자를 관측하여 중성미자가 질량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1998년에 중성미자 물리학·우주물리학 국제 회의에서 발표됐다. 이듬해 1999년에는 제45회 니시나 기념상을 수상했는데 이러한 성과는 모두 연구진에 의한 연구 덕분이라고 말했다.[25][26][27] 2015년에는 아서 B. 맥도널드와 함께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는데[7] 노벨 물리학상 수상 이유는 ‘중성미자가 질량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중성미자 진동의 발견’[7]이다. 같은 해 노벨 생리학·의학상을 수상한 오무라 사토시와 함께 문화훈장을 받았다.[28]
2015년에 가지타의 노벨 물리학상 수상 이유가 된 ‘중성미자가 질량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중성미자 진동의 발견’은 가지타의 선배이자 스승이기도 한 도쓰카 요지를 중심으로 이뤄진 연구 덕분이며, 가지타는 도쓰카의 후계자로서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하는 모양새가 됐지만 도쓰카 본인은 2008년에 암으로 사망했기 때문에 만약 도쓰카가 살아있었다면 가지타와의 공동 수상을 했을지도 모른다며 아쉬워 하는 이도 있었다. 가지타 자신도 노벨 물리학상 수상 발표 당시의 기자회견에서 ‘도쓰카씨가 살아있었다면 공동 수상을 했을 거라고 생각하느냐’라는 질문에 ‘네, 그렇게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29]
자신에 대해 “성실하고 낙관적인 성격이기 때문에 연구를 계속 맡겨졌다”라고 말했다. 부인이나 동료 시오자와 마사토 교수, 공동 연구자인 나카야 쓰요시 교수 등에 의하면 냉정하고 감정을 드러내는 일이 거의 없으며, 온후한 성격에 화를 내는 것을 본 적이 없다고 한다. 지도 교관인 고시바 마사토시는 겸손하고 소극적이어서 학생 시절에는 토론이나 논의를 할 때 그다지 활발하게 발언하진 않았지만 실험에는 열심히 몰두했다고 말한다.
중학교 시절의 담임 교사에 의하면 스승의 말을 잘 듣는 솔직한 아이였지만, 온화하고 소극적인 성격이었기에 수업 중엔 적극적으로 발언한 적은 없었다고 한다. 취미는 없고 음주나 흡연도 하지 않은 편인데다 휴일은 도야마현 도야마시의 자택에서 잠을 자는 일이 많았다고 한다. 또한 텔레비전을 통해 뉴스를 시청한다고 했다.[15][17] 어린 시절에는 부모에게서 지도받을 정도로 독서를 좋아했는데 혼자 숨어서 책을 읽었다고 한다.[16]
후진 양성을 위해 도쿄 대학이나 도쿄 이과대학에서 교편을 잡는 것 외에도 모교인 사이타마 현립 가와고에 고등학교에서도 수업이나 물리부의 지도를 실시하고 있다.[19][2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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