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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1년 십자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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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1년 십자군은 제1차 십자군의 성공 이후 1100년과 1101년 사이에 조직된, 세 차례의 개별적으로 움직인 소규모 십자군이다. 이 십자군에 참여한 이들이 제1차 십자군 전쟁 중 복귀하던 때에 일어난 것이기에 비겁한 자들의 십자군이라고도 불린다.
간략 정보 날짜, 장소 ...
1101년 십자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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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군의 일부 | |||||||
![]() 기독교인들의 진로를 보여주는 아나톨리아반도 서부 지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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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전국 | |||||||
지휘관 | |||||||
밀라노의 안셀모 4세 † 블루아의 에티엔 † 부르군트의 스테판 부르고뉴의 외드 콩스타블 콘라드 루시용의 지라르 1세 툴루즈의 레몽 4세 지타스 느베르의 기욤 2세 아키텐의 기욤 9세 베르망두아의 위그 † 바이에른의 벨프 오스트리아의 이다 † |
킬리지 아르슬란 알레포의 리드완 가지 귀뮈슈티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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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게 설립된 예루살렘 왕국의 지원군 요청으로, 교황 우르바노 2세 (자신이 요청한 십자군의 결과를 알기 전에 사망함)의 후임자인 교황 파스칼 2세는 새로운 군사 원정을 주장했다. 그는 특히나 십자군 참전 맹세를 했으나 출정하지 않았던 자들, 출정 중에 되돌아왔던 이들에 대해서 강력히 촉구하였다. 이 자들 중에 일부는 고향 땅에서 멸시를 받고 있었고 동방으로 다시 복귀하라는 강한 압박을 받고 있었다. 1098년 안티오키아 공방전에서 달아난 블루아 백작 에티엔의 아내인 블루아의 아델은 남편으로 인해 수치심을 느껴 고향 땅에 머무는 걸 허용하지 않았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