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고리오 선교사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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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고리오 선교는 6세기 후반에서 7세기 초반 교황 대 그레고리오에 의하여, 토착 앵글로색슨 이교로부터 앵글로색슨족의 개종과 기독교화를 위해서 이탈리아의 수도사와 사제들 집단이 브리튼섬으로 보내졌다.[1] 첫 번째 집단은 약 40명의 수사와 사제로 구성되었는데, 그들 중 일부는 로마에 있는 그레고리오 자신의 수도원의 수도사들이었다. 그들은 거의 포기하거나 로마로 돌아온 긴 여행 후인, 597년 앵글로색슨의 켄트 왕국에 도착했다.[2] 그레고리오는 601년에 새로 세워진 교회들을 위한 책과 유물들과 함께 두 번째 선교사들을 증원으로 보냈다.[3] 켄트로부터 선교사들은 동앵글리아와 브리튼섬의 북쪽으로 퍼져나갔지만,[4] 켄트 왕 애셀베르흐트가 죽은 후, 선교는 대부분 켄트에 국한되었다. 또 다른 선교는 625년경 애셀베르흐트의 딸이 노섬브리아 왕 에아드위네와 결혼하면서 노섬브리아 왕국으로 보내졌다. 633년 에아드위네의 죽음 이후, 기독교화에 대한 이교도들의 반발이 일어나면서, 선교는 다시 켄트에 국한되었고,[2] 선교사들은 에드윈이 죽은 후 권력을 되찾은 이교도들을 두려워하여 노섬브리아를 떠났다.[5]
선교사들에 대한 정보의 주요 자료는 731년경에 쓰여진 중세 작가 베다의 앵글인의 교회사(라틴어: Historia ecclesiastica gentis Anglorum)이다. 베다는 선교의 일원의 몇몇을 상세히 열거한다. 또 다른 중요한 자료는 선교사들에게 보낸 그레고리오의 편지 사본들을 열거한 교황의 기록부이다. 두 자료는 두 집단의 선교사들에 대한 완전한 목록을 제공하지 않기 때문에, 구성원들의 목록은 베다와 그레고리오의 편지에서 산재해 있는 참고 문헌에서 수집되어야 한다. 첫 번째 집단에는 대략 40명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지만, 두 번째 집단에는 몇 명이 도착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증거의 다양성은 선교사 중 일부만 지명할 수 있게 한다.[1]
알려진 많은 일원들은 주교나 대주교가 되었고, 나머지들은 대부분 수도원장이 되었다. 유일한 예외는 교회에서 부제보다 더 높은 직분을 맡은 적이 없는 부제 야고보이다.[6] 대주교 중에 캔터베리 대주교인 첫 다섯 명은 아우구스티노, 라우렌시오, 멜리토, 유스토, 호노리오이다.[1] 그들 모두 나중에 성인으로 시성되었다.[7] 다른 두 명의 선교사 바울리노와 로마노도 주교가 되었다. 마지막 선교사 집단은 캔터베리에 아우구스티노가 세운 수도원의 수도원장이 되었으며, 나중에 아우구스티노의 이름을 따서 성 어거스틴 수도원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수도원장으로는 그라치오소, 요한, 베드로, 페트로니오, 루피니아노가 있었다.[1] 다섯 명의 대주교와 더불어, 선교의 다른 세 명의 일원들은 성인으로 여겨진다. 이들은 베드로, 부제 야고보와 바울리노이다.[8][9][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