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릉 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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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릉 대전(夷陵大戰), 또는 효정 전투(猇亭戰鬪)는 221년 촉한의 황제 유비가 의형제인 관우와 장비의 원수를 갚고 형주를 수복하기 위해 강동의 손권을 공격해 발발한 전쟁의 향방을 결정한 전투이다. 이 전투에서 유비는 육손의 화공(火攻)과 뒤이은 공격에 의해 참패하고 백제성까지 물러났다.
간략 정보 이릉 대전, 날짜 ...
이릉 대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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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이링 구(夷陵區)의 장강 연안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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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전국 | |||||||
촉한 | 손권군 | ||||||
지휘관 | |||||||
유비 풍습† 오반 진식 보광 장남† 상총 진도 조융 이조 정기† 마량† 마충 황권 방림 왕보† 진식 부융† 사마가† 습진† 조운 |
손권 육손 반장 주연 송겸 한당 서성 순우단 손환 이이 낙통 사정 보즐 반준 장일 주태 정봉 유아 두로 유녕 | ||||||
병력 | |||||||
9~10만[1] ※ '주력군 규모' 만 4~5만[2]에 달하며 당시 '유비의 형주 지배를 지지' 하며 촉한군에 합류한 오계(五溪)의 무릉만이, 형주 호족 군세같은 '비정규군' 들까지 합치면 '최대 약 10만'이라는 견해[3]도 있다. '10만'이라는 군사 규모(軍士 規模)만 봐도 가히 '대군(大軍)' 이라 칭해질 만하다. |
6~7만 (육손군 5만, 손권(孫權)의 지원군 1~2만) | ||||||
피해 규모 | |||||||
8만여 명 전사[4][5](수만 명이 전사하거나 항복, 주력 군세 괴멸) | 불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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