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뤽 고다르
프랑스의 영화 감독, 각본가 (1930–2022) / From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장뤽 고다르(Jean-Luc Godard, 1930년 12월 3일 ~ 2022년 9월 13일)는 프랑스, 스위스의 영화 감독, 영화 각본가, 영화 평론가이다. 1960년대 프랑스의 영화 운동인 누벨 바그의 대표적 인물 중 한 명이다. 자기 영화를 전적으로 담당하는 작가로서, 고다르는 프로듀서, 시나리오 작가, 대본 작가를 겸임하며, 편집까지 스스로 담당하기도 했다. 가끔씩 단역으로 자기 작품에 출연하기도 했으며 내레이션을 맡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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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뤽 고다르 Jean-Luc Godard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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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30년 12월 3일(1930-12-03) 프랑스 파리 |
사망 | 2022년 9월 13일(2022-09-13)(91세) 스위스 보주 홀르(Rolle) |
국적 | 프랑스, 스위스 |
직업 | 영화 비평가, 감독, 배우, 촬영 감독, 각본가, 편집자, 프로듀서 |
활동 기간 | 1954년-2022년 |
학력 | 파리 대학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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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명 |
에릭 로메르, 프랑수아 트뤼포, 클로드 샤브롤, 자크 리베트처럼 영화 평론가로서 경력을 시작하였다. 주로 《가제트 뒤 시네마》, 《카예 뒤 시네마》, 《아르》에 글을 기고했다. 동시에 스위스의 그랑드디상스 댐 건설에 관한 다큐멘터리인 《콘크리트 작전Opération béton (1954)》, 모파상에 영감을 받아 예산 없이 찍어낸 《아양떠는 여자Une femme coquette (1955)》, 에릭 로메르와 함께 멋부린 문체로 쓴 《모든 청년들은 파트리크라고 불린다Tous les garçons s'appellent Patrick 또는 샤를로트와 베로니크Charlotte et Véronique》, 프랑수아 트뤼포가 촬영하고 고다르가 이미지를 편집한 《물의 이야기Une histoire d'eau (1958)》, 마지막으로 《샤를로트와 그녀의 정부Charlotte et son jules (1958)》같은 16mm 단편을 찍기도 했다.
1959년, 《네 멋대로 해라》의 촬영과 함께 장편 영화를 찍기 시작한다. 이 영화는 큰 성공을 거둠과 동시에, 누벨 바그의 시조격 영화 중 하나로 자리매김한다. 1960년대에 고다르는 일 년에 여러 편의 영화를 찍으며, 여러 기획을 진행한다. 1960년, 고다르는 알제리 전쟁에 관한 영화 《작은 병정Le Petit Soldat》과 뮤지컬에 대한 경의를 담은 영화 《여자는 여자다Une femme est une femme》를 찍는다. 이후 고다르는 매춘을 하는 젊은 여성에 관한 영화 《자기만의 인생Vivre sa vie (1962)》, 전쟁에 관한 신작 《기관총 부대Les Carabiniers (1963)》, 영화계를 다룬 영화 《경멸Le Mépris (1963)》을 찍는다. 고다르는 1964년 《국외자들Bande à part》과 《유부녀Une femme mariée》를 찍으며 영화 활동을 이어간다. 1965년, 고다르는 SF 영화 《알파빌, 레미 코숑의 기이한 모험Alphaville, une étrange aventure de Lemmy Caution》을 감독하며, 그 다음으로 많은 전문가들이 그의 걸작이라고 평가하는 로드 무비 《미치광이 피에로Pierrot le Fou》를 찍는다. 이후 고다르는 청춘들에 관한 영화 《남성 여성Masculin féminin》, 《메이드 인 USAMade in USA》, 다시 매춘이라는 주제를 다룬 《그녀에 대해 알고 있는 두 세가지 것들Deux ou trois choses que je sais d'elle》, 《중국 여인La Chinoise (1967)》, 《주말Week-end (1967)》을 찍는다.
이후 고다르는 일류 영화인으로서, 지식인 계층과 예술계를 이끄는 인물 중 한 명이 된다. 1968년, 그의 몇몇 이전 영화에서 이미 예견된 5월 사태는 기존 영화 체계와의 단절의 기회였다. 고다르는 정치적으로 급진적이 되며, 소외당한다. 고다르는 장피에르 고랭과 함께 정치 영화를 만들고자 시도하며, 지가 베르토프 집단이라는 집단 필명하에 영화를 제작한다. 이 시기 고다르의 영화는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1974년부로, 고다르는 동거녀 안마리 미에빌과 함께 비디오 촬영을 실험하며, 텔레비전 매체를 통하여 작업하며, 영화와는 거리를 둔다.
고다르는 1980년대 《도망쳐라 (인생)Sauve qui peut (la vie)》으로 영화계로 복귀한다. 이후 그는 마치 1960년대처럼 영화계의 중심으로 돌아온다.
1980년대 말, 고다르는 영화의 영화적인 역사를 구성하고자 시도한 《영화사Histoire(s) du cinéma》라는 제목의 영화-에세 연작 제작에 몰두하며, 1998년 완성하게 된다. 2000년대, 고다르는 《사랑의 찬가Éloge de l'amour (2001)》, 《우리의 음악Notre musique (2004)》, 《필름 소셜리즘Film Socialisme (2010)》과 같은 영화를 통하여 작품 활동을 계속한다. 또한 고다르는 파리 조르주 퐁피두 센터에서 전시를 열기도 했다. 고다르는 가장 야심적으로 계획한 전시를 결국 단념했지만, 원 전시 계획의 축소판은 《Voyage(s) en utopie. À la recherche d'un théorème perdu. JLG 1945-2005》라는 제목으로 전시되었다.
장 뤽 고다르는 1965년 《알파빌》로 베를린 영화제 황금곰상을 수상하였으며, 두 은곰상(《네 멋대로 해라》로 감독상, 《여자는 여자다》로 심사위원 그랑프리)을 수상했다. 고다르는 또한 1982년 베네치아 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 영예상(경력상)을 받았으며, 1983년 《카르멘이라는 이름Prénom Carmen》으로 황금사자상 작품상을 받았다. 이외에도, 고다르는 2014년 《언어와의 작별Adieu au langage》로 칸 영화제 심사위원상을 받았으며, 1987년과 1998년 세자르 공로상을 두 번 받았고, 2010년 자신의 전체 경력으로 아카데미 공로상을 받았다. 2018년 고다르는 제71회 칸 영화제에서 《이미지 북 Le Livre d'image》으로 황금종려상 경쟁 부문에 진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