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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쉬카(말라얄람어: മൂഷിക)는 현재 인도 케랄라주 북부 말라바르의 에지산(에지말라)과 그 주변 지역을 지배한 작은 왕조이다.[1][2] 같은 이름의 헤하야 씨족의 고대 혈통이 다스리던 무쉬카의 나라는 인도 남부의 초기 역사(팔라바 이전)에 나타난다.[3][4] 초기 타밀 시에는 에쥐말라이의 난난의 공적에 대한 여러 언급이 포함되어 있다.[5] 난난은 팔라바 이전의 체라 족장들의 큰 적으로 알려졌다.[5] 씨족은 또한 체라, 판디아 및 촐라 족장과 결혼 동맹을 맺었다.[6] 무쉬카 왕조의 후손인 콜라투나두 왕국은 권력의 정점에 서 북쪽의 네트라바티강(망갈로르)에서 남쪽의 코라푸자(코지코드)까지 확장되었으며 서쪽에는 아라비아해와 코다구 언덕이 있다. 아라비아해의 락샤드위프 제도의 고립된 섬을 포함하여 동쪽 경계에 있다.[7]
무쉬카 왕국은 중세 초기에 점차 군주제 정치(콜라데삼으로 알려짐[8])로 발전했다.[5] 중세 무쉬카는 소마밤사의 크샤트리야로 간주되었다.[9] 중세 시대에 무쉬카 왕의 세습 칭호는 라마가타 무샤카(타밀어/말라얄람어: Iramakuta Muvar)였다.[10][11] 시인 아툴라가 11세기에 작성한 왕조 연대기인 무샤카 밤사 카비야는 무쉬카 혈통의 역사를 설명한다.[12][13]
무쉬카 왕국은 11세기에 체라 왕국의 영향을 받았다.[14] 무시카 왕족은 촐라 제국에 맞서 싸우는 체라 왕을 도운 것 같다.[13][9] 두 개의 후속 촐라 비문(서기 1005년경, 라자라자 1세, 1018-19 년경, 라자디라자)에는 콜라데삼의 패배와 이라마쿠타 무바르의 몰락이 언급되어 있다.[8][9][11] 케랄라 북부(서기 1020년)에 촐라족의 존재는 에라마 비문에 의해 확인된다.[11] 왕국은 체라/페루말 주에서 살아남았고, 포스트 체라/페루말 시대에 콜라투나두로 알려지게 되었다.[5]
무쉬카 왕은 왕국의 다양한 상인 길드를 장려한 것으로 보인다. 안주반남, 마니그라맘, 발란치야르 및 나나데쉬칼과 같은 유명한 인도 길드가 왕국에서 그들의 존재를 보여준다. 왕들은 또한 힌두교와 사원의 위대한 챔피언으로 묘사된다. 일부 무쉬카 통치자는 케랄라 중부의 유명한 불교 비하라를 후원한 것으로 유명하다.[9] 무쉬카 왕국의 항구에도 유대인 상인의 존재가 추측된다. 마다이의 한 위치는 여전히 "유대인의 연못"(Jutakkulam)으로 알려져 있다.[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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