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AI tools
체코의 남자 작곡가 (1854-1928) 위키백과, 무료 백과사전
레오시 야나체크(체코어: Leoš Janáček, 체코어 발음: [ˈlɛoʃ ˈjanaːtʃɛk] ( ), 1854년 7월 3일~1928년 8월 12일)는 체코의 작곡가, 민속학자이다. 그는 모라비아 음악과 동유럽 민속 음악 등 슬라브 음악에서 영감을 받아 독창적이고 현대적인 음악 스타일을 창조했다.
체코의 보헤미아와 슬로바키아의 경계지대에 있는 북모라비아 지방이 낳은 최대의 작곡가인 야나체크는 교원인 아버지의 14형제 중의 10번째의 아들로 태어났기 때문에 생활이 매우 어려웠다. 태어나기는 폴란드의 국경과 가까운 푸구발디라는 곳이나 11세 때 모라비아 지방의 중심지 브르노에 가서 성 아우그스티노회 수도원의 성가대에 들어가, 이 성가대의 지도자로 뛰어난 합창곡의 작곡가이기도 한 그루제코프스키에게 귀여움을 받았으나 뒤에 합창곡이 오페라와 함께 야나체크의 창작의 중심을 이루게 된 것은 이 선생의 영향이었다. 올드브르노 중학교에서 국립 브르노 사범학교로 진학하여 1872년에 졸업하였으나 그 후에도 프라하의 오르간 학교(1874-1875)와 빈 음악원의 하기학교(1880)에 유학한 기간을 제외하고는 생애의 대부분을 브르노에서 지냈으며 모교 브르노사범학교에서 가르치기도 하고 1882년의 28세 때는 브르노 오르간학교를 발족시켜 1920년까지 그 곳 교장으로 있었다. 그 전해인 1919년에는 프라하 음악원의 브르노 분교의 창설에도 협력하여 오르간학교를 발전적으로 해소시켜 이와 합병하여 1925년까지 그 마스터 클라스에서 가르쳤다. 야나체크는 1928년 여름 돌연 폐렴에 걸려 모라비아의 오스트라우의 병원에서 영면하였다.
야나체크의 작품에서 보통 연주되고 있는 것의 대부분은 50세를 넘은 뒤인 만년의 작품뿐으로, 그 이전의 것은 자신의 손으로 파기된 것이 많다. 매우 특이한 개성으로 27세의 연하인 헝가리의 벨러 버르토크보다 한발 앞서 현대적인 민족주의 음악의 방식을 취하고 있었고, 게다가 작곡의 기초가 된 고향 모라비아의 민요나 방언의 어법의 특수성과 서양인의 논리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동양적 사상에 따른 구성원리 등 때문에 체코 국내에서도 인정되는 것이 늦어져, 출세작인 오페라 〈예누파〉(1894~1903)만 해도 브르노에서는 50세 때 인정되었지만 프라하의 국립극장이 이를 채택하기까지는 12년이나 지난 뒤의 일이었다. 브르노라는 지방도시에 은거하면서 인생의 청춘을 교육에 바친 것도 세상에 알려지는 일이 늦어진 한 원인이었던 듯하다. 세계가 이 작곡가의 위대성에 주목하여 비판적 리얼리즘의 정신으로 일관된 오페라의 하나하나가 모두 체코 이외의 나라에서도 채택되기까지에는 그 뒤 30년 내지 40년이란 세월이 필요했다.
Seamless Wikipedia browsing. On steroids.
Every time you click a link to Wikipedia, Wiktionary or Wikiquote in your browser's search results, it will show the modern Wikiwand interface.
Wikiwand extension is a five stars, simple, with minimum permission required to keep your browsing private, safe and transparent.