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진주성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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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진주성 전투(第二次晋州城戰鬪)는 1593년 7월 20일(음력 6월 22일)부터 같은 달 27일(음력 6월 29일)까지 진주성에서 벌어진 전투이다. 1593년 전쟁이 휴전기로 접어들면서 명나라와 일본 사이에 강화회담이 있었는데 그 결과 일본군은 북부 및 수도권 지역에서 철수, 남해안까지 물러나게 된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그 과정에서 일본군 전군에 진주성을 공격할 것을 명령한다. 이는 강화협상을 위한 무력시위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고, 또한 침략 첫 해에 가장 큰 패배를 당했던(제1차 진주성 전투) 진주성에 대한 보복의 성격도 가지고 있었다.
제2차 진주성 전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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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의 일부 | |||||||
진주성을 공격하고 있는 가토 기요마사의 모습.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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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전국 | |||||||
지휘관 | |||||||
관군 |
1번대 | ||||||
병력 | |||||||
군인 6,000명 의병 2,800명 민간인 24,000명 |
1번대: 25,000명 | ||||||
피해 규모 | |||||||
전멸 | 불명 |
거의 모든 일본군 병력이 진주성 한 곳에 집중 공격을 가했기 때문에, 진주 근처 대구에 주둔하고 있던 명나라군은 진주성을 지키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하였다. 일본군 측에서도 고니시 유키나가가 히데요시의 의지가 확고하여 진주성만은 함락시키지 않을 수 없으니 차라리 자신들이 공격하기 전에 민간인들을 모두 내보내라고 권고할 정도였다. 곽재우, 선거이, 홍계남 등 조선군도 진주성 근교까지 갔다가 절대적인 병력차를 확인하고 진주 구원을 포기했다. 그러나 진주성에 주둔하고 있던 조선군은 진주는 전라도로 넘어가는 길목이기에 진주만 공격하고 돌아간다는 일본군의 말을 믿을 수 없다며 성을 포기하라는 명군과 일본군의 권고를 거부했다.
결국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고, 진주성 안에 있던 사람들은 군인과 민간인을 막론하고 전멸했다(조선 측 기록인 선조실록에서는 60,000명, 일본 측 기록인 음덕태평기에서는 30,000명). 그리고 일본군은 고니시가 말했던 대로 전라도를 공격하지 않고 남해안으로 내려가 버렸다. 조선 조정에서는 음력 7월 15일 명군에게 진주성 구원을 재차 청하였으나 이미 늦었다. 바로 그 다음날 진주성 함락을 알리는 장계가 조정에 도착했다. 이후 이 전투의 책임소재를 놓고 조선 조정에서 다툼이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