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교
봉건 시대 일본의 교육 기관 / From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번교(일본어: 藩校 한코[*])는 에도 시대에 여러 번이 무사의 자제를 교육하기 위해 설립한 학교이다. 번횡(藩黌), 번학(藩学) 또는 번학교(藩学校)라고도 한다. 1871년 8월, 폐번치현으로 번교는 폐지되었지만, 1872년 9월 학제를 공포한 후 중등, 고등 여러 학교의 직간접적인 모체가 되었다.
내용과 규모는 다양하지만 무사의 자제는 모두 강제로 입학하게 했다. 후에 모두에게 개방된 번교도 있었다. 광의적으로는 의대, 서양학교, 황학교(皇学校), 향학교(郷学校), 여학교 등 번이 설립한 모든 교육 기관을 포함한다. 번교는 번이 비용을 부담하여 번의 영지에 설립되었지만, 일부는 예외적으로 에도 번주의 저택에 병설된 학교도 있었다. 번사에게 수강료를 지불할 의무는 없었기 때문에 성적 우수자에게는 번으로부터 취학 지원금을 주었고, 에도 등에 유학시킬 수 있었다.
전국적인 경향으로 번교에서는 무예도 권장하여 7-8세에 입학하여 처음 글을 배우고, 이후에는 무예를 배웠고, 14-15세부터 20세 정도에 졸업을 하였다. 교육 내용은 사서오경의 독해와 서예를 중심으로 에도 시대 후기에는 난학과 무예로 검술 등 각종 무술 등이 더해졌다.
번교 입학의 주요 시험은 독해시험이었으며, 사서(유학의 기본 문헌 대학, 중용, 논어, 맹자의 총칭) 중 발췌한 한문을 일본어 번역하여 3회 낭독하고, 내용의 해석은 차치하고, 읽기의 오류(읽기 실수), 망각(잊어버림)의 다소로 합격 여부가 결정된다. 에도 막부는 10월경에 이루어지고 있었다. 번교의 입학시험에 합격하고도 자주 시험을 치러야 했고, 낙제자에게는 엄벌이 부과되었다. 특히 세 번의 낙제자에게는 힘든 엄벌이 마련되었다. 그것은 번교에 따라 다양하지만, 주요 엄벌로 장남이라면 상속 시 가록을 감봉하거나 또한 부모의 직책을 이어받기도 힘들었고, 직책도 없이 생애를 보낼 수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