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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와 스페인 등에서 군주를 배출한 가문 위키백과, 무료 백과사전
사보이아가(이탈리아어: Casa Savoia 카사 사보이아[*])는 지금의 이탈리아와 스페인 등에서 군주를 배출한 가문이다. 사보이아가 직계는 1831년에 단절되었고, 분가인 사보이아카리냐노 가문이 사르데냐의 왕위를 계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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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보이아 왕가가 다스리는 영토는 1023년 움베르토 1세가 사보이아와 아오스타 등지에 봉토를 획득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1251년 토리노를 합병하였고, 1416년 아메데오 8세는 피에몬테의 내부 지역과 니차(Nizza 현 프랑스 니스) 항구를 끼고, 서쪽 알프스의 영토를 통일하여 공작의 칭호를 수여받았다. 이탈리아 전쟁 도중인 1536년에 프랑스에게 점령을 당했으나, 에마누엘레 필리베르토 디 사보이아 공작이 1559년 공국을 수복하는데 성공하였다. 이후 1563년 수도를 토리노로 옮기면서 사보이아 공국은 이탈리아의 한 나라로 자리잡게 되었고, 1714년 에스파냐 왕위 계승 전쟁에서 승전하여 시칠리아섬을 양도받았다. 그러나, 신성로마황제이자 오스트리아의 대공, 헝가리의 왕, 사르데냐의 왕이었던 카를 6세가 시칠리아와 사르데냐를 바꾸자고 제안하였고, 그 제안을 받아들여 사르데냐섬을 얻은 후 국호를 사르데냐 왕국으로 개칭하였다. 사르데냐 왕국은 나폴레옹 전쟁 중 정치의 중심이었던 피에몬테를 잠시 잃어버린 후, 빈 회의에서 피에몬테를 되찾고 나서 사르데냐-피에몬테 왕국으로 국호를 개칭하였다. 이후 리소르지멘토의 중심이 되어 이탈리아 왕국을 건국하였다.
그의 사후 사보이아 왕가 수장 지위를 둘러싸고 본가와 아오스타가 두 파로 분열되었다.
분가. 작위는 공작. 프랑스어로는 사부아카리냥 가문이라 부른다. 1831년 사보이아 왕가의 본가가 되었다.
분가. 작위는 공작. 카를로 알베르토의 차남 페르디난도를 시조로 하여 5대 165년간 지속되었다.
분가. 작위는 공작.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의 차남 아메데오를 시조로 5대째 이어진다.
1946년, 이탈리아에서는 군주제 유지 찬반 투표의 결과로 왕정이 폐지되고, 이탈리아 공화국이 선포되었다. 사보이아 왕가의 국왕 및 그 남자 후손들은 국외로 추방당하였으나, 이탈리아 공화국은 1997년부터 왕가 후손들의 입국을 허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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