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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위에 위치한 클레르몽페랑 대성당 탑의 108미터 높이의 고딕 양식 첨탑들]]
첨탑(spire)은 건물, 특히 특히 교회의 탑, 꼭대기에 있는 원뿔 모양 또는 피라미드형의 구조이다. 어원적으로 단어 spire(첨탑)은 앵글로-섹슨어 "spear"(창)에서 유래했다. 한자 문화권에서 첨탑(尖塔)은 뾰족한 탑을 의미 하지만, 대개 단일 구조인 뾰족탑과는 구별된다.
현재, 또 다른 건물의 건축 요소가 된 가장 큰 첨탑은 최근에 완공된 오스트레일리아의 골드코스트에 있는 Q1 주상복합 타워에 설치되어 있다. 그 외에도 미국 1WTC 등 다양한 마천루들에도 첨탑을 설치하기도 한다.
상징적으로, 첨탑들은 두 가지 기능을 갖고있다. 첫째는 용감한 군대의 선언으로, 르네상스 시대의 창 날 모양의 첨탑은 강한 인상을 준다. 둘째는 하늘에 오르기 위함이다. 첨탑의 하늘에 대한 희망찬 몸짓은 종교 건축물과 관련이 있는 이유 가운데 하나이다. 교회나 대성당에 있는 첨탑은 경건함의 상징일 뿐만 아니라 종종 질서에 따른 부와 명예, 또는 건물의 가호를 상징한다.
건축 장식으로의 첨탑들은 대부분 기독교 교회들에서 끊임없이 발견되는데, 그 첨탑들은 뾰족탑을 대체한다. 어느 명칭은 뾰족탑을 대신해서 첨탑의 사용을 선택할 수도 있는데도 불구하고, 구조물에서 십자가의 배제는 로마 가톨릭교회와 다른 친-개신교 계통 교회들에서 더 일반적이다. 대성당의 방어용 흉벽들은 고딕 양식에서 다중 첨탑의 특징이다(비종교적인 군사 요새의 모조품).
첨탑들은 일반적이면서도 주목을 끄는 단일 구조로, 그 방식으로 오벨리스크에 사용됐다. 20세기의 모더니즘 운동에서, 단독적인 영업용 탑들도 건축되기 시작했다. 워싱턴의 시애틀에 있는 스페이스 니들과 같은 몇몇 유명한 건물들은 첨탑을 시민의 능력과 희망에 대한 선서 증언으로 사용한다. 이 본보기의 경우에서, 첨탑은 항공 우주 산업에 시애틀의 참여의 뜻이기도 하다. 1,776피트(541미터)인 뉴욕시에 있는 "자유의 탑"은 911테러 추모를 위해 고안된 특징이 있고, 첨탑이 꼭대기에 올라가 있다.
첨탑은 적당한 간격으로 고딕 교회가 있음을 선언하며 천당과 연결됐음을 알린다. 샤르트르 대성당의 남쪽 탑에 있는 크고 가느다란 피라미드식의 12세기 첨탑은 가장 오래된 첨탑 가운데 하나이다. 투명 세공 첨탑들은 놀라운 건축 혁신으로, 14세기 초반에 프라이부르크 대성당의 첨탑에 구멍 낸 석조물에 금속 죔쇠들을 모아 올리기 시작했다. 로버트 보크에 따르면, 투명 세공 첨탑은 "급진적이지만 골격 구조를 위한 고딕 성향의 적절한 확장"이라고 했다. 바르셀로나의 사그라다 파밀리아에 있는 안토니 가우디의 경이로운 첨탑의 유기적인 골격은 고딕 성항의 자연적인 흐름을 표현한다. 1884년에 가우디에 의해서 디자인되고 착공된, 첨탑들은 20세기까지 완공되지 않았다.
잉글랜드에서 "첨탑"은 즉시 솔즈베리 대성당을 마음에 두고 그 곳으로 보내졌다. 1320~1380년 사이에 지어진 403피트(123미터)의 첨탑은 그 시대에서 전 세계 어느 곳의 첨탑보다 높았고, 그 방식으로 로마의 콜로세움 또는 아테네의 파르테논만큼 눈길을 끌었다. 흡사하지만 약간 작은 첨탑은 잉글랜드 베드퍼스셔의 레이튼 버자드에 지어졌는데, 그 시대 동안에 나라를 넘나드는 첨탑의 인기의 확산을 나타낸다. 중세 시대에 보존되어 잔존하는 첨탑보다 몇년 간 붕괴된 첨탑이 항상 더 많았기에 우리는 중세 첨탑의 대중성에 대해 절대로 알려고 하지 않는다. 연합 왕국의 첨탑들은 일반적으로 종교 건축물로 보존하려는 경향이 있었지만, 버흘리 왕가의 통치 기간은 예외였고, 1858년에 엘리자베스 1세의 대법관을 위해서 지어졌다.
르네상스 초기의 첨탑은 영국에서만 국한되지 않았다. 그 유행은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앤트워프에서 123미터 짜리 첨탑이 5세기의 기간이 넘도록 저지대 국가들 가운데서 가장 높은 구조물이었다. 1221~1457년 사이에는 풍부하게 장식된 개방형 첨탑들이 스페인의 부르고스 대성당에 세워졌고, 반면에 독일의 울름에서는 1337~1417년 사이에 외국에서 들여온 프랑스 고딕 양식으로 529피트(161미터) 짜리 첨탑이 세워졌다.
흥미롭게도, 이탈리아인은 고전 양식을 선호하여, 한번도 첨탑을 건축의 특징으로 삼은적이 없다. 고딕 양식은 독익풍 북유럽의 특징이며, 이탈리아인의 취향에는 절대로 맞지 않았고, 이탈리아에 있는 소수의 고딕 건축물들은 언제나 주변과 부조화를 이룬다.
고전 혼합 양식의 첨탑은 한참 뒤에 나타났다. 1822년에 런던에서, 존 내시가 랭함 부지에다 모든 넋을 기리는 교회를 건축했는데, 이온식 기둥들 위에 코린트식 기둥들이 지탱하는 첨탑이 있는 둥근 모양의 고전식 사원이다. 그 조합이 행복한 혼합 양식인지 막 섞어 놓은 것인지는 개인적인 취향의 문제이다.
19세기 동안에 고딕 복고는 아무런 도약이 없었다. 과학 기술, 강철 생산, 건축 기술의 발달과 함께, 첩탑은 건축술을 통틀어서 유래없는 커다란 조수를 누렸다. 쾰른 대성당의 유명한 첨탑들은 20세기 초에 설계되어 현 시대에 마침에 완공되었다.
첨탑은 유행 밖으로 밀려난 적이 없다. 20세기에 강화된 콘크리트는 투명 세공 첨탑의 새로운 실현 가능성을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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