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에이(康永) 3년(고코쿠 5년/1344년) 6월 17일조에는 「오늘 사효에노카미(左兵衛督) 다다요시 아손(直義朝臣)의 아들은 실은 쇼군의 아들이라 하며, 이제 막 학문을 배우기 시작하였다」(今日左兵衛督直義朝臣子息、実将軍子息也、学問始)라고 적은 기술이 있어 이 해에는 이미 다다후유가
오인해 적은 것도 밝혀졌다. 또, 무사시를 치켜세우기 위해 각색한 점도 많이 보인다. 《오륜서》에는 13세에 처음 아리마 기헤이(有馬喜兵衛)라는 자와 결투하여 승리하고, 16세에 다지마 국(但馬国)의 아키야마(秋山)라는 병법가(무예가)와 결투해 승리하는 등, 29세가 될
신스케와 반사이가 실종되자 그 누구보다도 걱정한다. 이름의 모델은 막말 시기의 금문의 변을 주도한 조슈 번의 기지마 마타베(일본어: 来島又兵衛)이다. 타케치 헨페이타(일본어: 武市変平太) 모델:다케치 한페이타 성우(일본): 챠후린(일본어: 茶風林) 키 178cm 체중 75kg
교상판석(教相判釈)의 약자로, 여러 경전의 우열을 비교검토하여 자신의 종지 건립의 정당성을 나타내는 것을 말한다. 「교기시국초」, 「현방법초」, 「남조병위칠랑전어서」 등에 설하고 있다. 「현방법초」에서 오의는 “행자, 불법을 넓히는 용심(用心)”이라고 하는 것처럼 불법홍통을 위해 유의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