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로마 가톨릭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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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로마 가톨릭교회, 또는 한국의 천주교회는 조선 중엽에서 말기 사이 마테오 리치의 《천주실의》(天主實義)를 통해 ‘서학’(西學)이라는 학문으로서 전래했으며, 이후 점차 신도가 늘어 외부 선교 활동 없이 자치 교회를 세우는 데에 이르렀다. 조선 정부는 가톨릭교회를 전통적인 유교 문화를 파괴하는 것으로 여겨 개항 이전까지 가톨릭교회를 탄압했지만, 한국 가톨릭교회는 그러한 박해에도 교세를 완전히 잃지 않았다.
1886년 조불수호통상조약 이후 천주교 신앙의 자유가 허용되며 온전한 사목활동이 가능해졌으나, 5차례의 박해로 대다수의 신자가 순교하여 교단은 위태로운 상태였다. 같은 시기 미국 선교사를 통해 들어온 개신교는 별 다른 박해 없이 적극적인 포교 활동으로 교세를 확장했으며, 1907년 평양 대부흥을 기점으로 개신교가 천주교의 신자수를 뛰어넘게 되었다. 이 후 가톨릭은 일제강점기의 친일과 해방 정국을 거치며 교세의 악화를 면치 못하다가 1970년대의 민주화 운동 참여로 사회적 명성을 얻고 다시 신자수 증가 등 교세의 성공적인 복원을 이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