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의 중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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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의 중세사는 서로마 제국의 붕괴와 이탈리아 르네상스 사이 시점으로 대략적으로 정의내릴 수 있다. 이탈리아의 고대 후기 시대는 동고트 왕국과 유스티니아누스 왕조 치하의 비잔티움 제국 때인 7세기부터 비잔티움 시대 교황령 때인 8세기까지 이어졌다. 이탈리아의 엄밀한 "중세 시대"는 비잔티움 제국이 이슬람의 정복 활동 압력에 따른 약화 진행과, 라벤나 총독부의 대부분이 751년에 마침내 랑고바르드의 지배 하에 떨어지며 시작된다. 이 시점의 라벤나 관구의 영토였고 동시에 랑고바르드족에 정복되지 않았던 나폴리 공국 등 지역들은 동로마 제국으로부터 점점 간섭이 줄어들며 사실상의 독립 국가들이 되었다.[1]
랑고바르드의 지배는 733년에 샤를마뉴의 침공으로 막을 내렸으며, 그는 이탈리아 북부와 중부 넓은 지역에 이탈리아 왕국과 교황령을 세웠다. 이 행위는 이어지는 몇 세기에 걸쳐 교황과 신성 로마 황제 간 이탈리아의 주요 정치적 분쟁의 전조를 마련하였고, 교황 그레고리오 7세와 하인리히 4세 간의 다툼 그리고 1077년에 일어난 하인리히의 카노사 굴욕으로 이 분쟁은 정점에 이르렀다.[2]
11세기, 이탈리아 북부와 중부 지역에서, 중세 코무네들이 도시 국가들로 전환을 벌이며 독특한 정치적 발전이 시작됐고, 이 도시 국가들 중에 많은 수가 고대 로마 공화정을 모델로 하였다. 그 중에서도 베네치아, 밀라노, 제노바, 피렌체, 시에나, 피사, 볼로냐 등의 도시들은 주요 금융 및 무역 중심지가 되며 강력한 정치 세력으로 거듭났다. 이 국가들은 이탈리아 르네상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근세의 상대적 불분명 시기에서 서구 문명의 부활을 이뤄낸 '유럽의 기적'의 토대를 마련했다.[3]
밀라노 공국과 베네치아 공화국 사이의 30년간 롬바르디아 전쟁이 벌어진 뒤, 마침내 다섯 개 신흥 강국들 간 세력균형이 이뤄졌는데, 로디 조약에서 이 신흥 국가들은 프란체스코 1세 스포르차의 주도 하에 이른바 이탈리아 동맹이라는 것을 결성하여, 수세기 만에 처음으로 이 지역에 상대적 안정을 가져왔다. 이 다섯 개 국가들은 베네치아 공화국, 피렌체 공화국, 밀라노 공국, 그리고 이탈리아 북부와 중부 지역을 지배하던 교황령, 남쪽의 나폴리 왕국이었다.[4][5]
이 국가들 간의 위태로운 균형은 밀라노 공작 루도비코 스포르차가 베네치아에 대항하여 이탈리아 전쟁 (1494년-1498년)의 발발을 촉발시킨 프랑스의 샤를 8세의 도움을 구하며 1494년에 막을 내렸다. 결과적으로, 이탈리아는 향후 60년간 이어진 유럽 초 강대국들의 전장이 되었고, 이는 이탈리아 전쟁 (1551년-1559년)으로 정점에 이르러, 합스부르크 스페인이 이탈리아 남부와 밀라노의 지배 세력으로 남게 되는 결과를 낳았다. 합스부르크 가문은 1776년 나폴레옹의 이탈리아 공격이 있을 때까지 근세 시대 동안 이탈리아 영토를 지배하였다.
"중세"라는 용어 자체는 14세기와 15세기 이탈리아 인본주의자들의 관점에서 본, 9세기부터 11세기까지 이탈리아 역사에서 '불분명'의 시기인 로마 교황청의 암흑 시대에 대한 묘사에서 본질적으로 비롯한 것이다,[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