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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왕후 (조선)
조선 중종의 왕비 / From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문정왕후 윤씨(文定王后 尹氏, 1501년 12월 12일(음력 10월 22일) ~ 1565년 5월 15일(음력 4월 6일))는 조선 중기의 왕후이자 섭정으로 중종(中宗)의 세 번째 왕비이다. 시호는 성렬인명문정왕후(聖烈仁明文定王后)이다. 1515년(중종 10년) 장경왕후가 승하하여 1517년(중종 12년)에 왕비로 간택, 책봉되었다. 1544년 대비가 되고, 1545년 아들 경원대군이 12세의 어린 나이로 즉위하자 8년간 수렴청정으로 섭정하였다.
문정왕후 文定王后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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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정왕후 어보의 보면(聖烈大王大妃之寶) | |
조선 중종의 3비 | |
재위 | 1517년 7월 19일 ~ 1544년 11월 20일 (음력) |
전임 | 장경왕후 윤씨 |
후임 | 인성왕후 박씨 |
조선의 왕대비 | |
재위 | 1544년 11월 20일 ~ 1545년 7월 6일 (음력) |
전임 | 자순왕대비 윤씨 (정현왕후) |
후임 | 공의왕대비 박씨 (인성왕후) |
조선의 대왕대비 | |
재위 | 1545년 7월 6일 ~ 1565년 4월 6일 (음력) |
전임 | 인수대왕대비 한씨 (소혜왕후) 인혜대왕대비 한씨 (안순왕후) |
후임 | 소성대왕대비 김씨 (인목왕후) |
수렴청정 | |
재위 | 1545년 7월 6일 ~ 1553년 7월 12일 (음력) |
전임 | 정희왕후 윤씨 |
후임 | 인순왕후 심씨 |
이름 | |
별호 | 성렬왕대비(聖烈王大妃) 성렬대왕대비(聖烈大王大妃) |
시호 | 문정(文定) |
존호 | 성렬인명(聖烈仁明) |
신상정보 | |
출생일 | 1501년 12월 12일(1501-12-12) (양력) |
사망일 | 1565년 5월 15일(1565-05-15)(63세) (양력) |
사망지 | 조선 한성부 창덕궁 소덕당 |
가문 | 파평 윤씨 |
부친 | 파산부원군 윤지임 |
모친 | 전성부부인 전의 이씨 |
배우자 | 중종 |
자녀 | 1남 4녀
명종 의혜공주 · 효순공주 · 경현공주 · 인순공주 |
종교 | 불교 |
능묘 | 태릉(泰陵)
서울특별시 노원구 공릉동 26-102 |
파산부원군 정평공 윤지임(坡山府院君 靖平公 尹之任)과 전성부부인 이씨(全城府夫人 李氏)의 딸로, 본관은 파평(坡平)이다. 아들 명종의 즉위 후 약 8년간 수렴청정을 맡았다. 수렴청정기간 중 자신의 친정 남동생인 윤원로, 윤원형, 친정 사촌인 윤춘년 등을 기용하였으며, 불교 중흥책을 펼쳐 보우를 중용, 선교양종과 승과를 부활시켰다.
그녀는 동생인 윤원형에게 정권을 쥐게 하고 인종의 외척이자 자신의 친척이기도 한 외척 윤임 일파를 제거하기 위해 을사사화를 일으켜 윤임을 죽이고, 나중에는 윤원로를 귀양보내기도 했다.[1][1] 그녀는 불교의 부흥을 꾀하기도 했는데, 1550년에 선교 양종을 부활시키고 폐지되었던 승과, 도첩제 등을 다시 실시하게 하였다.[1] 그리고 승려 보우를 총애하여 그에게 병조판서직을 제수하는 바람에 대신들의 불만을 사기도 했다.[1] 불교를 장려하고 윤원형의 권력 남용을 방치하여 사림파 성리학자들로부터 비판의 대상에 올랐다. 능은 서울특별시 노원구 공릉동에 위치한 태릉(泰陵)이다. 성렬대비(聖烈大妃)로 불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