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위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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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위파(영어: Alawites, 아랍어: علوية)/ʿAlawīyyah)는 이슬람교 시아파의 한 종파이며, 신자들은 시리아 지중해 연안 지역을 중심으로 분포해 있다. 신도 수는 2002년 기준으로 263만 명으로 추정된다.[1]
총 신자수 | |
---|---|
약 460만명 | |
창시자 | |
이븐 누사이르 | |
지역 | |
시리아 | 300만명 |
튀르키예 | 100만명 |
레바논 | 10만명 |
독일 | 7만명 |
오스트레일리아 | ? |
경전 | |
쿠란 | |
언어 | |
아랍어 (프랑스어도 사용) |
스스로 시아파의 열두 이맘파의 갈래라고는 하지만 논란이 많다. 알라위파는 알리(Ali ibn Abi Talib)를 공경하며, 알리를 따르는 자들이라는 뜻이다. 이 종파는 9세기경 이븐 누사이르에 의하여 창시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알라위파는 비하적 의미인 누사이리파(아랍어: نصيرية)로도 불리어 왔다.
시리아 인구의 12%를 차지하며 터키와 북부 레바논에서도 상당한 규모의 소수종파를 이루고 있다. 특히 지중해에 면한 라타키아 주, 타르투스 주 등 시리아 해안 지역에서는 수니파와 이스마일파, 기독교 신자들과 함께 살면서 다수를 이루고 있다. 한편 골란고원의 가자르(Ghajar) 마을에도 신도가 살고 있다. 이 종파는 터키의 알레비파와도 자주 혼동된다.
역사적으로 알라위파는 그들의 신앙을 이방인들로부터 비밀스럽게 지켜 왔으며, 따라서 억측이 난무했다. 그러나 21세기 들어, 서방 학자들의 연구가 상당한 진전을 보였다.[2] 알라위파의 역사에서, 프랑스의 시리아 지배는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알라위파 신도들이 신생 시리아군에서 점점 주도권을 잡게 되었고, 마침내 1970년 하페즈 알아사드가 권력을 잡았다.
메흐다드 이자디 조사에 따르면 알라위파는 시리아 인구의 17.2%를 차지하며 2010년[3]의 11.8%에 비해 증가했으며 터키 하타이 주와 북부 레바논의 상당한 소수민족이다.
알라위파는 별도의 민족적 숭고한 집단으로 식별된다. 쿠란은 그들의 성서와 본문 중 하나에 불과하며, 그들의 해석은 시아 무슬림 해석과는 거의 공통점이 없지만 초기 바티니야와 다른 무슬림 굴라트 종파에 따른 것이다. 알라위트 신학과 의식은 몇 가지 주목할 만한 방법으로 주류 시아파에서 탈피한다. 첫째로, 알라위 사람들은 의식에서 포도주를 마신다.[4] 다른 이슬람교도들은 술을 자제하는 반면 알라위 사람들은 사회적으로 적당히 마시도록 권장된다. 마지막으로, 그들은 또한 환생을 믿는다.[5]
알라위파인들은 역사적으로 외부인으로부터 그들의 신념을 비밀로 해왔기 때문에 그에 대한 소문이 나돌았다. 그들의 신념에 대한 아랍어 설명은 당파적인 경향이 있다.[6] 그러나 2000년대 초부터 알라위파 종교에 대한 서양의 지원은 상당한 발전을 이루었다.[7] 알라위트 신앙의 핵심에는 하나의 신의 세 가지 면으로 구성된 신성한 삼위일체가 있다. 이러한 측면들, 즉 분출은 역사를 통틀어 인간의 형태로 순환적으로 나타난다.
시리아의 프랑스령 제정은 알라위 역사에 전환점을 맞았다. 프랑스에 시리아 민간인을 무기한 군대로 영입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고 알라위트 주 등 소수민족 전용 지역을 만들었다. 알라위트 주는 이후 해체되었지만 알라위트는 시리아 국군의 중요한 부분을 계속 담당하였다. 1970년 시정운동을 통해 하페즈 알 아사드가 집권한 이후 알라위트 알 아사드 일가가 이끄는 정치 엘리트가 정권을 장악하고 있다. 1970년대와 1980년대 시리아에서 이슬람 반란이 일어났을 때, 설립은 압박을 받았다. 시리아 내전이 더 큰 압박으로 작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