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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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의 역사 문서는 로마시와 더불어 고대 로마의 문명 역사를 포함한다. 로마의 역사는 오늘날에도 영향력을 끼치고 있으며, 특히 로마 가톨릭교회의 역사에서 그러하며, 로마법은 현대 법계에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로마의 역사는 다음의 시기들로 구분된다.
- 로마의 초창기 거주민들과 로물루스의 로마 건국 신화를 포함하는 역사 이전 및 초기 로마 시기
- 에트루리아 지배기 및 왕정 시기로, 전승에 따르면 로물루스가 일곱 왕 중 최초의 왕이라 한다
- 왕들이 선출된 원로원 의원들로 대체된 기원전 509년에 시작된 로마 공화정. 이 시기는 로마 영토의 방대한 확대가 특징이었다. 기원전 5세기 기간, 로마는 라티움 지역의 패권을 장악하였다. 기원전 264년부터 146년까지의 포에니 전쟁으로, 고대 로마는 패권국이던 카르타고를 무너트리고, 서부 지중해의 패권을 장악하였다.
- 로마 제국은 공화정 이후에 생겼는데, 공화정은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대두, 내전기 종료 후 행해진 모든 조치들, 기원전 27년에 마르쿠스 안토니우스를 상대로 카이사르의 양자 옥타비아누스의 승리로 약화되었다. 서로마 제국의 멸망과 더불어, 로마의 힘은 쇠하였고, 마침내 서기 8세기까지 로마 공국으로서 동로마 제국의 일부가 되었다. 이 시기에, 로마는 5-6세기에 수 차례 약탈당하며, 이전 크기의 일부분으로 줄어들었고, 심지어는 일시적으로 인구가 완전히 감소하였다.[1]
- 중세 로마는 콘스탄티노폴리스와의 절연과 교황령의 성립으로 특징지어진다. 교황령은 신생국인 신성 로마 제국의 영향력을 유지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고, ‘암흑 시대’ 동안, 로마의 인구는 30,000명만큼이나 인구 수가 적을 정도로 떨어졌다. 동서교회의 분열과 서임권 투쟁의 제한적 성공 이후, 교황령은 중세 성기에 상당한 영향력을 갖게 되었지만, 아비뇽 유수와 서방교회 대분열로, 로마시는 중요성이 줄어들었고, 인구도 20,000명 아래로 떨어졌다. 중세 동안 로마의 완전한 중요성 상실이라는 쇠퇴는, 건설 활동의 부족성과 연관되어, 당시 일부 건축물들은 버려지고 또는 일부는 계속 사용되던 도시 중심부에 있던 상당히 중요한 고대 로마 유적들을 보존시켜주었다.
- 로마 르네상스는 로마가 피렌체의 미술 및 문화적 영향력의 중심지 역할을 대체해던 15세기에 발생하였다. 로마 르네상스는 1527년에 일어난 도시의 파괴로 급작스럽게 중단되었지만, 교황령은 반종교개혁 열풍 속에서 재기하였고, 근세 기간 번영을 계속했다. 로마는 나폴레옹에게 합병되어 1798년부터 1814년까지 프랑스 제1제국의 일부로 있었다.
- 19세기부터 현재까지의 현대사. 로마는 연합군의 이탈리아 침공 이후 포위되었고 수차례 폭격을 받았다. 1943년 8월 14일에 비무장 도시로 선포되었다. 로마는 이탈리아 공화국(1946년 설립)의 수도가 되었다. 440만 명의 인구로(2015년 기준[update]; 도시 경계 안에 290만 명 포함), 이탈리아에서 가장 거대한 도시이다. 로마는 유럽 연합에서 가장 큰 도시권이며 국제도시로 구분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