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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르단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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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르단의 역사는 하심 왕국의 역사와 영국의 보호령 아래 트란스요르단 토후국의 배경과 트란스요르단 지역의 일반적인 역사를 말한다.
암만 성채는 요르단의 7000년 역사를 반영하고 있다. 구석기 시대 초기에 트란스요르단에서는 인간이 활동했다는 증거가 있다. 이 지역은 청동기 시대에 유목민 부족들이 정착하였는데, 이들은 철기 시대에 암몬, 모압, 에돔 등 작은 왕국에 통합되었고, 일부 지역은 히브리인들이 지배했다. 고전기에, 트란스요르단은 그리스와 나중에는 로마 제국의 영향을 받았다. 로마와 비잔티움 제국의 통치하에, 트란스요르단은 북쪽의 데카폴리스의 본거지였고, 그 지역의 대부분은 비잔티움 아라비아로 지정되었다. 수도를 페트라에 둔 로마 시대의 나바테아 왕국과 같은 트란스요르단 지역에 위치한 고전 왕국들은 오늘날 특히 관광객들과 영화 제작자들에게 인기 있는 극적인 유적들을 남겼다. 트란스요르단의 역사는 7세기부터 무슬림 제국과 함께 지속되었고, 중세시대 중반에 부분적인 십자군 통치가 이루어졌으며, 마침내 13세기 맘루크 술탄국의 지배와 16세기부터 제1차 세계 대전 사이에 오스만 제국의 지배가 이루어졌다.
1916년 아랍 반란과 영국의 침공으로 이 지역은 1917년 영국-아랍 제국의 동부 점령지 관리 하에 놓이게 되었고, 1920년 시리아 왕국으로 선포되었다. 프랑스가 시리아 왕국의 북쪽 부분만을 점령한 후, 트란스요르단은 공위기에 놓이게 되었다. 몇 달 후, 샤리프 후세인의 둘째 아들인 압둘라가 트란스요르단에 도착했다. 1920년대 초 팔레스타인 위임통치령에 대한 트란스요르단 비망록과 함께 하심 에미리트 치하의 트란스요르단 토후국이 되었다. 1946년, 트란스요르단 왕국이 독립하여 유엔과 아랍 연맹에 가입하였다. 1948년 요르단은 이스라엘과 요르단강 서안 지구를 놓고 싸웠으며 요르단은 요르단강 서안을 사실상 장악하고 요르단강 서안 지역을 팔레스타인 인구와 합병시켰다. 요르단은 1967년 이스라엘과의 전쟁에서 요르단강 서안 지구를 잃었고, 이후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의 중심 기지가 되었다. 소모전 당시 활동했던 PLO와 요르단 간의 동맹은 1970년 요르단에서 벌어진 유혈 사태의 검은 9월, 요르단과 팔레스타인(시리아 바트주의자의 지원으로) 내전으로 수천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그 여파로 패배한 PLO는 수만 명의 전사들과 그들의 팔레스타인 가족과 함께 요르단에서 쫓겨나 남레바논으로 이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