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절 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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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절 봉기(영어: Easter Rising 이스터 라이징[*], 아일랜드어: Éirí Amach na Cásca 에어리 아마흐 너 카스카)는 1916년 4월 부활절 주간에 아일랜드인들이 영국에 대항해 일으킨 무장항쟁이다.
부활절 봉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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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6년 부활절 봉기 당시 패트릭 피어스가 GPO 밖에서 읽은 부활절 선언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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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전국 | |||||||
지휘관 | |||||||
패트릭 피어스 |
윔보른 자작 | ||||||
병력 | |||||||
더블린에 1,250 명 그 외 지역에 2,000 ~ 3,000 명이 있었으나 큰 역할을 하지 못함 |
군인 16,000 여명 무장경찰 1,000 여명 | ||||||
피해 규모 | |||||||
64명 전사 16명 처형 |
132명 전사 397명 부상 | ||||||
민간인 254명 사망, 2,217 명 부상 |
부활절 봉기는 아일랜드 공화주의자들의 주도하에 무력을 통해서 영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성취하기 위해 일으켰다. 이 사건은 아일랜드 독립 운동에서 1798년의 '청년 아일랜드인 협회'의 항쟁 이후 가장 중요한 항쟁로 여겨지고 있다. 봉기는 비밀조직인 '아일랜드 공화주의 형제단'에 의해 계획되었으며, 1916년 부활절 주간의 월요일인 4월 24일부터 4월 30일까지 지속되었다.
주도 세력은 교사이자 변호사였던 패트릭 피어스가 이끈 아일랜드 의용군이었고, 좀 더 작은 규모로 사회주의 사회를 건설함으로써 진정한 자유를 바란 사회주의자 제임스 코놀리가 이끈 아일랜드 시민군도 연합작전을 펼쳤다. 이들은 기습작전을 통해 더블린의 주요 거점을 점령하고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아일랜드 공화국'을 선언했다. 부활절 선언은 더블린 중앙 우체국에서 패트릭 피어스가 낭독했다.
더블린 외에 아일랜드의 다른 지역에서도 봉기가 있었으나, 카운티 메스의 애쉬본을 제외하면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했다. 봉기는 영국군과의 6일간의 교전 끝에 진압되었으며, 지도자들은 군사재판에 회부되어 처형되었다. 그러나 이 사건은 무장투쟁 전통의 공화주의를 아일랜드 정치의 전면으로 부각시키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봉기에서 선언된 '아일랜드 공화국'은 약 3년 후인 1919년 1월에 아일랜드 초대 의회에 의해 승인되며 다시 선언되었다.[출처 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