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서린 헵번
미국의 배우 (1907–2003) / From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캐서린 호턴 헵번(영어: Katharine Houghton Hepburn, 1907년 5월 12일 ~ 2003년 6월 29일)은 미국의 배우이다. 캐서린 헵번은 독립성과 활발한 성격으로 할리우드에서 60년 동안 주인공을 연기해 왔다. 헵번은 세련된 여성으로, 의지가 강한 연기를 맡아오면서 자신의 모습을 구축하였으며 스크루볼 코미디에서 드라마, 영화로 연기 영역을 확장했고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4번 수상하였다.
캐서린 헵번 Katharine Hepburn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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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캐서린 호턴 헵번 Katharine Houghton Hepburn |
출생 | 1907년 5월 12일(1907-05-12) 미국 코네티컷주 하트퍼드 |
사망 | 2003년 6월 29일(2003-06-29)(96세) 미국 코네티컷주 올드 세이브룩 |
국적 | 미국 |
직업 | 배우 |
활동 기간 | 1928년 ~ 2003년 |
종교 | 무종교 (무신론) |
소속사 | 무소속 |
학력 | 브린마 칼리지 사학과 철학과 학사 (졸업) |
부모 | 아버지 토마스 노르발 헵번 (1879–1962) 어머니 케서린 마르타호턴(1878–1951) |
배우자 | 러들로 오그덴 스미스 (1928년 결혼~1934년 이혼) |
수상 | 아카데미상 -여우주연상 (4회) 영국 아카데미상 -여우주연상 (1회) 에미상 -여우주연상 (1회) |
웹사이트 | (영어) 캐서린 헵번 - 인터넷 영화 데이터베이스 (영어) 캐서린 헵번 - 인터넷 브로드웨이 데이터베이스 (영어) 캐서린 헵번 - TCM 영화 데이터베이스 |
코네티컷의 부유하고 진보적인 가족에서 태어난 캐서린 헵번은, 브린모어 대학교를 다니는 동안 연기를 시작하였다. 4년 동안 극장에서 연기를 한 그녀는 영화에 데뷔하기 전에 브로드웨이에서 성공을 거두었다. 영화계에 들어와 찍은 세 번째 작품인 《모닝 글로리》로 1934년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하게 되었다. 1933년 흥행에 성공한 영화 《작은 아씨들》로 1934년 베니치아 국제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 국제적인 명성까지 얻는다. 그러나 이후 '흥행의 독약'이라는 표현을 들으면서 RKO 라디오 픽처스와의 계약을 파기하며 메트로-골드윈-메이어로 건너가 《필라델피아 스토리》로 성공하게 된다. 이후 스펜서 트레이시를 만나 25년 동안 커플로 영화에 나오게 된다.
1951년에 개봉한 《아프리카의 여왕》에 출연하면서 드라마 영화에서 성공을 거두게 되고 이후 1960년대에 《초대받지 않은 손님》과 《겨울의 라이온》으로 아카데미상을 연속으로 수상받게 된다. 이후 그녀는 《황금 연못》으로 다시 한번 아카데미상을 수상받았다. 캐서린 헵번은 87세의 나이로 1994년에 마지막으로 영화에 출연하였다. 2003년에 96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헵번은 할리우드에서 언론에 호의적이지 않았으며, 사회에서 여성 주인공에게 원하던 기대를 따르는 것을 거부하였다. 헵번은 노골적으로 말하였으며, 적극적이었으며, 운동신경이 좋았던데다, 여성이 바지를 입는 것을 좋아하지 않은 시대였음에도 바지를 입었다. 또한 당시 유부남이었던 스펜서 트레이시와 교제를 하였다. 그녀는 20세기 미국의 여성들의 전형적인 모습이었으며, 여성의 인식을 변화시키는데 영향을 주었다. 1999년에 미국 영화 연구소는 캐서린 헵번를 위대한 여자 배우에 1위로 선정하였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