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소카의 칙령
남아시아의 기원전 3세기 비문 / From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아소카의 칙령(Edicts of Ashoka)은 마우리아 황제 아소카가 자신의 재위 기간 중인 기원전 269년부터 231년 사이에 세운 것으로 추정되는 기둥 · 바위 · 동굴의 벽에 새겨진 33개의 비문 모음집이다.[2]
아소카 왕 자신은 자신의 칙령을 가리켜 담마 리피(Dhaṃma Lipi, 프라크리트어로 브라흐미 문자로는 𑀥𑀁𑀫𑀮𑀺𑀧𑀺로 표기되며, '그 법의 글들')라는 말을 사용했다.[3] 이러한 비문은 근대의 방글라데시 · 인도 · 네팔 · 아프가니스탄 · 파키스탄 등지에 흩어져 불교에 대한 최초의 실증적 증거를 제공하고 있다.[1] 칙령들은 복잡한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몇몇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진지한 시도인, 다마(dhamma)에 대한 아소카(Ashoka)의 견해를 상세히 기술하고 있다.[4] 아소카의 칙령에는 인도 역사에서 가장 강력했던 왕들 중의 한 명의 후원 하에 불교가 최초로 널리 퍼지게 된 것이 상세히 기술되어 있다. 이 시기 동안 불교는 지중해 지역까지 전파되었으며 많은 불교 기념물들이 만들어졌다.
이 비문들은 힌두교에서처럼 다르마(법)라고 불리는 불교 철학을 고수하는 아소카의 모습, 그의 왕국 전역에 걸쳐 불교의 다르마(법)를 발전시키기 위한 그의 노력을 보여준다. 불교 뿐만 아니라 고타마 붓다(석가모니)도 언급되고는 있지만, 칙령들은 구체적인 종교적 관행이나 불교의 철학적 차원보다는 사회적, 도덕적 규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것들은 공공장소에 위치해 있었고 사람들이 읽을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이 비문에서 아소카는 자신을 데바남피야(Devanampiya) 즉 '신들의 사랑을 받는 시종'이라고 부르고 있다(데바남비야가 아소카 왕의 자칭이라는 것은 1915년 영국의 금광 기술자 C. Beadon에 의해 마스키에서 발견된 비문으로 확인되었다). 마드야 프라데시 다티아 지구의 구자라 마을에서 발견된 또 다른 작은 바위 칙령에서도 아소카라는 제목과 함께 '데바남피야 피야다시 아쇼카라자'(Devanampiya Piyadasi Asokaraja)라는 이름을 사용했다.[5]
인도의 중부와 동부 지역에서 발견된 비문들은 브라흐미 문자를 사용한 마가다 프라크리트어로 쓰여졌으며, 북서쪽에서는 카로슈티 문자, 그리스어, 아람어 문자를 사용한 프라크리트가 사용되었다. 이 아소카의 칙령들은 영국의 고고학자이자 역사가인 제임스 프린스프(James Prinsep)에 의해 해독되었다.[6]
이 비문은 몇 가지 공통된 주제를 다루고 있다. 아소카의 불교로의 개종, 불교를 전파하기 위한 노력, 도덕적 혹은 종교적 교훈, 그리고 사회와 동물 복지 프로그램 등이다. 그 칙령들은 아소카의 행정과 다른 종교에 대한 사람들의 행동에 대한 그의 생각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