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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바판니 왕국(싱할라어: තම්බපණ්ණිය රාජධානිය)은 기원전 543년 비자야 왕조의 시조 비자야에 의해 탐바판니를 수도로 건국된 후 기원전 437년까지 존속한 스리랑카 최초의 싱할라계 왕국이다.
탐바파니는 탐라파르니(산스크리트어: ताम्रपर्णी)에서 파생된 이름이다.[5] 이 단어는 청동 또는 구리색을 의미하는데, 비자야와 그의 추종자들이 스리랑카에 오고나서, 그들의 손과 발로 이 붉은 땅의 티끌을 만졌더니 손과 발이 빨간색으로 변했기 때문이며, 따라서 그 자리에 세워진 도시의 이름은 탐바파니가 되었다.[6] 이 이름의 파생어는 타프로바네(그리스어: Ταπροβανῆ)이다.
팔리어로 기록된 연대기인 마하밤사에 따르면, 인도아리아인들이 스리랑카로 이주하기 이전 스리랑카에서는 야크샤와 나가가 살고 있었다고 하며,[7][7] 기원전 600년 이전에 사용된 고대 무덤 유적과 문명의 징후도 스리랑카에서 발견되었지만, 이 시기 이전의 스리랑카 역사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진 것이 없다.[8][9] 전통적으로 싱할라 역사 및 스리랑카 역사시대에서는 반전설적인 왕자 비자야가 700명의 추종자들을 이끌고 스리랑카로 도착한 날짜를 기원전 543년으로 잡고 있다.[10]
전설에 따르면 비자야가 섬 기슭에 착륙했을 때 모래에 입을 맞춘 다음 이 땅의 이름을 '탐바판니'라고 부르고 땅에 사자를 묘사한 깃발을 심었다고 하며, 인도의 유명한 산치 대탑은 비자야 왕자가 상륙한 사건을 묘사하고 있다.[11] 탐바파니에 상륙한 비자야는 야크샤의 아름다운 여왕인 쿠벤니를 만났다고 하며, 이 여왕의 진짜 이름은 세샤파티였다.[12]
기록에 따르면 최초의 싱할라인 왕인 비자야와 그의 추종자 700명이 석가모니가 죽은 날에 스리랑카섬에 상륙한 후 오늘날 만나르 근처 지역에 해당하는 칠라우 지역에서 탐바파니 왕국을 건국하였으며,[13][14] 비자야는 탐바파니를 자신의 수도로 주장하며 곧 섬 전체가 이 이름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탐바파니는 원래 야크샤가 거주하고 통치하던 곳으로, 이들의 수도인 시리사바투(Sirīsavatthu)에 쿠벤니가 있었다.[1]
우파티사가마(Upatissagāma)는 왕국의 두번째 수도였는데, 이전 수도인 탐바파니에서 북쪽으로 7~8마일 떨어진 곳에 있었으며,[15][8][7] 비자야의 추종자이자 고위 장관인 우파티샤에 의해 설립되었다.
후계자를 선택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던 비자야는 치세 말기에 그의 동생 수미타를 왕좌에 초대하기 위해 고향인 싱하푸라에 있는 그의 조상에 편지를 보냈으며,[8] 그 편지가 목적지로 도착하기 이전에 비자야가 죽자 그의 수석 장관이었던 우파티사가 왕위를 계승하고 1년 동안 왕으로 통치하였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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