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크라츠 충돌
파크라츠에서 크로아티아 경찰과 세르브계 반군이 충돌한 사건 / From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파크라츠 충돌, 크로아티아에서 파크라츠 전투(크로아티아어: Bitka za Pakrac)는 1991년 3월 크로아티아의 파크라츠 마을에서 일어난 유혈 충돌이다. 유고슬라비아의 해체 기간 동안 크로아티아 내 민족 갈등으로 일어난 충돌이다. 이 충돌은 크로아티아 독립 전쟁으로 이어지는 분쟁에서 최초의 유혈 충돌이다.[1][2]
간략 정보 파크라츠 충돌, 날짜 ...
파크라츠 충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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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아티아 독립 전쟁의 일부 | |||||||
크로아티아 파크라츠의 위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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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전국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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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휘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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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 | |||||||
루치코 대테러부대, 오메가 특수경찰중대 |
제256기계화여단 기갑대대 파크라츠 경찰 | ||||||
병력 | |||||||
특수경찰 200명 | 미상 | ||||||
피해 규모 | |||||||
없음 | 반군 180명 포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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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크라츠 충돌은 세르비아계 반군이 마을 경찰서와 시청을 장악하고 크로아티아인 정부 관리들을 억류하면서 시작되었다. 크로아티아 정부는 마을 내 반군 진압을 명령하며 내무부 특수경찰을 파견하였다. 양 측 사이 전투가 이뤄졌다. 이 충돌에 유고슬라비아 인민군(JNA)가 개입을 시도하였으나 마지막엔 크로아티아 정부가 마을을 다시 장악하였다. 유고 인민군과의 대립 이후 협정을 맺어 마을에서 특수경찰과 유고 인민군이 동시에 후퇴하였으며 세르비아계 반군이 마을 장악을 하기 이전 상태로 되돌린다는 것에 합의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