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 위그너
헝가리계 미국인 물리학자이자 수학자 (1902–1995) / From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유진 폴 위그너(헝가리어: Wigner Jenő Pál, [ˈviɡnɛr ˈjɛnøː ˈpaːl]; 영어: Eugene Paul Wigner, [juːʤíːn pɔ́ːl wígnər]; 1902년 11월 17일 ~ 1995년 1월 1일)는 수리물리학에 기여한 헝가리, 미국의 이론물리학자이다. 위그너는 "기본 대칭 원리의 발견과 적용을 통해 원자핵과 기본 입자 이론에 기여한 공로"로 1963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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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 위그너 Wigner Jenő Pál | |
위그너 (1963년) | |
출생 | 1902년 11월 17일(1902-11-17)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부다페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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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995년 1월 1일(1995-01-01)(92세) 미국 뉴저지주 프린스턴 |
출신 학교 | 베를린 공과대학교 |
주요 업적 | 바르그만–위그너 방정식 반전성보존법칙 위그너 D-행렬 위그너-에카르트 정리 위그너의 친구 위그너 반원 분포 위그너 분류 위그너 분포 함수 위그너 함수 위그너 결정 위그너 효과 위그너 에너지 상대론적 브라이트–위그너 분포 수정된 위그너 분포 함수 위그너–데스파냐 부등성, 가보르-위그너 변환 위그너 정리, 요르단–위그너 변환, 뉴턴–위그너 국소화, |
배우자 | 아멜리아 프랭크 (결혼 1936, 사망 1937) 메리 아네트 휠러 (결혼 1941, 사망 1977) |
자녀 | 3 |
수상 | 공로 훈장 (1946) 플랭클린 메달 (1950) 엔리코 페르미 상 (1958) 평화를 위한 원자 상 (1959) 플랑크 메달 (1961) 노벨 물리학상 (1963) 미국 과학 훈장 (1969)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상 (1972) 위그너 메달 (1978) |
과학적 경력 | |
분야 | 이론물리학 원자물리학 핵물리학 고체물리학 |
소속 | 괴팅겐 대학교 위스콘신 대학교 매디슨 프린스턴 대학교 맨해튼 계획 |
학위 논문 | 분자의 형성과 분해(Bildung und Zerfall von Molekülen) (1925) |
박사 지도교수 | 마이클 폴라니 |
기타 지도교수 | 라츠 라슬로 리처드 베커 |
박사 지도학생 | 존 바딘 빅토어 바이스코프 |
서 명 | |
베를린 공과 대학을 졸업한 위그너는 베를린의 카이저 빌헬름 연구소에서 카를 바이센베르크와 리처드 베커의 조수로, 괴팅겐 대학교에서 다비드 힐베르트의 조수로 일했다. 위그너와 헤르만 바일은 군론, 특히 물리학의 대칭 이론을 물리학에 도입하는 일을 담당했다. 그 과정에서 위그너는 순수 수학 분야에서 획기적인 연구를 수행했으며, 이 분야에서 여러 수학적 정리를 저술했다. 특히 위그너 정리는 양자역학의 수학적 공식화의 초석이다. 그는 또한 원자핵의 구조에 대한 연구로도 유명하다. 1930년 프린스턴 대학교는 존 폰 노이만과 함께 위그너를 영입하여 그는 미국으로 건너갔고, 그곳에서 1937년에 시민권을 취득했다.
위그너는 실라르드 레오 및 알베르트 아인슈타인과의 회의에 참여하여 아인슈타인-실라르드 편지를 작성했으며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대통령은 원자폭탄 개발을 위한 맨해튼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위그너는 독일의 핵무기 프로젝트가 원자폭탄을 먼저 개발할 것을 두려워했다. 맨해튼 프로젝트 동안 위그너는 우라늄을 무기급 플루토늄으로 전환하기 위한 원자로를 설계하는 임무를 맡은 팀을 이끌었다. 당시 원자로는 서류상으로만 존재했고, 아직 임계 상태 원자로는 없었다. 위그너는 듀폰이 원자로의 건설뿐만 아니라 설계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있다는 사실에 실망했다. 위그너는 1946년 초에 클린턴 연구소(현 오크리지 국립연구소)의 연구 개발의 책임자가 되었지만 미국 원자력 위원회의 관료적 간섭에 좌절하고 프린스턴으로 돌아왔다.
전후 기간에는 1947년부터 1951년까지 미국 국립표준기술연구소, 1951년부터 1954년까지 미국 국립과학재단의 수학 패널, 국립과학재단의 물리학 패널, 1952년부터 1957년까지 미국 원자력 위원회의 일반 자문 위원회를, 1959년부터 1964년까지 재직했다. 말년에는 더 철학적인 인물이 되어 기술 수학 및 물리학 이외의 분야에서 가장 잘 알려진 《자연과학에서 수학의 불합리한 효과》를 출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