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강화 회의
제1차 세계 대전 후 1919년 파리에서 열린 회담 / From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파리 강화 회의(영어: Paris Peace Conference)은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연합국이 패배한 동맹국에 관련하여 평화를 보장하기 위해 1919년 1월 18일 파리에서 열린 회담이었다.[1][2] 32개국에서 온 정치가들과 민족주의 세력이 참여한 가운데 국제연맹 창립과 같은 중요 결정을 비롯하여 패배한 5개국과의 조약 체결, 그리고 오스만 제국과 독일 제국의 해외 영토를 영국과 프랑스가 위임통치하는 국제연맹 위임통치령 수립, 독일에 대한 보복, 그리고 민족경계를 반영한 국경 재수립 등이 이 회담에서 논의되었다.
다른 연도의 파리 회의에 대해서는 파리 조약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주요 결과는 1919년 6월 28일에 독일과의 베르사유 조약 체결이었다.[3] 조약의 제231조에 따르면 독일과 그 동맹국의 공격성이 전쟁에 대한 죄로 인정되었다. 이러한 시야는 독일에게 굴욕감을 주고, 독일에 대한 광범위한 보복조치에 대한 기반이 되었다. 프랑스 제3공화국, 영국, 이탈리아 왕국, 일본 제국, 미국이 회담을 통제했다. 프랑스 총리 조르주 클레망소, 영국 총리 데이비드 로이드 조지, 미국 대통령 우드로 윌슨, 이탈리아 총리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오를란도가 회의를 주도했다. 이들은 비공식적으로 145회 이상 만나 모든 주요 결정을 내렸고, 이후 다른 사람들이 이를 승인했다.[4] 회담은 1919년 1월 18일에 개최되었고, 마이클 네이베르크 교수의 말을 빌리자면 "공식적인 평화 과정은 로잔 조약이 체결되던 1923년 7월이 되어서야 완료되었다.[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